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하는 모습이 아름다운 '직장인테이너' 전병준(경영10)동문을 만나다 <104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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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하는 모습이 아름다운 '직장인테이너' 전병준(경영10)동문을 만나다 <1045호>
  • 이준혁 기자
  • 승인 2018.10.15 0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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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GS리테일 편의점사업부에서 OFC(Operation Field Counselor)라는 영업 관리 직무를 맡고 있는 전병준입니다. 올해 4년차이고요. 현재 서울 강북구에 있는 GS25 편의점 점포 13곳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Q. GS리테일이라는 회사 이름은 학교 앞 편의점 때문에 학우들에게도 참 익숙할 것 같은데 맞나요?
A. 네. 사실 많은 사람들이 GS리테일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GS25 편의점만 떠올리기는 해요. 물론 GS리테일의 주력은 편의점 사업이 맞기는 해요. 그렇지만 GS25 편의점 외에도 GS수퍼마켓, 왓슨스라고 불리기도 했던 랄라블라, 파르나스 호텔 등 여러 사업이 있답니다.

Q. GS리테일이 생각보다 많은 사업 분야를 가지고 있네요. 그중 현재 맡고 계신 편의점사업부의 OFC 직무에 대해 알 수 있을까요?
A. OFC 직무는 24시간 동안 365일 영업하는 편의점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일들을 처리하는 직무입니다. 작게는 △매장에 전시될 상품의 발주 △근무자 교육 △행사 관리부터 △매출 관리 △이슈 대응 △상권 파악 △전략 수립 △계약 진행 △판촉 수립 △경영주 서포트까지 정말 다양한 업무를 맡게 됩니다. 많은 분들이 아시는 것처럼 GS25 편의점에는 수많은 가맹점들이 있습니다. 본사의 직영 매장도 있지만, 가맹점이 더 많아요. 그래서 각 점포별로 ‘사장님’이라 불리는 경영주님들이 계시고요. OFC 직무의 중요한 업무는 본사와 가맹점 사이의 소통을 원활하게 하는 것입니다. 본사에서는 전체적인 매출이나 자료 등을 토대로 행사나 프로모션을 기획합니다. 기획 후에 관련 내용이 경영주들에게도 전달돼야 하는데, 이를 문서로만 보내게 되면 프로모션 내용이 제대로 전달되기 어려울 수 있어요. 고객이 GS25라는 간판을 달고 영업하는 가게에 갔을 때, 점포의 위치가 서울에 있든지 부산에 있든지 상관없이 동일한 수준의 서비스를, 또 동일 상품들이 일정한 규칙에 따라 구비되어 있도록 담당 점포들을 관리하고, 결정 내용을 전달하죠. 한마디로 본사-점포를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하는거죠. 그리고 각각 점포에서의 일도 도와드립니다. 편의점에서 일하는 근무자들의 교육도 돕고, 발주 넣을 상품의 종류와 수량을 본사가 갖고 있는 빅데이터를 토대로 비교해서 더 큰 수익을 내실 수 있도록 알려드리는 등 경영주의 사업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일들도 진행합니다.


Q. 상당히 많은 업무를 담당하고 계시는데, 어떤 사람이 이런 직무에 잘 맞을까요?
A. 생각해보면 OFC 직무는 사람들과 대면할 일이 정말 많아요. 그러다보니 동료들이 전부 트렌드의 흐름 파악에 민감합니다. 그래서 이 직무에는 열정 있고 활기찬 사람이 잘 맞을 것 같아요. 이 직무에서 활동하게 되면 정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어요. 일단 여러 상권 정보를 토대로 경영주님들과 상담하다 보면 상권 보는 눈이 정말 좋아져요. 매장의 위치와 모습을 보면 대략적으로 매출 견적을 내볼 수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시간 활용이 비교적 자유로워요. 자신의 시간을 필요에 맞게 사용할 수 있어서 좋아요.


Q. 회사 생활하면서 본보기로 삼을 만한 사람이 있으신가요?
A. 사실 말씀드려도 회사 사람이기에 여러분들은 모르실 거예요. (웃음) 본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 물론 많이 계시지만, ‘제1의 전병준’이라는 포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따로 누굴 언급하지 않을게요. 저만의 독창적인 캐릭터로 가고 싶어요. 회사 생활도 열심히 하면서 그 밖의 일도 다양하게 해볼 수 있는 ‘직장인테이너’가 되는 게 현재 제가 가지고 있는 목표니까요.


