묵묵히 음악을 한, 여유롭고 싶은 싱어송라이터 한여유(정외 13) [105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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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묵히 음악을 한, 여유롭고 싶은 싱어송라이터 한여유(정외 13) [1055호]
  • 곽태훈 기자
  • 승인 2019.05.07 01: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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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솔한 노랫말과 멜로디에 담긴 그녀의 진심들

상업적인 거대 자본과 유통 시스템으로부터 독립적인 인디음악은 음원차트 상단에서는 비교적 보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인디음악은 대중성과 다소 거리가 있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대중성과 거리가 있다고 해서 대중과의 간격이 더 큰 것은 아니다. 음악계의 흥행공식만을 좇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뮤지션의 진솔한 감성을 더 많이 녹여내기도 하고 이로 인해 보다 두터운 마니아층을 형성하기도 한다. 싱어송라이터 한여유(본명 황보람  정외 13) 학우도 그러하다. 명대신문에서 지금도 곡 작업에 여념이 없는 한여유 학우를 만나 그녀의 노래 같은 이야기들을 들어봤다

 

Q. 한여유 씨의 학교생활이 궁금해요. 한여유 씨는 재학 당시 어떤 학생이셨나요?
A. 제가 본명이 보람이잖아요. 그래서 학교 다닐 때 ‘보람차게 하루하루를 보내야지’ 다짐해서 ‘오늘도 내일도 황보람찬!’이라고 새긴 텀블러도 만들어가지고 다니고 그랬는데, 그 이름이랑 다짐대로 지냈던 거 같아요. 1학년 때 선배들을 잘 만난 건지 학점에 신경 쓰라는 얘기를 굉장히 많이 들어서 학점도 만족스러운 결과를 많이 얻기도 하고 학과 내 밴드 ‘락인’에서 드럼도 쳐보고 그랬어요. 그렇게 공부도 하면서 친구들이랑도 잘 지냈던 것 같아요. 2학년 때는 휴학하고 배낭여행을 다녀오면서 외국과 관련된 활동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어우라미를 들어갔어요. 어우라미 활동을 2년 정도 하면서 지금까지도 매일매일 연락하고 있을 정도로 애틋하고 뜻 깊은 친구들을 많이 만났죠. 외국인 친구들을 사귀는 것부터 시작해서 그들과 처음 하는 것들이 많았거든요. 그래서 저는 나름 인싸…였다고 생각을 하는데. (웃음). 자칭해서 아싸도 좋아했어요. 학술관 노트북실에서 혼자서 시간 보내는 거 엄청 좋아했거든요. 아무튼 저는 학교생활 진짜 재미있게, 알차게 한 학생인 거 같아요.

Q. 학교생활을 보면 음악활동과는 큰 연결점이 보이지 않는데, 음악을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A. 7살 때 KBS 음악프로그램 <뮤직뱅크>를 보다가 막연히 ‘나도 저기 서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학창시절 내내 노래 부르는 걸 엄청 좋아했지만 스스로 자존감이 높지 않아서 그 당시에는 부모님한테도 말을 못했어요. 가수가 된다는 게 거창하게만 느껴졌죠. 그렇게 정말 되고 싶은데 아무한테도 말을 하지 못하고 가수의 꿈을 품고만 있다가 일단 서울로 오면 기회가 있을 것 같아서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진학을 한 거죠. 아, 제가 고향이 울산이거든요. 스물 셋, 넷까지는 방황한 것 같아요. 시작하는 방법을 몰라서. 유럽 배낭여행을 갔던 게 일종의 전환점이 됐어요. 여행에서는 온전히 노는 시간만 주어지잖아요. 그러다보니까 뭔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어요. 그때 아무리 생각해도 그게 음악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뒤늦게 실용음악학원도 다녀봤는데 쉽지 않았죠. 그런 저를 보고 친구가 그러더라고요. “그냥 시작하고 그냥 곡을 써보라”고. 친구의 그 말이 시작하게 만든 것 같아요. 이전까지는 음악을 따로 배운 적이 없어 곡을 써보는 것 자체도 몰랐고 보컬 쪽으로만 생각을 했었거든요. 그때부터 무작정 피아노를 두드려보고 말도 안 될 정도로 오글거리는 멜로디를 폰 녹음기에 흥얼거려보고… 그러다 그게 곡이 되고. 그러면서 시작됐던 것 같아요.

