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념을 드러내는 그들. 채식주의자 <105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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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념을 드러내는 그들. 채식주의자 <1055호>
  • 임다원 기자
  • 승인 2019.05.07 01: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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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채식주의자들의 이야기

국제채식인연맹(IVU)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전 세계 채식 인구는 1억 8,000만 명이다. 국내 채식 인구 또한 적지 않다. 한국채식연합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국내 채식 인구는 전체 인구의 약 2%인 100만 명에서 150만 명 사이로 추산된다. 2008년 15만 명이었던 데 비해 10년 사이 10배 가까이 증가한 수치다. 채식인구의 증가는 자연스레 채식품의 다양화로 이어졌다. 채식 만두부터 초콜릿과 빵, 식물성 대체 육류 등은 클릭 한 번으로 집까지 배송된다. 게다가 번화가를 중심으로 식물성 치즈와 대체 육류를 사용한 채식 버거부터 채수 떡볶이, 채식 빵 등을 판매하는 다양한 채식당을 찾을 수 있다. 이러한 채식 시장의 성장에 따라 ‘베지노믹스(Vegenomics, Vegetarian + Economics)’라는 용어도 생겼다. 이제 채식은 비주류에 머물지 않고 주류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건강을 위한 채식이 주류였던 과거와 달리 최근의 채식은 미닝아웃(Meaning Out)의 한 종류로 자리 잡고 있다. 미닝아웃이란 자신의 신념을 표현하는 것을 의미하며, SNS 해시태그가 대표적인 미닝아웃이라 할 수 있다. 본지 기자가 인스타그램에 직접 #vegetarian을 검색해보니 2,200만 여개의 게시글이, #채식의 경우 18.6만 여개의 게시글이 나왔다. 채식인들은 태그 기능을 통해 채식당 추천부터 레시피 공유, 관련 도서나 영화 추천 등 다양한 정보를 공유하고 있었다. 이러한 공유는 채식을 지속하는 동력이 되기도 한다. 서울대학교 인류학과에 3학년으로 재학 중인 통지(활동명) 씨는 “혼자보다는 함께 하는 게 훨씬 좋다. 저는 인스타그램으로 많은 사람을 만나고, 친해진 것 같다. 그들과 비건이 되기 위한 당위성에 대해 토론하고 다짐을 다지면 채식의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고 말한다. 수많은 게시글과 태그를 둘러보다 보니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있다. #veganism이다. 앞서 유형을 통해 알 수 있듯 비건은 △육류 △가공유 △어류 등 모든 육식을 행하지 않는 완전한 채식을 의미한다. 이러한 비건에서 파생된 비거니즘(Vegan+~nism)은 단순히 채식을 하는 것에서 나아가 개인의 신념, 철학을 드러내는 용어다. ‘나’를 위한 채식부터 ‘사회’의 변화를 위한 채식까지. 채식인들의 동기가 달라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인스타그램 내의 #채식 게시물

 

실제 통지씨의 인스타그램

# 기자의 채식당 방문기

취재 과정에서 인스타그램에 꾸준히 비거니즘 게시물을 올리는 통지 씨와 이화여자대학교 철학과에 재학 중인 호연(활동명) 씨를 만날 수 있었다. 통지 씨는 학내에 ‘비지모(비거니즘을 지향하는 모임)’를 만든 뒤 활발히 활동 중인 비건이며, 호연 씨는 이화여자대학교의 비거니즘 지향 동아리 ‘솔찬’을 만든 뒤 작년까지 활동한 비건이다. 둘 모두 학내 활동뿐만 아니라 외부에서도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고 있었다. 만남의 장소는 이태원에 위치한 ‘플랜트’라는 비건 식당으로 내부에 들어서자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붐볐다. 곳곳에 배치된 식물들과 판매 중인 Plant T-Shirt, 메뉴판 뒤의 ‘BE EARTH, FRIENDLY’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먼저 도착한 호연 씨와 인사를 나누자마자 호연 씨 티셔츠에 적힌 ‘동물해방물결’이라는 문구가 시선을 끈다. 어떤 의미가 담긴 티셔츠인지 물어보자 그녀는 “제가 후원하는 단체의 티셔츠에요. 원래 관련 행사를 가려고 했어서 입고 오게 됐어요”라고 설명했다. 우리는 Plant Veggie로 패티를 만든 버거와 랜틸 콩과 밥, 다양한 채소가 섞인 ‘Lentil Veggie Bowl’, 그리고 각종 야채가 들어간 스무디를 주문했다. 두 가지 메인 요리와 음료를 주문하자 총 3만 5,000원이 나왔다. 가격이 저렴한 편은 아닌 듯싶었지만 그 생각도 잠시. 주문한 음식이 나오자 탄성이 일었다. 셋 모두 음식 사진을 찍기 바빴다. 맛도 훌륭했다. 버거는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버거 맛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조금 더 고소한 맛이 나는 버거였다. 식사 후에는 비건 케이크를 주문했는데, 달고 깊은 맛이 나는 게 만족스러운 식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음식을 먹으며, 그녀들과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아래는 그 대화 내용이다.

