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백마문화상 소설부문 당선작 - 호명
상태바
2017 백마문화상 소설부문 당선작 - 호명
  • 김영강(문창 17) 학우
  • 승인 2017.12.03 00:1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호명
 숙에게 전화가 온 것은 숙이 윤과 만난 지 삼백육 십사 일째 되는 날이었다. 숙은 윤에게 마흔 두 살이 나 먹었는데, 무슨 놈의 벚꽃이고 일 년이냐며 윤을 타박했다. 그러나 윤은 마흔 두 살은 마흔 두 살이고 벚꽃은 벚꽃이고, 일 년은 일 년이라며 숙을 달랬 다. 숙은 윤에게 너는 앞자리가 3이라 자신의 마음 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면서도 그런 윤의 말에 내 심 들떠 있었다. 숙이 붉은 꽃이 잔뜩 수놓아진 하 늘색 원피스를 꺼내 입어본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 다. 숙은 얼룩으로 가득한 화장실의 반신거울 앞에 서서 한 바퀴를 크게 돌아보기도 하고, 원피스 밑단 을 손으로 잡아당겨 구김을 펴 보기도 하며 원피스 를 입은 자신의 모습을 확인했다. 붉은 꽃보다 쳐진 가슴이나 튀어나온 아랫배가 숙의 눈에 먼저 들어 왔다. 숙은 붉은 꽃들을 한참동안 쳐다보다가, 원피 스를 다시 접어 눈에 띄지 않도록 간이장롱 깊숙이 넣어 버렸다. 숙은 여느 때처럼 학습지를 가방에 가득 들고 아파 트로 향했다. 학습지 선생이 해야 하는 일은 반복적 이었다. 그건 아이들 역시도 그랬다. 할당된 학습지를 좀처럼 풀지 않았고, 학습지를 버리거나 책장 사이에 혹은 문 옆의 소화전 안에 숨겼다. 그리고는 학습지 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다며 거짓말을 했다. 그러나 숙은 부러웠다. 인터폰이 있는 아파트가, 물때가 없 는 유리잔과 그 유리잔에 담긴 오렌지 주스가, 학습 지를 아무렇게나 버리는 여유가 부러웠다. 숙에게 처 음 보는 번호로 전화가 온 것은 숙이 3학년 여자아이 에게 국어 문제를 설명하고 있을 때였다. 평소의 숙이 었다면 전화를 받지 않았을 테지만 숙이 재빨리 전화 를 받은 이유는 그런 것들이었다. 아이의 집이 맞벌이 가정이라서. 집에 인터폰이 없어서. 김정숙 씨 맞습니까? 맞는데요. 제가 지금 수업 중이라서. 오늘 분당경찰서에 방문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왜요? 오영실 씨가 얼마 전에 자택에서 혼자 돌아가셨습 니다. 오영실이 누구인지 기억을 되짚어 보느라 숙에게 잠깐의 시간이 걸렸고 그 잠깐의 시간 동안 숙은 전 화를 잘못 거신 것 같다고 말할 뻔했다. 숙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전화를 툭 끊어버렸는데, 숙이 차마 대답할 수 없었던 것은 전화 너머에서 들려온 이름 이 숙의 엄마였던 적이 있어서 그것을 부정하고 싶었 던 것이 아니라, ‘오영실’이라는 이름이 국어사전 깊 숙이 넣어놓고 시간이 너무 오래 지나 잊어버린 네잎 클로버 같은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숙은 전화를 끊고 깜빡이는 거실 조명을 바라보다가 다시 아이와 국어 문제를 풀었다. 3. 글쓴이가 부탁한 내용을 쓰시오. 4. 글쓴이가 부탁하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5. 6. 7. …….