Q. 활동명이 굉장히 독특해요. 본명이신 줄 알았는데.
A.다들 그렇게 생각해요. (웃음).

Q. ‘한여유’라는 이름을 생각한 이유가 있나요? 그리고 활동명에 담긴 의미도 궁금해요.
A. 일단 저는 ‘한여유’라는 이름을 본명으로 생각했으면 하는 마음에 프로필에도 본명이 없거든요. 어쩌다가 팬 분들이 본명을 아셔서 이제 다 알려졌는데… 활동명은 첫 번째 음원을 준비할 때 저의 부족함을 깨닫고 음악이 정말 쉽지 않다는 걸 느끼면서 일단 ‘행복이 뭘까?’에 대해 생각하게 됐어요. 원초적으로. 생각해보니까 내 마음이 여유로울 때 행복하다는 걸 느꼈어요. 그러니까, 몸은 바빠도 마음이 여유로우면 행복한데 마음이 여유가 하나도 없으면 시간이 아무리 많아도 행복하지가 않더라고요. 그래서 여유로우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여유’라는 이름을 짓게 되었고, ‘한’은 형용사 붙이기가 좋더라고요. 행복한 여유, 평안한 여유, 고요한 여유 뭐 이런 식으로. 제가 원하고, 제가 바라고 싶은 모습의 형용사가 더해지기 쉽다고 생각해서 한여유라고 지었어요. 제 본명을 모르는 분들은 저를 ‘여유야’ 혹은 ‘한여유 씨’ 이렇게 부르시는데 들을 때마다 막중한 책임감이 느껴져요. 오히려 본명으로 불릴 때보다. 왜냐하면 한여유란 이름은 누군가 주어주신 이름이 아니라 내가 직접 만든 거잖아요. 그러니까 더 책임감이 느껴져서 개인적으로도 엄청 만족해요. 

Q. 정말 좋은 이름 같아요. (웃음).
A.감사합니다. (웃음).

Q. 데뷔 전에도 김동률 콘서트, god 콘서트 콰이어 활동이나 김광석 다시 부르기 대회에 나가 본선에서 상을 받으시는 등 다양한 음악활동을 하셨는데 그때의 경험을 통해 변화된 게 있으신가요?
A. 김광석 다시 부르기 대회에 나갔을 때까지만 해도 계속 방황하고 있었어요. 가장 큰 이유는 ‘내가 재능이 없는 것 같은데 음악을 해도 되나?’ 하는 거였죠. 그런 고민을 하던 와중에 들려온 예선통과 소식은 아직까지도 잊히지 않아요. ‘어떻게 내가? 진짜 내가? 이걸 붙었다는 건 내가 음악을 해도 된다는 건가?’ 계속 되물었어요. 엄청 큰 충격을 받았죠. 대회에 나갔을 때 제가 심사번호 2번이었는데 1번도, 3번도 실력이 있고 유명하신 분들이었어요. 그런데 제가 그 사이 2번이니까 ‘내 무대는 정말 볼품없겠다, 빨리 이 시간이 지났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는데 1번 분이 그러시더라고요. 그런 게 어디 있냐고. 여기 있는 우리 다 똑같은 위치인데 왜 혼자 자기 자신을 낮추느냐고. 그때 무대에 서는 마음가짐을 배웠죠. 무대가 모두 끝나고 훈훈하게도 본선 진출자 모두에게 상을 주셨는데 제가 순위를 따졌을 때 맨 마지막이 아닌 거예요. 공동 5위인가 4위인가까지 있었는데 어쨌든 그 앞인 거예요. 그것도 충격이었죠. 그리고 인스타그램에 궁금해서 대회 관련 피드를 찾아봤는데 제 이름조차 몰랐던 대회 관계자 한 분이 ‘어떠어떠한 말을 한 스물세 살 친구가 부른 게 너무 와 닿았다.’ 라고 써주신 거예요. 인정받은 것도 모자라서 저를 모르는 누군가가 일기처럼 써주신 걸 보게 되니까. 콘서트 콰이어도 정말 충격적인 경험이었어요. 김동률 씨와 직접 대화를 나눠보지는 못했지만 멀리서 보면서 김동률 씨가 음악을 대하는 태도나 혼신을 쏟으시는 게 너무 멋있었고 감동이었고, 배워야겠다고 느꼈어요. god 콘서트 때까지도 제 재능에 대해서 고민이 많았는데 박준형 씨가 저한테 “너 진짜 리듬 잘 탄다”며 엄지를 내밀어 주신 거예요. 콰이어 감독해주시는 선생님께서도 “이 중에서 한 명만 유일하게 리듬을 타고 있는데 그게 이 친구다”며 저를 가리켜주시고. 그런 일들이 계속되면서 ‘어쨌든 내가 음악적 재능이 없지는 않구나. 너무 좌절할 필요는 없구나’ 하는 용기를 얻었죠. 

