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자의 하루, 한 달, 그리고 1년 <105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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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자의 하루, 한 달, 그리고 1년 <1055호>
  • 김도윤 스타트업 칼럼니스트
  • 승인 2019.05.07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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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스타트업을 하던 2년 전 쯤, 투자자의 한 지인이 자기 아들의 창업 아이디어가 교내 창업 콘테스트에서 채택되어 소정의 지원을 받는 1인 스타트업의 대표가 되었다며 잔뜩 신이 나 흥분하며 자랑했다는 기억이 난다. 그래서 투자자가 뭐가 그렇게 좋으냐고 그 어머님께 물었더니 ‘다른 사람들이 우리 아들에게 대표님, 대표님하며 부르는게 그렇게 좋다’는 것이었다.

이제 막, 스타트업의 초기 투자, 그것도 교내 장학금과 비슷한 형태의 지원금을 받고 1인 기업의 대표가 되었다는 것 외에는 아직 ‘대표’로서 그 어떤 책임도 실천도 시작한게 없는데, 그저 타인이 자신의 아들을 ‘대표님’이라고 불러준다는게 자랑스러웠다는 그 어머님의 기쁨이 내겐 파도 앞에 모래성을 짓는 아이를 보는 양 불안하기만 했다. 그렇다면 대표라는 직책이 얼마나 힘들길래 이렇게 겁을 주는지 궁금한가? 그럼 잠시 창업자가 되어 그들의 삶을 쫓아보자.

먼저, 설립할 회사를 개인사업자로 할 것인지 법인으로 할 것인지 정해야한다. 초년기의 세금을 생각하면 개인사업자가 좋겠지만 초기 투자 및 이후 시리즈별 투자 및 세금 처리를 생각해보면 법인을 만드는게 좋다. 그런데 법인은 개인사업자와는 달리 생각보다 절차가 많고 준비 및 처리해야 할 서류도 많다. 나는 초기에 법인 만드는 비용을 아끼려고 꾸역꾸역 혼자서 법인을 설립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업체에 맡길 경우 300~350만원 정도가 든다고 했다. 자, 이제 법인을 설립했다. 그 다음은 업종마다 다르겠지만 실제 사업의 전개라고 볼 수 있다. 우선 내가 최근에 했던 공간서비스업을 기준으로 대표의 일정을 돌아보겠다.

큰 업무들 위주로 나열해보면 다음과 같다. 회계 · 재무 처리(매달 매입매출, 비용처리 등), 사무실 운영 관리(월세, 보험, 각종 공과금 및 렌탈), 인력관리(채용, 유지, 인력위기관리 등), 재고관리(제품, 소모품 · 비품 파악 및 구매 등), 마케팅 관리(직간접, 이벤트, SNS, 블로그, 영상 등) 제휴관리(제휴처 서비스 조율, 계약 등), 영업관리(공 · 사기업 텔레세일즈, 방문세일즈 등), 개발관리(제품, 서비스 등), 경쟁사 관리, 위기 관리, 투자처 관리(보고, 사용 계획, 신규 투자처 발굴 등), 매장(실시간 응대, 물품 구비, 매장 청소, 화장실 청소 등). 위 업무들은 스타트업을 하던 시절 내가 했었던 실제 업무들이다. 물론, 너무 하찮은 일이라 생략된 내용도 있고 업종에 따라 당장 필요치 않은 부분도 있다. 하지만, 위 업무들은 스타트업 대표라면 반드시 모두 할 줄 알아야하고 1인 또는 2~3인의 소수의 인력으로 시작하는 스타트업들이 곧 맞이할 현실이라는 것이다.

스타트업 대표의 하루는 하찮은 업무에서 부터 투자금을 이끌어내는 핵심적인 업무까지 모두 포함되어있다. 따라서 지독한 책임감은 필수다. 여기에 직원이라도 생기기 시작하면 처리하고 책임져야 할 일은 더 많이 늘어난다. 매달 1일 부터 24일까지는 일에만 매달려있다가도 25일 급여일에는 급여처리를 위해 중요한 일들을 잠시 중단해야한다. 그리고 남은 며칠 동안 또 업무에 매진하다보면 한 달은 금세 지나간다. 그렇게 바쁜 한 두 달이 쌓이면 어느 새 12월이 되어있을 것이다.

물론, 서비스가 성공하고 제품이 잘 팔려서 시리즈 A, B 투자를 받고 위의 일들을 처리할 인재들을 영입해 제대로된 회사 시스템을 갖추기 시작하면 실무는 많이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책임은 초기보다 훨씬 더 커진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게다가 그 단계에서는 수 십 억에서 수 백 억을 투자한 투자처들의 기준을 만족시키고 성공해서 그들에게 수익을 안겨줘야하기에 예전과는 다른 상상하기 힘든 압박감도 견뎌내야한다. 즉, 책임과 고통의 정도가 일반 직장인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는 뜻이다.

이 모든 과정을 잘 견뎌낸 뒤에 당신의 기업이 성공적으로 상장되거나 대기업에 인수 · 합병돼 큰 돈을 벌었다면, 이제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대표님’ 행세를 조금은 할 수 있다. 하루쯤 휴가를 내고 푹 쉰다거나 겉 멋든 사람처럼 사람들 앞에서 약간은 으스대도 좋다. 하지만 이런 이들 조차 완전히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사람이 아닌 이상 ‘책임감’과 ‘압박감’은 여전히 존재한다. 여전히 ‘대표’라는 직책이 그저 매력적인가? 참고로 난 대표라는 타이틀의 환상에서 벗어난지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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