숙이 처음으로 엄마를 개년이라고 부른 날은 숙의 스물한 번째 생일이었다. 8월이 언제나 그렇듯이 모 든 것이 변덕스러웠다. 비는 내리다가 그치기를 반복 했고 숙의 아빠는 술에 취해 숙을 패다가 숙을 부둥 켜안고 미안하다며 울기를 반복했다. 그 해의 여름은 숙과는 모든 것이 무관하고 불쾌하게, 그러면서도 더 디게 흘러갔다. 공교롭게도 숙의 스물한 번째 생일은 숙의 엄마가 금요일에는 데리러 올게. 하고 말하고서 집을 나간 지 딱 백 번째 금요일이기도 했다. 금요일? 몇 번째 금요일이요? 이번 주 금요일이요? 다음 주 금 요일이요? 숙은 속으로 되물었지만 입 밖으로 꺼내 지는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백 번째 금요일까지도 숙 의 엄마는 숙을 데리러 오지 않았다. 숙은 엄마가 돌 아오는 금요일이 몇 번째 금요일인지 물어보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가, 후회하지 않았다가, 다시 후회했다. 숙은 시간이 지날수록 아빠보다 엄마가 더 미워졌 다. 아빠가 도저히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나쁜 사람이 었던 것은 아니었다. 숙의 아빠는 집 근처 공장에서 일하며 부품을 납품했는데, 적은 봉급을 받으면서도 술에 취해 들어와 숙과 엄마가 자신을 아빠로 대우하 지 않는다고 자주 역정을 냈고 엄마는 방이 없는 그 비좁은 집에 앉아 부업으로 공장에서 나눠준 작은 칩 에서 납땜을 했다. 납을 녹이는 냄새가 계속해서 숙
과 숙의 엄마 머리를 찔러댔었다. 그러나 그 모든 일 을 별 것 아닌 일로 치부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모든 사람이 그렇게 살고 있기 때문이었다. 숙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그랬다. 아빠가 종종 옷깃에 묻혀 오는 립 스틱 같은 것들도 접대나 회식이라는 명목으로 흔하 게 용인되곤 했고 그때는 모두가 그렇게 산다고 생각 했다. 숙이 듣기로는 주변의 모든 아버지들이 술에 취 해 집에 들어오면 종종 엄마에게 손찌검을 했고, 씻 지도 않은 채로 바닥에 드러누워서 코를 곤다고 했 다. 다만 엄마가 집을 왜 나갔는가 하는 문제가 아니 라 왜 금요일에는 돌아오겠다고 말했는가, 숙은 그것 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일말의 여지도 없이 사라졌더 라면 엄마에게 조금의 연민이나 그 연민이라고 부르 는 감정 아래에 감춰진 사랑은 조금이라도 남아 있을 것 같았다. 숙은 집 근처 작은 술집에 앉아 자신의 생일을 축하 하기 위해 모인 친구들과 남자친구 김에게 자조적인 말투로 엄마를 욕했다. 숙은 엄마를 개년이라고 부르 며 작은 희열과 스스로에 대한 모멸감을 느꼈다. 이 제 나는 엄마를 기다리지 않기로 했어. 아니 엄마가 아니라 오영실, 그 개 같은 년을. 개년. 숙의 친구들은 숙에게 동조할 수도, 그렇다고 숙을 부정할 수도 없 어서 숙의 푸념을 흘려듣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그 거 진짜 개년이네. 하고 말한 것은 숙의 옆자리에서 김치전을 젓가락으로 힘겹게 찢던 숙의 남자친구 김 이었다. 뭐라고? ……. 그거 진짜 개년이라고. 숙은 피식피식 웃다가 점점 크게 웃었다. 급기야는 숨이 막힐 정도로 웃었다. 점차 표정이 굳어간 것은 숙이 아닌 숙의 친구들이었다. 숙은 그날 밤 잔뜩 취 해서 김과의 짧은 사랑을 그만두었고, 금요일을 세는 것을 그만두었으며, 아버지와 함께 사는 것을 그만두 었고, 우는 것을 그만두었다. 숙은 옷가지 몇 개가 전 부인 가방을 들고 집에서 무작정 집에서 나왔다. 집 에서 멀어질수록 숙은 기분 나쁜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는데, 어쩌면 오늘에서야 엄마가 찾아오는 것 아 닐까, 그래서 나를 오랫동안 찾아다니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숙은 두 시간 남짓 걷다가 어느 작은 공원 을 발견하고는 이내 가방을 베고 벤치에 누웠다. 숙은 방금 전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달이 지구에서 떨어져 나가듯이 무언가가 영영 떨어져 나가 버렸다고 생각 했다.