Q. 영감은 주로 어떻게 얻으시나요? 전반적인 곡 작업과정이 궁금해요.
A. 억지로 해서 된 적은 한 번도 없어요. 음악은 시험공부와는 달리 온전히 느껴야만 나올 수 있는 것 같아요. 그 때를 기다리는 게 가끔은 쉽지가 않아요. 그런데 한 달 동안 곡이 안 써져서 너무 답답하고 힘들다가도 친구랑 얘기하다가 갑자기 툭 나오기도 해요. 한 번은 친한 일본인 친구와 할머니 얘기를 한 적이 있는데, 그 친구랑 ‘할머니한테 잘 해라’ 이렇게 카카오톡을 마무리하고 나서 갑자기 저희 할머니 생각에 눈물이 왈칵 쏟아지는 거예요. 그때 곡이 막 써지더라고요. 물론 기술적인 부분은 차후에 들어가겠지만 시작은 ‘곡을 써야지’ 해서 시작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설령 그렇게 곡을 쓰더라도 그런 곡은 제 마음에 든 적이 단 한 번도 없어요. 곡 작업의 시작은 책, 대화, 영화 등 무조건 일상에서 출발해요. 편곡은 그 다음에 구상해야 하는 부분이죠.

Q. 곡을 쓰시면서 특별히 중요하게 두는 가치가 있으신가요?
A. 가사요. 제 중점이 바뀌었어요. 예전에는 멜로디랑 코드 같이 들리는 것에 집중했는데 뻔하지 않은 가사를 쓰는 게 중요한 것 같더라고요. 김동률 씨, 정준일 씨, 슌 씨 등 감성적으로 제게 영향을 주는 아티스트 분들의 곡을 들으면 진짜 ‘가사를 함부로 쓰면 안 되겠다’는 게 느껴져요. 한 곡만 예를 들자면 이영훈 씨의 [일종의 고백]이라는 노래 가사 중에 ‘나는 가끔씩 이를테면 계절 같은 것에 취해 나를 속이며 순간의 진심 같은 말로 사랑한다고 널 사랑한다고’라는 구절이 있어요. 그걸 보면서 저는 어떻게 인간의 감정을 이렇게 표현할 수 있는지. 정말로 우리는 진짜 사랑이 아닌데 연인이 되는 경우가 있잖아요. 그러고 나서 그게 사랑이었다고 착각을 하잖아요. 이런 미묘한 감정을 표현한 가사를 보면서 가사가 이렇게까지 사람을 사로잡을 수 있구나, 느꼈죠. 

