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과 한국인 <105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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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과 한국인 <1053호>
  • 정수현 (예술체육대학 바둑학과) 교수
  • 승인 2019.03.31 0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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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유학을 간 한국 학생이 경험한 일이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까 한 미국 학생이 다가와 바둑을 둘 줄 아느냐고 물었다. 둘 줄 안다고 하니까 그 학생이 좋아하며 자기 집으로 놀러오라고 했다. 그 집에서 맛있는 식사를 한 후 바둑을 한 판 두게 되었다.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그 미국 학생이 너무 생각을 많이 하는 바람에 한국 학생은 답답해서 혼났다고 한다.

이 에피소드처럼 외국인 중에는 한국인이라면 바둑을 잘 두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K-POP이나 태권도처럼 바둑은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상품의 하나이다. 구글에서 개발한 인공지능 컴퓨터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가 한국의 바둑고수 이세돌 9단에게 도전장을 던진 것도 그 때문이다.

세계에서 바둑강국으로 한 · 중 · 일 삼국을 꼽는데, 그 중에서도 바둑과 가장 친숙한 나라는 한국이다. 바둑을 둘 줄 몰라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부분 바둑이 어떤 것인가를 안다. 또한, 국민들이 바둑에 우호적이다. 갤럽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 국민의 80%는 바둑이 자녀교육에 유익하다고 보는 것으로 나온다.

바둑과 친숙한 우리나라에는 독특한 문화가 있다. 사람들이 세상일을 바둑으로 얘기하는 관습을 갖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신앙을 바둑에 비유하면 어떻다거나, 철학을 바둑에 비유하면 어떻다는 식으로 바둑을 사용해 설명하기를 좋아한다.

예전에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경제운용 정책을 바둑에 비유해 먼저 두 집을 내고 후일을 도모해 나가겠다고 했다. 얼마 전 문재인 대통령은 바둑에서 복기하듯, 북미대화가 결렬된 원인을 분석해 보자고 하였다. 이외에도 한국인들은 교육, 철학, 대선, 주식투자, 커피, 축구 등 다양한 분야를 바둑으로 비유하곤 한다.

한편 매스컴에서는 바둑용어를 끌어다 아예 시사용어로 쓰고 있다. “미 · 중 해운사 2곳 대북압박 · 비핵화 견인 대북압박 포석”, “OO당 포퓰리즘 자충수”, “구인 · 구직 어려운 양곤마의 해법” 등과 같이 헤드라인을 바둑용어로 표현하고 있다. “김정은의 사석작전 · 핵무기 버리고 평화 얻을까”라는 기사에서는 바둑에서 돌을 버리는 전법인 ‘사석작전’을 쓰고 있다. 이외에도 정석, 수순, 초읽기, 대마불사 등 시사용어가 된 바둑용어는 20여 개가량 된다.

이처럼 바둑으로 사회현상을 얘기하는 것은 한국의 특별한 문화라고 할 수 있다. 중국과 일본에서도 비슷한 관행이 있지만, 한국처럼 대량으로 사용하지는 않는다. 우리 한국인이 이처럼 바둑으로 세상사를 얘기하는 것은 국민들이 바둑과 친숙하다는 암묵적인 관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바둑이 아닌 택견이나 체스 등의 용어로 세상일을 말하면 커뮤니케이션에 지장이 있을 것이다.

또 하나의 이유는 바둑이 세상사와 닮았다는 생각이다. 옛 선비들은 “세사기일국(世事棋一局)” 즉 세상사가 바둑 한판과 같다고 했다. 바둑과 세상 모두 이권을 차지하기 위한 영토경쟁이며, 끊임없이 문제해결과 선택을 해야 하고, 거래와 타협을 해야 하는 등 비슷한 점이 많다. 세상사와 바둑이 닮았다면 바둑에서 세상을 사는 지혜와 교훈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바둑의 십계명인 ‘위기십결’에는 이기려는 마음이 앞서면 패한다, 신중을 기하여 경솔하게 결정하지 마라, 위기에 처하면 버려라 등의 인생살이에도 적용되는 내용이 들어 있다. 그 외에도 바둑에서는 남을 공격하기 전에 자기 자신부터 돌아보라, 부분보다 전체를 크게 보라는 등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나 처세술에 관한 조언도 한다.

바둑은 경영과도 관련이 있다. 외국 기업인 중에는 사원을 채용할 때 바둑을 알면 가산점을 주는 이도 있다. 바둑에는 경영의 이치가 담겨 있어 바둑을 잘 두면 회사업무를 잘 수행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흥미진진한 두뇌스포츠인 바둑을 즐기며 삶의 지혜를 깨닫는다면 일석이조일 것이다. 우리 학생들도 한국의 자랑스러운 문화이자 세상사의 축소판인 바둑을 교양으로 알아두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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