윤에게는 행복한 가정에서 나오는 힘 같은 것이 있 었다. 위기가 닥치면 긍정적으로 대응할 줄 알았고, 기쁜 일이 생기면 좀처럼 내색하지 않았다. 그러나 정 작 윤은 모든 가정이 자신의 가정처럼 화목하지 않다 는 것을 잘 모르는 듯 했다. 숙은 그런 윤이 부러웠다. 숙은 윤이 가족 얘기를 할 때마다 맞장구를 치며 종 종 거짓말을 했다. 우리 엄마도 그래. 라거나 엄마 집 앞에 유채꽃이 많이 피었다던데. 엄마아빠 보러 제 주도나 한 번 갔다 와야 할 까봐. 하고 말하며 씁쓸하 게 웃었다. 윤이 엄마와 싸웠다고 말하며 입을 이죽 일 때나 이번 추석은 본가에 가서 보내야겠다고 할 때, 윤이 아빠와의 전화를 끊고 뒤늦게 사춘기가 왔 나. 하고 혼잣말을 할 때, 숙은 그런 윤의 표정을 따라 할 수 없음을 알면서도 따라하려고 얼굴을 일그러뜨 려 보곤 했다. 숙이 윤을 사랑한 이유도 그런 것들이 었다. 말을 할 때 두 번 생각하고 내뱉는 것. 두 번 생 각하는 동안 입을 잠깐 굳게 닫는 습관. 차분하고 낮 은 목소리. 깨끗하게 다려진 셔츠와 그 셔츠의 깨끗 한 목 부분. 윤은 원피스를 입은 숙을 보자마자 옷이 예쁘네. 왜 지금까지 안 입었어. 하고 물었다. 숙은 윤에게 어제 오영실이, 그 개 같은 년이 죽었다는데 평소처 럼 검은 옷을 입으면 애도하는 것 같잖아. 하고 말하 고 싶었으나 그냥 백일이라서 입어 봤노라고 말했 다. 숙과 윤은 벚꽃을 보러 가려고 했으나 윤의 회사 가 늦게 끝나는 탓에 레스토랑으로 향하는 차 안에 서 벚꽃을 바라보는 것에 그쳐야 했다. 그러니까 조 금 값이 나가는 레스토랑에서 프랑스식으로 지어
진 긴 이름의 스테이크와 와인을 먹은 것을 제외하 면 둘의 데이트는 평소와 같았다. 그러나 윤과 숙이 숙의 집 앞에 도착했을 때 윤이 구형 소나타 안에서 꺼낸 화두는 숙에게 결코 평범한 것이 아니었다. 뜸 을 들이던 윤은 숙을 부모님께 소개하고 싶다고 했 다. 윤은 부모님이 결혼을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고 도 덧붙였다. 숙은 얼굴이 완전히 새빨개져서는 생 각해 보긴 하겠지만 아마 힘들 것 같다고 말하며 도 망치듯 차에서 나왔다. 숨을 거칠게 몰아 내쉬며 어 두운 계단을 올라가던 숙은 몇 번이나 주저앉고 싶 은 마음을 참으며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감정을 삼 켜야 했다. 경찰에게서 전화가 다시 걸려온 것은 그 때였다. 경찰은 다소 격앙된 목소리로 말을 끊지 않고 이어 나갔다. 고독사로 이주일 가까이 지나서야 발견된 숙 의 엄마에 대한 이야기였다. 인도적 차원이 어떻고, 아무리 그래도, ‘그래도’를 경찰이 네 번쯤 반복할 때 숙이 물었다. 집이야 업체 불러서 치우고 경매로 부치 면 되잖아요? 절차라는 게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에 요. 그리고 개도 한 마리 있고……. 경찰은 말끝을 흐 렸다. 개요? 개요? 개가 있어요? 개가 있다고 했어요? 숙은 계속해서 되물었다. 갑자기 핸드폰을 잡은 숙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한 번 들려 보긴 할게요. 핸드폰 너머에서 경찰이 짧은 인사를 다 건네기도 전에 숙은 전화를 끊었다. 숙은 그대로 계단에 앉아서 오영실이 키우던 개에 대해 생각했다.
오영실이 살던 집은 숙이 원래 살던 집에서 생각보 다 멀지 않은 작은 방이었다. 숙의 방만큼 작았지만 숙의 방과 다른 점이 있다면 생각보다 깨끗하다는 점 이었다. 오랫동안 사람이 죽은 채 누워있었다는 사 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아무런 냄새도 풍기지 않았 다. 그 방에 특별한 것은 단 한 구석도 없었다. 특별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은 그 자체로 특별한 것이었 다. 가족사진이라거나 책도 없었고 그 흔한 티브이 하 나 없었다. 무채색에 가까운 옷가지 몇 개과 누런 벽 지, 작은 냉장고 하나가 전부였다. 도대체 이 방에서 뭘 하면서 지냈던 것인지, 이토록 집이 싫었던 것인지 숙은 묻고 싶었다. 그러나 숙은 묻고 싶지 않다고 억 지로 생각을 돌이키며 고인 침을 삼켰다. 개가 있었다면서요. 개는 어디에 있는데요? 아, 개요. 개는 근처에 있는 유기견센터에 맡겨 놨 습니다. 