#나는 대학생 채식주의자다

Q. 두 분이 비건이 된 계기가 궁금해요
호연) 흔한 계기인데, 집에서 키우는 반려동물 때문에 유기동물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됐어요. 이후 학교 과제 때문에 유기동물 문제로 소논문을 쓰다가 동물권 개념을 알게 됐죠. 자료 조사 과정에서 알게 된 공장식 축산 개념을 통해 지금까지 아무 생각 없이 먹던 음식이 사실 음식이 아니라 같이 살던 동물들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그렇다고 그때 바로 채식을 시작 한 건 아니에요. 당시 제가 속해 있던 단체에서 일주일 동안 채식을 하고 기사를 작성해보자는 제안을 받아서 처음 채식을 했죠. 그전엔 어려울 것 같아서 망설였는데 막상 해보니까 생각했던 것만큼 어렵지 않았어요. 사실 비건도 삶의 한 방식이잖아요. 먹을 게 없다거나 비싸서 어려운 게 아니라 지금까지 육식으로 길러져 왔기 때문에 익숙하지 않았던 것뿐이에요. 한국사회에는 아직 비건이 많지 않으니까 채식을 삶의 방식으로 받아들이는 법을 찾는 게 어려웠죠.
통지) 고등학교 때부터 공장식 축산 이야기를 들어봤지만, 식탁과 연관시켜본 적이 없었어요. 그러던 중 영화 <옥자>를 보게 됐는데 충격을 받았죠. 슬프기도 하고 말 그대로 충격이었어요. 그러나 영화를 보고도 한 달은 육식을 했었어요. 내가 채식을 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거든요. 하지만 고기를 먹을 때마다 과연 고기를 먹어도 되는지 의문이 들고, 옥자 생각이 났어요. 이후 책도 읽고 다큐멘터리도 찾아보며 점차 페스코 채식에서 비건으로 나아갔죠.

Q. 이야기를 듣다 보니 채식, 그중에서도 비건과 동물권은 뗄 수 없는 관계 같아요 
호연, 통지)맞아요. 비거니즘이 바로 동물권을 이야기해요. 채식주의랑은 조금 다른데, 채식주의는 식이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비건은 화장, 일상용품 등 삶의 모든 분야에서 동물권을 생각해요. 저도 원래 페스코 베지테리언이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어떤 종은 먹어도 되고, 어떤 종은 안 된다는 게 종 차별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인간이 그 무게를 함부로 재고 있다고 느낀 거죠. 그렇게 점차 비건이 됐어요.

