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0호]카페의 아이스 메뉴는 왜 더 비쌀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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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0호]카페의 아이스 메뉴는 왜 더 비쌀까?
  • 황호림 커피 칼럼니스트
  • 승인 2018.05.2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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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누구나 쉽게 얼음을 구하고 사용할 수 있지만 인공적으로 얼음을 만들 수 없었던 옛날에는 절기상 삼복더위가 있는 여름철이면 금에 버금가는 몸값을 자랑할 정도로 얼음이 비싼 대우를 받았다. 동북아 지역에서 얼음을 보관했다가 사용했다고 기록된 최초의 사례는 중국의 주나라 시절로,「주례」라는 책에 의하면 주나라에는 ‘능인(凌人)’이라는 벼슬이 있었다고 한다. 능인들은 겨울철, 산에 들어가서 얼음을 소요량의 3배 정도로 잘라 내어서 빙고에 저장하는 일을 담당했다. 우리나라의 역사서에 기록된 최초의 얼음 기록은「삼국지 위지동이전」에 기록된 것으로, 부여에서는 여름철에 사람이 죽으면 얼음을 쓴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삼국유사」에는 신라 유리왕 때에 장빙고(藏氷庫)를 만들어 운영했다고 한다. 이러한 기록으로 볼 때, 삼국시대 이전부터 이미 우리 선조들은 얼음을 지혜롭게 이용한 듯하다.

아직도 서울시 용산구에는 서빙고라는 지명이 붙어 있는데 이는 조선시대 얼음을 보관하던 창고에서 유래됐다. 조선시대에는 한강 강변에 동서 두 빙고를 뒀다. 동고는 지금의 옥수동에 위치해 있으며 제사용 얼음을 보관하던 창고였고, 서고는 지금의 용산구 서빙고초등학교 위치에 궁중의 부엌과 벼슬아치 등에게 공급하던 얼음을 보관했다. 동고와 서고에 보관하던 얼음은 중랑천(지금의 청계천)의 더러운 물을 피해 두모포와 저자도 사이의 강물이 4치쯤 얼었을 때에 잘라내 보관했다. 그런데 동빙고는 연산군 때 사냥터를 확장하기 위해 서빙고 동쪽으로 이전하여 사실상 서빙고에 통합되고 말았다. 서빙고는 1898년까지 존속되었다. 이 시대에 한여름 얼음의 가치는 금값을 능가할 정도로 귀해서 빙고 주위에는 항상 삼엄한 경비가 이뤄졌다. 2012년에 개봉한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보면 서빙고를 터는 내용이 나온다. 조선시대에 얼음은 금보다 귀한 권력의 상징이었다. 특히 한여름에 얼음을 이용한다는 것은 왕족이나 귀족이 아니면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런 역사적인 배경을 극화해 만든 줄거리에 차태현, 오지호, 성동일 등의 명품 연기가 더해져 히트 영화로 자리매김했다.

우리나라에서는 1910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인조제빙이 시작되었는데 부산수산시장이 그 시초다. 이후 각 지역 수산시장을 중심으로 제빙시설이 들어섰고 냉장고의 유행과 더불어 얼음은 서민층의 생활로 파고들게 됐다. 카페에서는 제빙기라는 기계로 얼음을 만들어 사용하는데 이 기계의 용량이 다양하다. 지금과 같은 한여름철에는 대부분의 카페가 얼음부족 현상을 겪는데 그 이유는 제빙기가 생산하는 얼음의 양 보다 더 많은 얼음이 사용되기 때문이다. 아이스 음료는 보통 뜨거운 음료보다 500원 이상 더 비싸게 판매된다. 카페 입장에서는 얼음을 만들어 내는 제빙기의 전기세, 감가상각비, 시간의 투자 개념이 포함되어 책정한 것으로 고객이 마땅히 지불해야할 금액으로 계산하는 것이다.

카페를 운영하다 보면 “아이스 메뉴는 왜 더 비싸요?”라고 물어보는 고객들이 많다. 그 이유를 설명해 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지만 유독 “얼음 까짓것 얼마나 한다고…”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제빙 기술이 좋아진 지금도 한여름에 얼음을 사려면 만만치 않은 비용이 든다. 아이스 메뉴가 너무 비싸다고 생각하지 말고 더위를 식혀주는 정당한 대가라고 너그럽게 생각해주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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