아마 누가 데려가지 않으면 안락사 시킬 예정 일 거예요. 개가 주인이 죽었는데 짖지도 않았다고 하 고. 아마 개도 어딘가 아팠던 모양인 것 같아요. 이주 일 가까이 굶어서 사실 죽기 직전이기도 했고요. 개를 한 번 보고 싶은데. 경찰은 어디론가 전화를 걸더니 번호를 받아 적으 라는 손짓을 했다. 숙은 번호를 받는 둥 마는 둥 핸드 폰에 저장해 놓고는 오영실의 집에서 나왔다. 집에 돌 아온 숙은 침대에 누워서 제 자식도 버린 오영실이 개를 키웠다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개년이 개를 키웠 네. 개 같은 년. 숙은 혼잣말을 하며 피식 웃었다. 그 러나 이내 어딘가 모르게 씁쓸해졌고 숙은 왠지 그 개가 진심으로 보고 싶어졌다. 숙은 그때 불현듯 과거를 떠올렸다. 오영실이 집 을 나가기 한참 전의 일이었다. 어린 숙이 개를 키우 고 싶다고, 옆집 사는 남자애도 키우고 세탁소 아저 씨도 키우는데 왜 우리집만 개가 없냐며 생떼를 부 릴 때였다. 오영실은 숙이 기어코 울 때까지 안 된다 며 고개를 저었다. 숙은 급기야 개를 사 달라며 소리 를 질렀고 아빠가 집에 도착할 때까지도 바닥을 구 르며 울었다. 집에 도착한 아빠가 눈이 부을 대로 부 은 숙에게 개 같은 소리 하지 말라며 버럭 소리를 질 렀다. 오영실은 의기소침해진 채 이불 속에서 어깨 를 들썩이는 숙이 안쓰러웠는지 잠에 막 드려고 하 는 숙을 달래며 개를 사 주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 리고 나서 개를 샀던가. 정작 그게 기억나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분명히 개를 키웠던 것 같기도 하 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숙은 그날 밤 윤과의 통화에서 모든 것을 털어놓 았다. 엄마와 아빠가 제주도에서 살고 있다고 말한 건 사
실 전부 거짓말이야. 엄마는 내가 열아홉 살 때 집을 나가서 돌아오지 않았고 아빠는 내가 서른 살쯤 됐을 때 죽었어. 엄마도 한 달쯤 전에 집에서 혼자 죽었다 고 전화가 왔어. 어제 엄마 집에 가 봤어. 집이라고 부 르기도 좀 그런 작은 방이었어. 응. 아무 것도 없는 그 냥 방이었어. 집을 나갈 거면 좀 잘 살지. 개년. 개를 키웠대. 응. 그 개년이. 웃기지 않아? 그렇게 말하면 별 수 없지만 나는 웃겼어. 개는 유기견센터에 있대. 곧 안락사 시킬 예정이라던데. 글쎄. 윤은 내일이 마침 일요일이니까 당장 개를 데리러 가자고 했다. 그러지 않아도 혼자 사는 네가 외롭지 는 않을까 걱정스러웠다며 잘못은 개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고도 덧붙였다. 윤은 전화를 끊기 직전에 자 기 부모님을 보러 가는 것은 아무래도 나중으로 미 루는 편이 좋겠다고 했는데, 숙은 전화를 끊고 나서 찾아온 텁텁한 뒷맛을 숨길 수가 없었다. 급작스럽 게 찾아온 공허함이 키웠는지 키우지 않았는지 기억 나지 않는 개 때문인지 오영실이 키우던 개 때문인지 오영실 때문인지 윤의 부모님을 만나는 일이 미뤄진 탓인지 숙은 알 수 없었다. 텁텁한 뒷맛은 쉽게 사라 지지 않았고 숙이 잠에 들기 전까지 숙을 따라다녔 다. 숙은 키웠는지 키우지 않았는지도 모를, 도무지 생각나지 않는 개의 얼굴을 억지로 그리며 가까스로 잠에 들었다.
오영실이 키우던 개는 작은 말티즈였다. 개는 마르 고 볼품없었다. 갈색 눈물자국이 길게 내려와 있었 고, 털은 지저분하게 방치되어 윤기가 없었다. 개는 살아있는 일에 모든 기력을 다 쓰고 있는 것처럼 보였 다. 개가 쌕쌕대며 숨을 내쉴 때마다 흰 개의 작은 배 가 들어갔다가 나왔다가 했는데, 숙은 자기도 모르게 개의 숨을 따라서 쉬었다. 그러나 숙에게 그것은 그 저 한 마리의 죽어가는 개였다. 윤은 숙의 옆 딱 붙어 서서 귀엽다는 말을 연발하더니 와보길 잘 했다고 숨 을 돌리지도 않고 무의미에 가까운 말들을 쏟아냈다. 윤이 무언가를 이렇게 빠르게 말하는 것은 무척이나 드문 일이었다. 글쎄. 나는 잘 모르겠는데. 아무래도 데려가는 게 좋을 것 같아. 그렇지 않아? 데려가도 얼마 못 살 것 같은데. 그럼 나라도 데려가서 키울게. 그건 싫어. 숙은 윤에게서 고개를 돌려 개의 얼굴을 똑바로 쳐 다보며 말했다. 내가 데려갈게. 내가 데려가서 키울게. 그게 좋을 것 같아.