Q. 말씀 중에 ‘제1의 전병준’과 ‘직장인테이너’라는 용어가 굉장히 생소하게 들리는데, 어떤 뜻인지 알 수 있을까요?
A. (웃음) 사실 방금 말씀드린 것들은 따로 누군가가 말한 유명한 말은 아니고요. 그냥 제가 제 나름대로 생각해서 만들어낸 말입니다. 제1의 전병준이라는 포부는 제2 또는 제3의 누가 되기보다는 제1의 전병준이라는 특별한 사람이 되겠다는 뜻과 NO.1을 뜻하는 제일의 전병준이 되겠다는 다짐이기도 해요. 그리고 직장인테이너의 경우에는 직장인과 엔터테이너를 합친 말인데, 이는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다양한 일을 시도하는 엔터테이너가 되겠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사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다른 시도를 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워요. 일단 퇴근하면 당일 업무로 인해 진이 빠져요. 아마 모든 직장인이 같을 거예요. 그래서 퇴근하고 나면 뭔가 새로운 일을 시도하는 게 시간적으로나 체력적으로나 굉장히 어려워요. 다음날 아침에 회의가 잡혀 있거나 내야 하는 보고서가 있으면 그걸 또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죠. 그렇지만 저는 다양한 일을 시도해보고 싶어요. 그래서 지난 학기에는 학교에 와서 후배들을 대상으로 특강을 하기도 하고, 결혼식 사회를 보기도 하고, 어제는 회사 일과 관련해서 잡지사와 인터뷰를 진행하기도 했어요. 2주 뒤에는 회사에서 하는 추계활동에서 MC를 볼 예정이고요.

Q.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대학 시절의 이야기를 여쭤볼게요. 명지대학교 전공자유학부에 오게 된 계기는 무엇이신가요? 
A. 사실 고등학교에 다닐 때는 공부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남들보다 대학에 조금 늦게 들어오기도 했고요. 20대였기 때문에 부모님이 가라는 학과에 맞춰서 가기보다는 스스로 학과를 선택하고 싶었죠. 그런데 어느 학과를 골라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러던 와중에 당시 우리 대학에 전공자유학부가 새로 생겼고, 해당 학과가 학교를 경험한 후 2학년 때 전공을 선택하는 학과라는 점에 흥미를 느껴서 지원했습니다.

Q. 전공자유학부 첫 재학생이시겠네요? 신생 학과에 입학하면서 어려웠던 점은 없으셨나요?
A. 어려움은 당연히 있었어요. 신생학과여서 복학생이나 선배들이 아무도 없었거든요. 제가 다른 동기 친구들보다 나이가 많았어요. 그래서 학과에 동년배 친구가 없어서 당황스러웠죠. 만약에 긴 전통을 가진 학과였다면 동갑인 친구를 찾기가 훨씬 쉬웠을 거라는 아쉬움도 있었어요. 그렇지만 나쁜 점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어요. 동갑인 친구가 있었으면 동기인 동생들과 친해지기 어려웠을 테니까요. 저보다 어린 친구들에게 먼저 다가가려 했었고 그 덕분에 후배 동생들과 친해질 수 있었어요. 그리고 제가 실질적으로 1학년으로 다닐 때는 전공자유학부 2기 친구들과 다녔어요. 대학에 합격했을 때는 제가 군대에 있었기 때문에 입학하자마자 바로 군 휴학을 했거든요. 그래서 복학했을 때에는 새로 입학한 2기 후배 친구들과 학교생활을 했어요.

Q. 학과에 진학한 후 학교생활은 어떠셨나요?
A. 제가 처음 속했던 전공자유학부는 홀로 방목기초교육대학에 소속되어 있었고, 학과에 전통이나 틀 같은 게 하나도 없어 힘든 점도 있었어요. 그렇지만 그렇기에 우리가 전통을 만들어나갈 수 있었어요. 학교에 강연하러 와서 들어보니까 그때 저랑 동생들이 만들었던 전공자유학부 농구 학회 ‘폭풍자전’도 지금까지 존재하고, 학과 과잠도 똑같이 이어져 내려온 것 같아서 괜히 뿌듯하더라고요. 그 당시에도 과가 발전해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Q. 전공자유학부 농구 학회 ‘폭풍자전’을 직접 만드셨나요?
A. 네. 당시에 전공자유학부에는 축구 학회만 있었어요. 그래서 농구를 하고 싶었던 친구들은 할 수가 없었죠. 그래서 학과에서 제일 연장자였던 제가 앞장서서 학회를 만들었습니다. 지금까지도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모습을 볼 때마다 뿌듯할 따름입니다. 전통을 만들어나가는 것, 그게 신생학과 재학생의 장점이지 않을까 싶네요.

Q. 신기한 경험이셨네요. 그리고 새빛모리 회장도 2년이나 역임하셨다는 걸로 알고 있는데, 새빛모리에 참여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따로 있으신가요?
A. 사실 처음 대학에 들어왔을 때에는 새빛모리에 대해 알지 못했어요. 그러다가 어떤 동생이 새빛모리 명함을 받아와서 새빛모리 설명회에 참가한다고 하길래 같이 따라갔다가 관심을 갖게 되었죠. (웃음) 정말 미안하게도 명함을 받았던 동생은 아쉽게 떨어지고 얼떨결에 따라갔던 제가 합격을 했어요. 물론 그 동생이 웃으면서 뭐라하기는 했는데, 결과적으로는 잘 풀었죠.

Q. 새빛모리 활동하시면서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 일이 있나요? 
A.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축제 때 빙수를 판매했던 일이에요. 판매 수익금을 명지대학교 새빛모리 이름으로 KBS1 사랑의 리퀘스트에 기부했었어요. 그래서 그 때 방송 끝나고 기부자 명단에 오르기도 했답니다.

