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물(齊物)하며 진심(盡心)하라! <104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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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물(齊物)하며 진심(盡心)하라! <1048호>
  • 장원목 (인문대학 철학과) 교수
  • 승인 2018.11.25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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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제물론」의 핵심 주제는 ‘제물아(齊物我) · 동시비(同是非) · 일생사(一生死)’라고 말할 수 있다. 너와 나[物我], 옳고 그름[是非] 뿐만 아니라 삶과 죽음[生死] 조차도 차별하지 말고 동일시하라는 말이다. 만물 만사를 평등하다고 여기라는 것, 곧 ‘제물(齊物)하라’는 것이다. 이게 가능한 일인가?

우리는 자의식의 가동이 시작되는 어린 시절로부터 끊임없이 나와 남을 비교하고 열등감과 우월의식을 왕래하며 괴로워한다. 학교 교육은 이러한 서열과 차등의 논리를 쉬지 않고 재생산한다. 문명은 우리로 하여금 공동체의 한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다할 것을 재촉한다. 즉 우리 각자는 자식으로서, 학생으로서, 친구로서, 남편으로서 … 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다그친다. 이 때문에 우리는 장자가 권하는 제물의 논리에 당황한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자. 문명과 학교 교육이 우리에게 강요하는 차등과 다름의 논리는 평등과 같음의 논리를 전제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평등과 같음을 알지 못하는 우리가 어찌 차등과 다름을 인식할 수 있겠는가? 우리의 차등적 현실은 그 이면에 강력한 평등의 논리를 포함하고 있으며, 다름은 같음의 공동 지반 위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임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우리 모두는 인간인 한에서 동일하다. 우리 모두는 생명체로서 가지런하다. 우리 모두는 존재한다는 점에서 평등하다. 우리 모두는 살아 있으며 동시에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점에서도 평등하다. 나아가 개체로서의 우리 모두는 각각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유일무이한 존재이며 우주의 세포이자 우주 그 자체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평등하다.

우리 인간은 누구나 삶에 고달파하는 유한한 상대적 존재라는 점에서 다름이 없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한과 절대와 완전한 자유를 꿈꾼다는 점에서도 평등하다. 우리 각자는 우주의 한 작은 일부이지만 우주 전체를 사유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서로 다를 바 없다. 우리 인간은 여타의 존재자들과는 달리 의식의 분열 상황에서 고통에 시달리면서 그 분열을 제거하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인다는 점에서도 동일하다. 과학과 종교, 예술과 철학을 포함한 문명 전체는 바로 이 극심한 분열에 시달리던 인간들이 만들어낸 고통의 흔적들이 아니겠는가?

그리하여 우리는 차등적 현실을 바라보며 차별의식에 괴로워하기 이전에, 나 자신이 원래,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평등무차별 세계의 거주민임을 먼저 자각해야 한다. 이러한 자신을 인정하고 자각함으로써 우리는 불필요한 열등감과 우월의식을 극복할 수 있다. 나와 타인, 나아가 모든 존재들을 편견 없는 평등무차별의 정신으로 바라볼 수 있는 안목을 기를 수 있다. 이러한 자각은 선불교의 돈오(頓悟)와도 통한다.

‘진심(盡心)’은 ‘지금 여기에서 나의 최선을 다하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맹자」 「진심」편에 나오는 말이다. ‘제물’이 도가철학의 핵심 주장이라면, ‘진심’은 유가 철학의 중요한 실천원리다. 「논어」는 ‘배움’ 즉 ‘학(學)’을 강조하면서 시작한다. “배우고 이를 끊임없이 익혀나가는 삶이 어찌 즐겁지 아니하겠는가?(學而時習之, 不亦說乎?)” 「논어」의 마지막 구절에는 한계상황 즉 운명[命]이 언급된다. “자신의 운명을 알지 못하면 군자가 아니다(不知命, 無以爲君子也.)” 유가의 정신은 이처럼 ‘각자 최선을 다한 후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는 것’이다. 이를 한 마디로 하면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 되겠다. 이 말은 「삼국지」의 ‘수인사대천명(修人事待天命)’에서 유래한 말로서 유가들이 자주 입에 올리던 말이다. 이러한 유가적 삶이 바로 ‘진심’이다.

우리는 흔히 유가와 도가를 중국철학의 양대 조류라고 말하면서 이 둘을 양립불가능한 철학인 것처럼 이해한다. 그러나 필자는 유가와 도가의 철학을 종합하여 ‘제물한 후에 진심하라’ ‘진심하면서도 제물하라’ ‘제물과 진심을 동시에 하라’는 실천원리를 필자 자신과 필자의 강의에참여한 학생들에게 자주 들려주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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