개는 한 주 사이에 혈색이 무척 좋아져 있었다. 처 음에는 사료를 먹는 둥 마는 둥 하며 먹는 대로 아무 데나 토를 해 놓아서 가정방문에 늦기 일쑤였지만, 이 제는 방 한 구석에 놓은 신문지 위에 똥을 쌀 줄도 알 았다. 숙은 가정방문을 끝내고 돌아오면 개를 쳐다보 는 일로 하루를 마쳤다. 개 역시 숙의 눈빛에 응답하 듯이 꼬리를 흔드는 일을 반복하는 기계처럼 침대 옆 에 앉아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숙을 쳐다보기만 했 다. 개가 꼬리를 흔드는 것은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 까 싶을 정도로 맹목적이었다. 여느 날처럼 개를 쳐 다보던 숙은 이상한 것을 느꼈다. 개에게는 지금까지 이름이 없었고, 개의 이름이 없다는 점이 불편하다고 느낀 적도 없었다. 그러나 이대로 개의 이름을 부르 지 않자니 불편한 부분이 있는 것도 같았다.  오영실 이 개를 뭐라고 불렀을까 생각하던 숙이 개의 이름을 지은 것은 그때였다. 영실이가 좋겠다. 너는 앞으로 영실이다. 영실아. 숙은 그렇게 말해 놓고 혼자서 깔깔대며 웃었다. 개 에게 딱 맞는 이름이라고 숙은 생각했고 개는 숙을 올려다보며 그것이 원래 자신의 이름이었던 것처럼 꼬리를 마구 흔들었다. 숙과 윤이 다시 만난 것은 개를 데려오고 나서 열흘 정도가 지났을 때였다. 둘은 윤의 회사 근처의 베트 남 음식점에서 쌀국수를 먹고 있었다. 둘은 쌀국수를 식히며 개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윤은 그 개가 숙 에게 무척이나 큰 위안이 되는 것처럼 느끼는 것 같
았다. 한참동안 개에 대한 이야기로 열을 올리던 숙 은 개의 이름을 영실이라고 지었노라고 윤에게 말했 다. 윤은 탐탁지 않은 말투로 그러냐고 말했는데, 그 순간 숙은 갑자기 화가 치미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윤은 쌀국수를 들고 있던 손을 내려놓고 입을 달싹거 리다가 그래도 개의 이름을 돌아가신 엄마의 이름으 로 짓는 건 좀 아니지 않느냐고 차분한 어투로 숙에게 물었다. 숙은 이미 죽은 사람일 뿐이고, 사람의 이름 으로 부르더라도 너희 어머니도 아니고 우리 엄마일 뿐인데 왜 도리어 네가 따지고 드냐고 흥분해서 마구 쏘아붙였다. 동남아시아 어딘가에서 온 것 같은 외 국인 노동자들이 숙을 빤히 쳐다봤다. 윤은 씩씩대 는 숙을 바라보다가 어이가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젓고 는 알겠으니까 그 얘기는 그만 하자며 입을 굳게 다물 었다. 숙은 화가 난 것을 가라앉힐수록 윤에게 미안 해졌다. 숙은 왜인지 쌀국수가 갈수록 뜨거워지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숙은 그런 것들을 말로 내 뱉지는 않았고, 윤은 밥을 먹고는 아무래도 일찍 들 어가 봐야 할 것 같다며 집으로 돌아갔다.
숙이 영실이를 처음 걷어찬 것은 그날 밤이었다. 발 길질을 하고 나서 숙은 자신이 영실이를 찼다는 것에 대해 크게 놀랐으며 자기 자신에게 일순간 혐오감마 저 느꼈다. 영실이는 영문도 모르는 채로 꼬리를 흔들 다가 난데없는 숙의 발길질에 몸을 떨었다. 숙은 몸을 떠는 영실이를 안고 미안해, 미안해, 하면서 영실이를 쓰다듬었다. 그러나 죄책감은 잠시뿐이었으며, 숙은 종종 영실이를 발로 차기 시작했다. 윤과의 연락이 급격히 줄어들었다고 숙은 느꼈 다. 숙이 그렇게 느꼈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그랬 다. 윤은 자주 출장에 간다고 했고, 숙이 전화를 걸 면 받지 않았다가 회의 때문에 나중에 연락하겠다 고 문자를 보냈다. 숙은 그럴 때마다 윤과의 관계에 대해 점점 자주, 더욱 깊숙이 생각했다. 숙은 어쩌면 윤이 그 모든 것들을 머릿속으로 계산하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숙은 윤이 자신과 함께하 고 싶지 않아서, 자신의 빈자리를 채우고 싶었던 마 음에 개를 데려오자고 했을지도 모른다고도 생각 했다. 심지어는 개를 자신이 데려가겠다고 말한 것 또한 자신으로 하여금 개를 데려가지 않을 수 없도 록 만든 것 아닐까 하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런 생각의 끝에는 언제나 윤에게 털어놓은 진실들 을 후회하는 일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숙은 부모님 이, 오영실이 죽었다고 말한 것을 후회했다. 오영실 이 죽기 전에 개를 키웠다고 말한 것을 후회했고 그 개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온 것을 후회했다. 그리고 는 그 개의 이름을 영실이로 지었다고 사실대로 말
