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어도 보기 어려운 시각장애대학생의 학습권 <105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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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싶어도 보기 어려운 시각장애대학생의 학습권 <1054호>
  • 곽태훈 기자
  • 승인 2019.04.14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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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복지부의 장애인현황 통계에 따르면 2017년 12월 31일 기준, 보건복지부에 등록된 20대 시각장애인은 6,378명이다. 이들 중에는 현재 대학에 재학 중인 시각장애인들도 존재한다. 학생에게 학습권은 당연하게 지켜져야 하는 권리다. 그러나 시각장애대학생들에게는 그 학습권이 제대로 지켜지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국립중앙도서관의 2018년 12월 장서현황 통계자료에 따르면 1,623만 3,182건의 온라인 자료 중에서 장애인 대체자료는 4만 2,403건으로 이는 전체 자료의 0.26%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마저도 대부분 소설, 에세이 등 보편적인 자료에 그칠 뿐 대학 교재로 사용되는 전공 관련 대체자료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시각장애대학생들이 필요한 자료 찾기가 하늘의 별 따기인 현실 속에서 학습권이 제대로 지켜질 리가 만무하다. 이에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을 맞아 본지에서 시각장애대학생들의 학습권을 조명해보고자 한다.

시각장애인의 학습언어
1926년 11월 4일. ‘훈맹정음(訓盲正音)’이 반포된 날이다. 훈민정음과 발음이 유사한 훈맹정음은 ‘양각의 점의 조합으로 표기된 기호를 촉각으로 감지해 읽을 수 있도록 만든, 시각장애인을 위한 한글 점자’를 뜻한다. 이는 당시 제생원*의 맹아부 교사로 재직 중이던 송암 박두성 선생이 파리왕립맹아학교 출신인 루이 브라유(Louis Braille)가 1829년에 창안한 6점식 점자를 한글에 도입해 만들어진 최초의 한글 점자 체계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한글 점자는 이러한 훈맹정음에 기초하고 있다. 최근에는 기술의 발전으로 시각장애인이 학습에 이용할 수 있는 대체자료가 점자자료를 비롯해 △음성자료 △영상자료 △전자자료 등 다양해졌지만, 촉각을 이용해 정보를 파악할 수 있는 점자가 시각장애인의 학습에 있어 근간이 되는 언어라는 사실엔 변함이 없다. 다른 자료들에 비해 비교적 가장 정확한 학습이 가능한 언어기 때문이다.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관계자는 “대체자료로 많이 활용하는 음성자료의 경우 해독을 잘못할 여지가 큰데, 점자는 직접 만지는 것이기 때문에 정확한 정보 확인이 가능하다. 그리고 비장애인 대학생 분들도 직접 쓰고 읽으면서 학습하는 것과 듣기만 하며 학습하는 것을 비교했을 때 기억에 남는 시간이 다르지 않은가. 이와 마찬가지로 점자를 이용해 직접 만지면서 학습하는 게 더 오래 기억할 수 있어서 개인적으로 선호하고 다른 시각장애인 분들에게도 권하는 편이다”며 점자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1913년 설립된 최초의 관립 특수교육기관, 現 국립서울맹학교의 전신 

‘훈맹정음’보기 힘든 전공서적
그러나 정작 시각장애대학생을 위한 점자 도서를 찾기는 쉽지 않다. 첫 번째 이유는 애초에 점자 도서를 빌릴 수 있는 도서관의 수가 적기 때문이다. 문화체육관광부 국가도서관통계시스템의 2016년 장애인도서관 통계자료에 따르면 전국에서 운영되고 있는 장애인도서관은 44곳이며, 그 중 대학이 밀집돼있는 서울시에 소재한 장애인도서관은 16곳인 것으로 나타났다. 

두 번째 이유로는 그나마 도서관에 구비돼있는 점자 도서의 경우에도 전공 교재나 참고서와 같은 전문서적이 아닌 일반서적에 치중돼있어서다. 시각장애 6급인 이종혁(경제 14) 학우는 “아직 점자를 읽을 정도로 눈이 나빠진 건 아니지만, 언젠가는 그런 상황이 올지도 모르기에 항상 대비는 하고 있다. 흔히 볼 수 있는 베스트셀러는 가끔씩 점자 도서로 나오는 걸로 알고 있는데, 전공서적의 경우 전공별 특성을 일일이 다 맞춰서 점자 도서를 제작해 줄 출판사가 있을지 모르겠다. 때문에 점자 도서를 구한다는 게 현실적으로 쉽지는 않을 것이다”고 전했다. 이종혁 학우의 말처럼 점자로 된 전공서적은 일반서적에 비해 수요가 적고 특수성을 갖는다는 이유에서 개인이 주문해야 제작이 이뤄지는 방식이다. 이는 전자점자 도서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시각장애 1급인 숭실대학교 행정학과 4학년 이경석 학생은 “전자파일로 된 점자가 필요한데 이를 제작해주는 곳은 한정돼있는 반면 수요가 많다보니 도서 한 권을 맡기면 제작까지 평균적으로 빠르면 2주에서 3주, 느리면 두 달도 걸린다”고 밝혔다. 

