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목의 전통, 꽃집의 창시자 김상태(토목 80) 동문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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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목의 전통, 꽃집의 창시자 김상태(토목 80) 동문과 만나다
  • 이한솔
  • 승인 2017.10.30 0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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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감 깊은 꽃집, 인생의 동반자다"

Q.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명지대학교 80학번 졸업생 김상대라고 합니다. 명지대에서 학부와 대학 원을 졸업하고 지하철공사, 고속도로공사 등 토목 관련 일을 하다가, 현재는 ‘천마기획단’ 이라는 회사에서 회사 살림을 맡고 있습니다. 꽃집을 만들자고 처음 제안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창시자라고 하기는 부끄럽네요. 하하.


Q. 토목과로 진학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 가요?
A. 이전부터 토목 관련 일을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어요. 고등학교도 문과를 나왔죠. 고등학교 3학년 재학시절, 친구 아버지가 학 교에서 토목에 대해 강의를 하신 적이 있는데 그 강의가 상당히 인상 깊게 다가왔어요. 그 때, 토목과로 진학하는 것을 결심했습니다.

 

Q. 토목과 학생들이 모여 사는 ‘꽃집’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A. 꽃집은 한마디로 토목과 학생들이 모여 사는 집이에요. 우선 꽃집이 생긴 계기를 말하고 싶어요. 당시 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얼마 있지 않아 군대에 입대했어요. 그 이후, 학교에 복학했는데, 상황이 많이 달라져 있었어요. 군대에 입대하기 전 서울에 있던 토목과가 제대 후, 용인으로 옮겨져 있었거든요. 서울에서 용인까지 통학하기가 매우 힘들었죠. 당시 용인은 개발되기 전이라 교통시설도 제대로 구축돼있지 않은 상태였어요. 몇 시간이 걸리는 통학 탓에 자취를 선택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혼자 살면 외롭기도 하고, 경제적으로 효율적이지 않다고 생각해서 동기들과 한집에서 여럿이서 살기로 했어요. 그게 사실 꽃집의 탄생이 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 당시에는 꽃집이라는 이름이 따로 없었는데, 동기들과 모여 살다 집의 이름을 짓자는 의견이 나왔어요. 그때 당시 집 벽지에 개나리 그림이 있어 단순하게 꽃집이라고 지었어요. 그 이후로 몇 번 이사했고, 지금의 토목과의 꽃집이 자리 잡은 겁니다.


Q. 운영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A. 졸업생들은 운영에 관여하지 않습니다. 현재 사는 재학생들이 사용하고 있는 공간이기에, 졸업생들은 관여하지 않는 것이 옳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다만 조리시설이나 배수관 같이 큰 금액이 소모되는 공사 같은 경우에는 재학생들이 부담하기 힘들기 때문에 꽃집 회비에서 지원해주고 있습니다. 꽃집 회비에 대해 덧붙여 말하자면, 꽃집 출신으로 졸업한 사람들 중 직장에 들어가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사람들이 매달 내는 일정 금액이 있어요. 모두 꽃집을 위해서 쓰는 비용이에요. 그 외에 밥이나 생필품 같은 것은 본인들이 합리적으로 구매하도록 합니다. 재학생들 본인들끼리 책정한 회비에서 알아서 하게끔 하고 있죠. 선·후배간 맡은 역할 같은 것도 다 그들의 몫이에요. 재학생들을 위해 선배들의 불필요한 손길은 막자는 식이죠.


Q. 2001년에 MBC ‘생방송 화제집중’에 방 영됐는데, 그와 관련 된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A. 당시 꽃집에 살던 서범석(토목 92)이라 는 동문이 있는데, 그 친구가 이 프로그램에 제보를 했어요. ‘우리는 같은 학교, 과 동문들 끼리 모여 산다. 꽃집에 대해서 방영해 달라’ 고 제작진에게 어필 했죠. 방송을 보면 컴퓨터 모니터는 뚱뚱하고, 시장에서 사온 밥과 반찬 등 그 옛날의 분위기가 많이 나죠.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르곤 해요. 졸업생인 저는 많이 출연하진 않았어요. 그 시절엔 옛날이라 밥을 지을 때, 가스를 사용하기 보다는 연탄으로 짓곤 했습니다. 저는 재연하는 그 장면에 한 번밖에 안 나왔어요. 방송에 시간이 지나 매년 가족 단위로 정기모임을 갖는 장면도 나오는데, 이 장면에서 나왔던 아이들이 벌써 대학가고, 취업하고, 결혼하는 모습을 보며 세월의 흐름을 실감하곤 해요.