한 것을 후회했으며 마지막에는 오영실의 자식으로 태어난 것을 후회했다. 숙은 윤에 대한 생각이 나쁜 방향으로 귀결될 때마다 개를 발로 찼다. 숙의 발길 질은 가면 갈수록 대담해졌고, 더욱 세게 발길질을 했다. 그 작은 개는, 영실이는 아무리 맞아도 숙을 향해 짖거나 아픈 것을 내색하지 않았고 그저 옆으 로 쓰러져 잠깐 헐떡거리다가 숙의 얼굴을 보며 다 시 금세 꼬리를 흔들곤 했다. 그러나 숙이 영실이를 하나의 구조물이나 가구쯤 으로밖에 여기지 않았느냐 하면 그건 아니었다. 숙은 영실이를 나름대로 열심히 키웠다. 그도 그럴 수밖 에 없었던 것이, 하루 여섯 시간 정도의 가정방문 시 간을 제외하면 숙의 시간은 영실이와 함께하는 것이 전부였다. 숙은 시간에 맞춰서 사료와 물을 챙겨 주 려고 노력했고, 읽지도 않는 주간지를 구독하며 신문 지 역시 매일 깨끗하게 갈아 주었다. 숙은 종종 기분 이 좋을 때마다 영실이를 데리고 산책을 나가기도 했 는데, 그런 날이면 영실이는 숙의 옆에 누워서 숙과 함께 잠이 들었고 숙은 영실이가 내는 작은 숨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에 들었다. 그러나 그것과는 별개로 숙은 영실이를 종종 걷어차곤 했고 영실이 역시 그것 과는 별개로 묵묵히 꼬리를 흔들었다.
숙이 윤과 다시 만난 것은 윤과의 만남이 더 이상 미뤄질 수 없을 만큼 미뤄졌을 때였다. 삼 주 가까이 약속을 미루기만 하던 윤은 숙에게 집 앞 편의점에 서 만나자고 했다. 윤은 하나도 변한 것이 없어 보였 다. 다려진 셔츠. 두툼한 손. 그러나 숙은 윤이 전과는 너무나도 다른 사람인 것처럼 느껴졌다. 윤은 아무 런 말도 하지 않았다. 숙은 무언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가슴이 답답해졌다. 윤 역시 그랬는지 차를 타고 온 것을 잊은 것처럼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윤은 둘 사이의 어색함을 없애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고, 그 건 숙도 마찬가지였다. 적막함이 이어지다가 무슨 말 이라도 해야겠다고 숙이 생각했을 때 윤이 물었다. 개는 잘 있어? 잘 있지. 윤은 다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숙은 한동안 말 없이 맥주를 마시는 윤을 쳐다보며 어쩌면 모든 것이 정해져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혼자 남겨지 는 것은 당연한 수순처럼 느껴졌고, 그런 생각들이 숙을 비참하게 만들기보다는 숙을 더 담담하게 만들 었다. 윤은 뜸을 들였다. 그리고 입을 굳게 다물었다 가 열고는 그만 만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 잠깐의 순간이 그날 숙이 느낀 윤이 유일하게 윤이었 던 시간이었다. 윤은 엄마가 선을 보라고 말했다고 했 다. 그래서 선을 봤다고도 했다. 그런데 네 생각이 나지 않아서 그게 너무 슬펐다고 했다. 윤은 어깨를 들 썩이며 울었고 숙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우는 윤을 영실이처럼 쳐다보기만 했다. 숙은 그날 밤에 영실이를 데리고 산책을 나갔다.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영실이는 숙의 그런 기분을 전혀 모르는 것처럼 목줄을 보자마자 숙에게 달려들며 꼬리를 흔들어 댔다. 숙은 영실이를 데리고 정처 없이 걸었다. 처음에는 동네 한 바퀴만 돌고 돌 아올 생각이었는데, 한 바퀴를 돌고 난 후에도 윤에 대한 생각이 멈추지 않았다. 막 동네를 벗어나기 시작 했을 때, 어린 여학생 두 명이 개가 너무 예쁘다며 만 져 봐도 되냐고 물었다. 숙은 여학생들에게 되물었다. 예뻐요? 네. 너무 귀여워요. 글쎄. 나는 잘 모르겠는데. 여학생 중 한 명이 다른 여학생의 팔을 툭툭 치더 니 숙의 뒤편으로 빠르게 걸어갔다. 여학생 중에 한 명이 뭐 저런 게 다 있어. 하고 말한 것도 같았으나 뒷 말이 또렷하게 들리지는 않아서 개를 지칭한 것인지 자신을 지칭한 것인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숙은 다시 무작정 걸었다. 