대학 교재 한 권 제작에만 수개월 걸리기도 해
앞서 언급했듯이 점역된 전공서적은 필요한 개인이 주문해야 제작이 이뤄진다. 제작과정은 통상적으로 [필요한 책 타이핑→책과 대조해 1차 교정 진행→점역→2차 교정]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제작기간이 상당히 길 수밖에 없다. 한국복지재단에 따르면 점자 도서 제작에 평균 124일 정도 걸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만일 강의 교재를 개강 후 알게 된다면 전공서적 점자 도서를 종강할 쯤에서야 받는 경우도 생기는 것이다. 실제로 아주대학교 영어영문학과에 재학 중인 한국시각장애대학생회 한혜경 회장(이하 한 회장)은 “원서를 자주 사용하는 과 특성상 점역이 완료된 원서를 받기까지 최대 5개월이 걸린 적도 있다. 원서를 받은 시기가 기말고사를 보는 시기와 겹쳐 상당히 허무했었다. 이미 있는 자료를 활용한다면 모를까 새로운 자료를 맡겨서 학기 도중에 받아 수업에 맞춰 활용하기는 어렵다”며 불편을 호소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일부 시각장애대학생들은 학기가 시작하기 전 방학 때부터 수업 교재를 알아놓기도 한다. 이경석 학생은 “방학 때부터 교수님에게 어떤 교재를 사용하실 예정인지 문의 메일을 보낸다. 최대한 빨리 맡겨야 개강에 맞춰 점자 도서를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특히 원서 교재를 주로 사용하는 과의 경우 두 달도 더 걸리기 때문에 미리 교재를 알아두지 않으면 더 힘들다”고 전했다. 이처럼 점역과정에서 장시간의 제작기간으로 인한 불편을 감소시키는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출판사가 보유하고 있는 원본 파일을 점역업체 측에 제공한다면 책 타이핑과 1차 교정 과정이 생략돼 제작기간을 줄일 수 있다. 이 경우「저작권법」제33조 1항에 따라 저작권 침해 소지도 없다. 

'저작권법'
제33조(시각장애인 등을 위한 복제 등) ①공표된 저작물은 시각장애인 등을 위하여 점자로 복제 · 배포할 수 있다.

그러나 출판사에서는 저작권 침해를 근거로 원본 파일 제공을 꺼리기도 한다. 어떻게 된 일일까? 이와 관련해 국립장애인도서관 정기애 관장(이하 정 관장)은 “현실적으로 협조하지 않는 출판사를 나쁘다고 얘기할 수 없다. 출판사들도 장애인들을 위해서 파일이 쓰이는 건 찬성한다. 다만, 예를 들어 원본 파일을 넘겨줬을 때, 국립장애인도서관에서 장애인 대체자료를 자체적으로 제작하는 것도 있지만 인력이 20명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외주로 시행하는 경우도 많다. 그럴 경우 점역을 맡기는 외주 업체에도 원본 파일 제공을 해야 하기 때문에 보안 프로그램을 설정해 원본 파일을 넘긴다고 하더라도 점역을 위한 유통 과정에서 외부로 새나갈 소지에 대해 염려하는 것이다. 이는 아직까지 풀지 못하고 있는 부분이다”고 설명했다. 그러다보니 현재 국립장애인도서관마저도 출판사에 요청한 파일의 50%만을 넘겨받고 있는 실정이다.