Q. 성적 관련 장학금을 상당히 많이 수혜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 특별한 계기가 있을까요?
A. 1학년 여름방학 때 저는 한정식 식당 등에서 거의 하루 종일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그렇게 하다가 방학을 전부 보냈어요. 그렇게 방학 내내 아르바이트를 하고 나니 개강한 시점에 제 수중에는 163만 원 정도의 돈이 있었어요. 그런데 맨날 같이 놀던 친구가 여름방학 동안 해외여행을 다니며 놀려 다녔다는 이야기를 듣게 됐어요. 그래서 돈은 어디서 났는지 물어보니까 반액 장학금으로 170만 원 정도를 받아서 학비를 아껴 놀러 다녔다고 하더라고요. 나는 방학 내내 아무것도 못하고 아르바이트만 했는데, 그 친구는 학점도 잘 받고 장학금까지 받아서 방학 동안 놀러 다녔다고 생각하니까 억울했어요. 그래서 주위 사람들한테 다음 학기에는 반드시 장학금을 받겠다고 선언했죠. 실제로 공부도 엄청 열심히 했어요. 그 결과, 1학년 2학기 때 모범 1종 장학금을 받을 수 있었어요. 그렇게 한 번 장학금을 받았더니 그게 묘하게 중독성이 있더라고요. 2학년 1학기에도 동일하게 장학금을 받다가 2학년 2학기에 공부를 조금 소홀하게 했더니 장학금을 놓쳤어요. 그 한 학기에 장학금을 못 받았은 게 누군가가 내 장학금을 훔쳐 간 느낌이었죠. 그래서 3학년 1학기부터는 전액 장학금을 받기 위해 나에게 맞는 시간표를 짜고 시험기간에는 경상관 9층에 있는 열람실에 살다시피 했어요. 씻지도 않고 시험 때까지 공부했죠. 주위에 있던 분들은 이상하게 보셨을 거예요.

Q. 그러면 여러 기업이 있었을 텐데 GS리테일에 입사하게 된 이유가 있으신가요?
A. 사실 제가 4학년 1학기 때는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공채를 준비했어요. 근데 그때까지 저는 공인어학성적이 없었어요. 그래서 지원 자격에 어학성적이 없는 회사를 골라야 했죠. 당시 제가 찾았던 회사는 4곳 정도였어요. 그래도 이름을 말하면 누구나 알 법한 대기업만을 골랐었죠. 원래는 떨어지면 2학기부터 어학성적을 준비할 생각이었어요. 그래야 그 다음에 바로 공채시즌을 노릴 수 있었을 테니까요. 그런데 운이 좋게도 GS리테일 1차 전형에 바로 합격했어요. 저도 너무 당황했죠. 따로 자기소개서 쓰는 법을 배운 적도 없고, 처음 쓴 기업에서 1차 전형을 합격했으니까요. 그렇게 2차 면접, 3차 임원면접 전형까지 통과하여 입사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말로 하니까 정말 쉬워 보이고 간단해 보이는데, 그렇지 않았어요. 지금은 시간이 지났으니까 이렇게 간단하게 말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남들보다 늦은 시기에 대학에 들어왔고, 그래서 더 노력한 결과라고 생각해요.

Q. 동문 특강에 참여하시는 등 졸업 후에도 학교에 여러 차례 오셨는데, 소회가 어떠신가요?
A. 학교가 달라진 것 같으면서도 여전히 같아서 너무 좋습니다. 또 학교에 찾아오면 반겨주시는 교직원 선생님들이 계셔서 항상 감사한 마음이고요. 단지 이제 내 또래처럼 느껴졌던 후배들이 너무 어려 보인다는 점이… (웃음)

Q. 마지막으로 후배들에게 해주시고 싶으신 말씀이 있으신가요?
A. 경력개발팀이나 학생복지봉사팀, 대학일자리센터 등 본인에게 도움이 되는 학교 부서를 자주 찾아가서 도움을 받았으면 좋겠어요. 교직원 선생님들께서는 학생들을 도와주시기 위해 항상 준비하고 기다리고 계세요. 많은 후배들이 늦은 시기에 찾아와 별다른 도움을 받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 안타까워요. 이른 시기일수록 좋아요. 1학년 때라도 찾아가세요. 별거 없어요. 너무 부담감 가질 필요 없어요. “뭐 하고 싶니?” “요즘은 뭐 하고 있니?” 같은 쉬운 질문으로 시작해요. 주기적으로 방문한다면 그때그때 나아갈 수 있는 길을 볼 수 있도록 옆에서 도와주실 거에요. 그리고 욜로(YOLO), 이런 말은 믿지 말아요. 하고 싶은 일을 하세요. 근데 하고 싶은 걸 전부 할 수는 없잖아요. 만일 하고 싶은 대로만 살아가면 나중에 취업이 눈앞으로 다가왔을 때 너무 힘들 거에요. 그렇다고 죽은 듯이 공부만 하라는 이야기는 아니에요. 하고 싶은 것은 적당히 하시되, 공부도 병행해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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