숙이 일정한 속도로 걷다가 걸음을 늦춘 것은 어느 대로변 앞에서였다. 대로변 바로 옆에 공원이 있었다. 대로변 옆에 공원이 왜 있는지 이해 되지 않았으나, 그런 생각이 들기도 전에 숙은 갑자기 튀어나온 공원에서 기시감을 느꼈다. 공원은 그때 숙 이 집을 나와 누웠던 그 공원과 똑같았다. 숙은 그때 그 공원이 여기에 있을 리가 없다고 다시 생각을 돌 이켰다. 그러나 생각할수록 분명해지는 것은 그때 거 기에 있던 그것들이 여기에 있다는 사실이었다. 정글 짐이며 시소, 미끄럼틀의 배치마저 똑같았고, 자신이 누웠던 그 벤치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숙은 그 벤치에 몸을 뉘어 보았다가, 영실이와 함께 공원을 한 바퀴 천천히 둘러보았다. 어쩌면 그저 시공사가 같았 을 뿐인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완전히 똑같은 것처럼 보이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숙은 생각했다. 그러나 숙 은 자꾸만 그때 그 공원이 어떻게, 어떤 이유인지 모 르게 여기로 옮겨져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쉽게 떨 쳐버릴 수가 없었다. 영실이가 숙을 보며 맹렬하게 짖 은 것은 그때였다. 이 개가 왜이래. 숙은 당황해서 혼잣말을 했다. 개는 끊임없이 짖 었다. 개가 짖는 것은 숙에 대한 깊숙한 적의처럼 느 껴지기도 했고, 어떤 위험을 감지한 것처럼 들리기 도 했다. 개는 그동안 짖지 않았던 것을 모아서 한 번에 뱉기라도 하듯이 큰 소리로 울음을 토해냈고 숙은 개가 자신을 향해 짖는 것을 잠자코 듣다가 짖 어대는 개의 목줄을 자신이 누웠던 그 벤치에 충동 적으로 묶었다. 숙은 자신이 멀어질 때까지도 계속 짖는 개를 향해 나직하게 말했다.
금요일엔 돌아올게.
숙은 집으로 돌아가는 택시에서 오영실에 대해 생 각했다. 처음에는 금요일엔 돌아오겠다고 말하며 막 집을 나선 오영실의 기분에 대해 생각했다. 생각은 쉴 틈 없이 빠르게 이어져 금세 개로 넘어갔다. 개는 공 원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기다린다면 얼마나 오 래 기다릴 것인지 생각했다. 숙은 생각하면 할수록 생각들이 자신의 의도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이 비참해졌고, 자신이 금요일엔 돌아오겠노라고 벤치 에 묶인 개에게 말한 것이 맞는지 확실하게 분간할 수 없어졌다. 심지어는 오영실이 자신에게 그 말을 했는 지도 확실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으며, 개가 자신에 게 금요일엔 돌아오겠다고 말한 것처럼 느껴지기까 지 했다. 숙은 금요일이라는 단어가 모호해질 때까지 생각을 계속해 나갔다. 숙은 금요일, 금요일엔 돌아 올게, 하고 입 밖으로 말을 되뇌어 보았다. 숙이 내려 달라고 말한 것은 택시기사가 방금 뭐라 고 한 거냐고 되물었을 때였다. 고가도로를 지나고 나 면 내려 드리겠다고 말하는 택시기사에게 숙은 난데없 이 소리를 질렀다. 내려 줘요, 지금 당장 내려 달라고. 제발. 택시기사가 무어라 중얼거리는 것을 뒤로 한 채 숙은 고가도로를 순식간에 달려 내려갔다. 도로는 어 느새 완전히 어둠에 침잠되어 있었다. 어둠이 끝나기 직전에 가로등이 있었고, 가로등은 길이 끝나지 않음 을 알리는 용도처럼 그저 거기에 서 있었다. 숙은 택시 가 달려온 반대 방향으로 무작정 뛰었지만, 아무리 뛰 어도 그 공원은 보이지 않았다. 숙은 그럼에도 불구하 고 계속해서 공원을 찾아 헤맸다. 거리에는 차도 없고 사람도 없었다. 대로변은 완벽하게 적요했으며 그 적 요함의 한가운데에 숙이 있었다. 숙은 어두운 대로변 을 닥치는 대로 달렸다. 어디인지도 모를 거리를 내달 리다가 주변을 돌아봤을 때, 숙은 다시 그 고가도로 위 에 자신이 올라서 있음을 알아차렸다. 숙은 고가도로 위에 멈춰 서서 한동안 숨을 헐떡 거렸다. 이미 너무 많은 것들이 지나가 버렸다고 숙 은 생각했다. 갑자기 어딘가에 숨겨져 있던 것들이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마구 지나가는 느낌을, 그래서 그것들이 자신을 아프게 찌르는 느낌을 숙은 피할 수 없었다. 숙은 고가도로 위에 가만히 서서 개를 불렀다. 처음에는 영실아. 하고 불렀고, 그 다음에 는 개야. 하고 불렀다가 마지막에는 엄마. 하고 불렀 다. 숙은 그제야 울었다. 엄마. 엄마. 숙은 개를 부르 며 지구에 달이 충돌한 것처럼 울었다.