학습의 길, 더욱 넓혀야 ···
지난해 6월 13일 시행된「점자법」제2조(기본 이념)에서는 ‘시각장애인은 문자 수단으로서 점자를 사용할 권리가 있으며, 국가와 국민은 점자의 발전과 보전 · 계승을 위하여 적극적으로 노력하여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해당 법의 기본 이념처럼 최근 시각장애인의 학습권과 관련해 개선의 움직임이 이뤄지고는 있다. 온라인 서점 ‘YES24’는 지난 2017년 점자 스마트기기를 제작하는 국내 스타트업 기업 ‘닷(Dot)’과 ‘시각장애인 독서활동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해 ‘YES24 점자책 서비스’를 올해부터 점진적으로 시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타이핑과 1차 교정 과정이 생략돼 수개월 걸리던 점자책 제작기간이 최대 10일 이내에서 빠르면 하루까지 줄어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시행초기이기 때문에 개인이 아닌 기관에서만 점자 도서 구매가 가능하다. YES24 측에 점자책 서비스와 관련해 문의하자 YES24 관계자는 “점자책 서비스는 정식으로 오픈됐으나 아직까지는 개인적으로 구매가 어렵다. 또한, YES24 점자책 서비스 홈페이지에 등록돼있는 도서만 구매가 가능하다. 추후 더 많은 도서를 구매할 수 있도록 개선할 예정이지만 현재로선 정확한 일정이 확인되지 않고 있다”고 답했다. 획기적인 변화인 만큼 해당 서비스가 분량이 많은 전공서적에까지 원활하게 점자 도서를 공급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국립장애인도서관에서도 시각장애를 가진 이들의 학습권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정 관장은 “e-book이라고 하는 형태의 전자도서는 보이스 기능이 탑재돼있다. 이런 자료들은 장애인 접근성을 고려하는 방향으로 조금만 손을 보면 시각장애인들도 충분히 이용할 수가 있는데 아직까지 국내에서 이를 고려한 전자도서는 거의 없다. 이를 다시 장애인 분들이 읽을 수 있도록 전환하려면 한 건당 40만 원 정도의 비용이 소모되다보니 전환되는 전자도서의 비율이 전체의 1%도 안 된다. 해서 앞으로 전자도서가 나올 때 장애인 접근성을 높일 수 있는 규격을 반영해달라는 내용의 법률 개정을 추진 중에 있다”고 밝혔다. 

아직 남아 있는 이야기들
이처럼 시각장애인들의 학습권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 시각장애대학생들은 과거에 비해 학습권 보장이 많이 호전됐다고 말한다. 그러나 여전히 미진한 부분들도 많다. 이에 지금보다 더 개선해야할 부분에 대한 시각장애대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먼저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대체자료를 보다 쉽게 구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한다는 입장이 있다. 이와 관련해 이경석 학생은 “시각장애대학생들이 학습에 사용하는 것 중 데이지 파일** 이라는 게 있는데 이런 파일을 출판사에서 만든 뒤 판매를 한다면 시각장애인들과 출판사 모두 만족할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강의 현장에서 개선돼야할 부분도 있다. 이종혁 학우는 “자기 권리는 자기가 챙기는 게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장애학생이 직접 도움을 요하는 부분을 요청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교수님들이 강의를 하실 때 칠판에 글씨를 작게 쓴다든지 비장애인 학생들과 동일한 시험시간을 적용하시는 경우도 있다. 그런 부분에 있어서 말하기 어려운 불편을 겪기도 한다. 이는 교수님과 시각장애대학생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할 지점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으며, 한 회장은 “국립중앙도서관에서도 데이지 파일 제공과 같이 시각장애인의 학습권을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개선돼야할 부분은 수도 없이 많다. 수업 도중 갑작스럽게 퀴즈를 보게 될 경우 대체자료화 되어 있는 퀴즈 파일을 요청했을 때 교수님들이 깜빡했다고 말씀하시는 경우도 있었고 비장애인 학생들보다 1.7배의 시험 시간을 연장 받을 수 있는데 이를 계산하지 못하셔서 다른 학생들은 퀴즈를 마치고 수업을 듣는 동안에 퀴즈를 풀어야 하는 일도 있었다. 결국 가장 핵심적인 것은 장애에 대한 인식이다. 단순히 규정과 법에 의해 의무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것을 넘어 ‘아, 이 사람이 어떻게 하면 편하겠다’는 고민을 교수님도 장애학생지원센터도 한 번씩은 해봐야한다”는 의견을 전했다. 

정 관장은 시각장애인의 학습권은 자립을 위해 굉장히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자립을 도모하는 측면에서 시각장애인의 학습권은 필수적이라는 말이다. 학업에 몰두하는 시각장애대학생들의 경우 학습권은 더욱 중요할 것이다. 그들을 위한 진정한 복지가 무엇일지 사회적 차원에서의 심도 깊은 고민이 요구되는 이유다.

 **DAISY(Digital Accessible Information System)파일은 세계 40여 개국이 사용하는 시각 및 독서장애인용 유니버설 멀티미디어 콘텐츠로, 디지털음성도서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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