Q. 특히나, 대학을 다니며 채식을 하기 어려울 것 같아요. 동아리 모임, 학과 행사 등에 고기가 빠지질 않으니까요.
호연, 통지) 사실 대학생이 채식하기 제일 쉽다고 생각해요. 단편적인 예로 직장인보다는 낫죠. 대학 내에서의 모임은 안 나간다고 해고되진 않으니까요. 대학생 중에 채식인이 늘어나면 그에 맞는 권리를 대학에 요구를 할 수가 있잖아요. 그러나 군대나 직장, 고등학교처럼 위계가 있는 집단에서는 이러한 요구를 하기가 힘들어요. 그럼에도 대학 내 MT(Membership Training)는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1박 2일, 2박 3일 동안 몇 끼를 먹어야 하니까요. 그럴 경우에 안 갈 수도 있겠지만, 그건 선택이 아니라 배제라고 생각해요. 
또 다른 사례도 있어요. 비지모에 의대생분이 있는데 실습을 하러 가면 병원에서 주는 급식을 먹어야 해요. 그런데 정말 먹을 게 없어서 밥만 먹고 돈을 내는 거죠. 이외에도 기숙사에 들어갔는데 밥값을 포함해서 기숙사비를 받는 곳이 있어요. 그런 곳에선 먹지도 못하는 급식에 대한 돈을 지불해야 하는 거죠. 한국 사회엔 아직 익숙하지 않은 문화이니까 앞으로는 당연히 물어보고 고려해야 하는 문제가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Q. 활발히 비거니즘 활동을 하시는 궁극적인 목적, 신념이 궁금해요
호연)아주 큰 궁극적 목표는 모든 인간이 비건이 되는 거예요. (웃음) 사실 사회가 육식에 맞춰져 있기 때문에 식(食)에 생계가 걸린 사람도 많잖아요. 자본주의와도 연관이 있다고 생각해요. 이렇듯 생각보다 육식에는 많은 것들이 엮여 있는데, 사회 구조가 바뀌면 채식이나 비건이라고 이름을 명명하지 않을 수 있는 사회가 올 것이라고 생각해요. 
통지) 저도 1차 목표는 모든 사람이 비건이 되는 것이고 그 외에는 환경적인 거예요. 인간을 위한 소비가 멈추고 사람들이 자신이 먹는 게 어디서부터 왔는지 아는 사회가 왔으면 좋겠어요.

Q. 마지막으로, 채식당이나 베이커리 몇 군데 추천해주세요!
호연, 통지) 사당의 남미 플랜트랩도 좋고 이태원 해방촌에 있는 베제투스와 소식도 괜찮아요. 오늘 인터뷰를 한 플랜트, 망원동의 어라운드 그린이나 오브레도도 좋아요. 홍대 쪽에는 해밀베이커리, 카페썬 등이 있겠네요. 요즘 유행하는 마라탕도 채소로만 만들면 먹을 수 있으니까 추천해요. 서울 내에선 조금만 부지런하게 움직여도 먹을 게 많아요. 

 

채식을 시작하려는 학생들에게

비교적 수월할 수는 있으나 대학생 채식주의자들의 식생활은 순탄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교내에서 간단하게 학식으로 끼니를 해결하려 해도, 동아리 활동 중 참석한 회식 장소에도, MT와 같은 과 행사에서 제공되는 식사에도 대부분 육류가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사회가 조금씩 변화의 기미를 보인다. 서울대학교는 지난해 4월 학식 내에서 비건식을 제공하는 ‘감골식당’을 선보였다. 또한 숙명여자대학교의 총학생회 ‘오늘’은 올해 학기 중 진행된 간식행사에 야채 주먹밥과 파인애플 스틱 등 ‘비건 옵션’을 도입했다. 숙명여자대학교에 3학년으로 재학 중인 박예지 학생은 비건 옵션에 대해 “점차 소수자의 인권에 대한 감수성이 증가하는 요즘 사회의 모습을 반영한 모습 중 하나인 것 같다. 기존의 고정관념을 깬 이러한 변화는 학교 차원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사회로 퍼져나가야 하는 선한 영향력의 동력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라는 의견을 전했다. 뿐만 아니라 이화여자대학교, 고려대학교에서도 간식 행사 중 채식이 제공되고 있다. 대학생들이 모여 자체적인 활동을 하기도 한다. 고려대학교 외 9개의 대학들이 모인 한국 대학가 비거니즘 · 채식 동아리 연합모임인 ‘비온대(비거니즘을 온 대학에)’도 비건 지향인 파티, 굿즈 제작 등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와 같은 변화는 대학들이 지금까지 배제됐던 채식인을 고려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아직 그 수는 적지만, 채식이 일으키는 반향은 분명 존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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