 

당선자 수상 소감
당선이라는 연락을 받고 나서 가장 처음 떠오른 것은 학회에서 급하게 썼던 유서였습니다. 유서에는 그런 말을 썼습니다. 나는 세계를 사랑했지만, 세계 는 나를 별로 사랑하지 않았던 것 같다. 세계가 나 를 필요로 해서 내가 태어난 것이라면, 나를 미워한 것도 조금은 이해할 것 같다. 유서를 다시 쓸 기회가 온다면 조금 고쳐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먼저 부족한 제 작품에 큰 기대를 걸어주신 교수 님들께 감사를 전합니다. 언제나 좋은 자극을 주는 학우들, 읽지도 않을 거면서 글 보여 달라고 보채는 친구들, 제 글을 읽지 않고도 칭찬해 주는 가족들에 게도 감사합니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이 글을 보고 있을 당신에게 감사를 전합니다. 저는 글을 쓰는 일이 종교와 비슷한 것이라고 생각 했습니다. 저는 한 명의 신으로 저와 제 이야기를 창 조하고, 한 명의 신자로 저와 제 이야기를 믿고 따르 겠습니다. 제 믿음에 제가 보답할 수 있도록 앞으로 더 열심히 쓰겠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합니다.

김영강(문창 17) 학우

심사평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 누군가에게 이름을 지어주 고 불러준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올해의 백마문학 상 당선작인 「호명」을 읽으며 그런 생각을 했다. 우 리는 누군가를 ‘엄마’라고도 부르고 간혹은 ‘개년’이 라고도 부르며 ‘오영실’이라고도 부른다. 그러고 보 면 호명은 이름을 부르는 사람과 이름의 주인 간의 관 계뿐만 아니라 부르는 사람의 캐릭터를 드러내는 효 과적인 장치이다. 이 소설의 화자 ‘숙’은 마땅히 불러 야 할 ‘엄마’라는 이름 대신 ‘오영실’이라는 호칭을 고 집하고, 아무렇게나 불러대기 마련인 개에게 ‘오영 실’이라고 이름 붙여 함부로 엄마의 이름을 소비한다. 이 단순하고 반복되는 호명이 화자에 대해 소설에서 말해지지 않은 많은 것을 알려준다. 캐릭터와 인물들 간의 관계를 드러내는 작가의 사려 깊음이 돋보였다. 흔하고 진부하기 쉬운 가족 서사는 ‘오영실’이라는 이름을 공유한 엄마와 엄마가 키우던 개를 통해 새로 운 톤과 이야기로 달라진다. 창의성이라는 것은 세상 에 없던 것을 만드는 힘이 아니라 기존의 것을 다르게 보려는 노력, 진부하고 익숙한 구태를 비틀려는 시도 임을 실감하게 만드는 소설이었다. 학교를 떠나 더 큰 무대로 나가 다른 예비 작가들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 을 작품이었다. 당선을 축하한다. 가작으로 선정한 작품은 「한티의 멋」이다. 이 작품 은 캐릭터는 곧 서사라는 말을 입증한다. 한 곡의 노래때문에 우연히 한티 형을 떠올린 후 그녀를 찾기 위해 컴백한 아이돌의 팬카페에 가입하고 ‘한티’역 부근에 서 진행하는 팬 미팅에 간다. 그녀는 대학 시절, 내게 앞 으로 인생을 멋대로 살아보겠다는 결의를 다지게 만들 어준 사람이다. 누군가에게 매료되고 그 사람에게 홀 려 한 시기를 멋대로, 마음대로 흘려버리는 일을 가능 하게 한 사람이기도 하며 좋아하는 것에는 딱히 이유 를 찾을 수 없다는 걸 알려주는 사람이기도 하다. 한티 형과는 결코 만날 수 없을 테지만, 화자는 이 회상과 추 억을 통해 인생이라는 건 결의와 각오, 다짐과 상관없 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마련이라는 걸 알게 될 것이다.  올해는 유독 눈에 띄는, 격려해 주고 싶은 작품이 많았다. 무용한 것이 매정하게 버려지는 시대에도 전적 으로 무용한 소설에 많은 시간을 내주고 공을 들여 작 품을 완성해준 응모자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신수정 (문예창작학과) 교수, 편혜영 (문예창작학과) 교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