Q. 그래서인지 한여유님 곡들의 가사가 상당히 문학적이에요. 시인인 어머니의 영향을 받으신건가요?
A. 어머니의 영향이 없다고 생각을 했는데 어른이 돼서 보니까 어머니가 집에서 말씀해주신 게 다 문학적이셨던 것 같아요. 예를 들면 뭐랄까, 어머니가 오빠랑 저를 일컬어 ‘내가 품은 두 우주다’고 표현하는 식이에요. 그렇다고 감성에만 치우치는 건 아니에요. 어머니께서는 오히려 제가 제 감정에만 사로잡히는 걸 멀리하라고 말씀하셨어요. 막연히 슬프다는 게 아니라 왜 슬픈지, 그리고 상대방은 왜 그랬는지도 이해를 해야 된다고 하셨죠. 그러다보니 감정이 객관화돼서 보편적으로 남들이 공감할 수 있는 감성을 가지게 된 것 같아요.

Q. 이제는 조금 현실적인 얘기를 해볼게요. 흔히 ‘인디뮤지션’하면 막연하게 ‘배고픈 직업’이라는 인식이 있잖아요. 실제로도 이와 관련해 겪는 어려움이 있나요?
A. 하하. 네, 그럼요. 현실적으로 아름답지만은 않아요. 근데 그렇다고 좋아하는 걸 안할 수 없잖아요. 만약 저도 다른 것에 재능을 발견하고 그게 음악보다 더 재미있으면 그걸 할 거예요. 그런데 그걸 찾지 못해서 이 배고픔에도 불구하고 음악을 하는 거죠. 자기가 하고 싶은 거라면 포기할 줄도 알아야 된다는 마인드로 음악을 하고 있는데 경제적인 부분은 당연히 일반 회사에서 꼬박꼬박 돈이 들어오는 거랑은 너무 다르죠. 예술은 현실이 너무 열악해요. 정확히는 모르지만 한 번 스트리밍에 작사가 0.2원, 작곡이 0.2원, 편곡이 0.몇 원 뭐 이런 식이고. 음원수입이 따로 있기는 하지만 이만큼… 말도 안 되지 않아요? 그래서 저도 아르바이트 병행하거나 공연에서 수입을 얻는데 그마저도 힘들어요. 공연장에서 가져가는 게 절반 이상이니까. 심지어 수익배분이 9대 1인 적도 있었어요. 7대 3이어도 공연에 참가한 세 아티스트가나누면 1대 1대 1이니까. 그럴 때 화가 나기도 해요. 제가 못 버는 것에 화가 나는 게 아니에요. 저는 아직 잘 알려지지 않았기에 많이 못 버는 게 어쩌면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다만 그 공연에 돈을 낸 분들에게 죄송해요. 좋은 시설이 아님에도 공연장에서 많이 가져가니까 비싼 표를 내놓는 게 화가 나는 거죠. 

Q. 앞으로의 목표나 활동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A. 제가 좋아하는 말이 있는데요. 바로 ‘묵묵히’라는 말이에요. 묵묵히 한다는 것에는 많은 뜻이 있잖아요. 지쳐도 묵묵히, 누군가 알아줘도 들뜨지 않고 묵묵히. 그 단어가 되게 좋더라고요. 묵직해서. 그래서 묵묵히 계속 음악을 하는 게 제 목표입니다. 해서 일단 공연을 많이 하고 싶어요. 홍대나 이런데서 소극장 공연들. 그리고 곡 작업하다가 마음에 드는 곡이 있으면 낼 거고요. 이번 연도는 잘 모르겠지만, 1년에 세 곡 정도는 꾸준히.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한여유 씨의 곡들을 다시 찬찬히 들어보았다. 지금까지 발매한 곡들을 한데 모아 들어보니 하나의 문장이 완성됐다. 어쩌면 그녀가 세상에 전하고자하는 메시지도 이런 게 아닐까. 프롬프터처럼 각진 세상 속, 가끔 사랑이 무엇인지를 몰라 뱅뱅뱅 헤매더라도 Please, 나름의 질서를 간직한 채 행복한 여유를 만끽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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