Q. 꽃집 정기모임 문화에 대해서 설명해 주세요.
A. 방송에 비쳐진 모임 말고도 체육대회, 등산, 송년회 등 정확히 1년에 4번 만나요. 꽃집 출신 동창들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에요. 세월이 지나도 회비를 내면서 연이 끊이지 않죠. 본인들의 가정을 꽃집 사람들에게 소개시켜주기도 해서 꽃집 식구들은 말 그대로 가족 같은 사람들이 됐어요. 꽃집이 전통있고 유 대감이 깊은 이유죠.


Q. 꽃집에서 생긴 재밌는 에피소드 들려 주세요.
A. 30여 년이 지난 지금 떠올려보면, 개인적인 일들도 많았고, 사건사고도 수 없이 일어나 딱히 고르기 힘들어요. 아! 우리끼리 꽃집에서 장난으로 하던 말이 있었어요. “우리가 나중에 커서 회사를 만들자.” 결론적으로 지금 제가 일하고 있는 회사의 주축이 꽃집 출신으로 이뤄져 있어요. 물론 꽃집에서 살지 않았던 우리대학 동문들도 있고, 동문이 아닌 직원들도 있죠. 회사 대표가 꽃집에 살았던 최규영(토목 83) 동문이에요. 저도 다른 곳에서 일하다가 저를 잘 아는 사람들이 많은 이 회사의 권유를 받고 오게 된 거죠. 그렇다고 꽃집 출신이라고 혜택이 있는 것은 아니에요. 당연히 회사에서 필요로 하고, 이와 함께 서로를 잘 알기 때문에 권유받을 수 있는 거죠. 또, 우리가 생각하기에 유능하더라도 발목 잡을 것이라 생각하면 내버려둡니다. 우리가 가족 같은 관계가 형성돼있기 때문이죠.


Q. 당시 대학교 생활에 대해서 얘기해주세요.
A. 세월이 지나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당시 용인캠 주변에 교통시설이나 도로 이런 것이  제대로 정리돼 있지 않았어요. 꽃집이 있기 전 서울에서 용인까지 다닐 때 힘들었던 기억이 나네요(웃음). 저는 개인적으로 명지대에서 대학원까지 졸업했지만 꽃집 내에서 동기들, 후배들과 친해졌기 때문에 학창시절 기억 대부분이 꽃집으로 남아있어요. 지금 꽃집은 학교랑 약간 멀어요. 그 때는 학교 셔틀 버스가 있지 않았을 때라, 시내버스 타는 돈 한 푼 아끼기 위해 꽃집이 학교와 가까운 곳에 있었죠. 당시 꽃집에는 특이한 규칙이 있었는데, 새로운 식구가 입주할 때 꽃집 식구끼리 투표를 진행해 만장일치가 돼야 입주할 수 있었어요. 그래도 거의 원하는 친구들은 들어와 살았던 것 같아요.


Q. 꽃집의 최종 목표 같은 것이 있나요?
A. 현재 꽃집이 반지하에 위치하고 있어요. 후배들을 위해서 앞으로의 꽃집은 햇볕 잘 들어오는 높은 건물로 옮겨주고 싶어요. 방음이며 환기며 햇빛 드는 것까지 쾌적한 환경에서
살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커요. 하지만 아무래도 경제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라 제대로 진행하지 못하는 상태죠. 그렇지만 재학생들이 계속 들어와, 꽃집 출신이 점점 늘어난다면 언젠가는 이상적인 꽃집이 돼 있지 않을까요?


Q. 꽃집을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A. 가족, 그 이상이라고도 할 수 있는 큰 것 이죠. 군대까지 포함하면 약 6년을 함께 사는데, 신입생은 들어오고 졸업생은 나가게 됩니다. 사는동안 항상 똑같은 사람들만 보는 것이 아니니 더 많은 인연을 만들 수 있고, 같이 살다보면 제가 느꼈듯이 가족같이 느껴질 거예요. 명지대 토목과 덕분에 생긴 인연이지만, 만약 토목과가 사라져도 꽃집으로의 공급이 단절될 뿐이지 꽃집은 사라지지 않는거잖아요. 처음에도 그랬고 지금까지 이어져 왔듯 이 꽃집은 끝까지 함께 갈 거예요. 그러니 저 에게 꽃집이란 인생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동반자 같은 느낌인 거죠.


Q. 김상대에게 토목과란?
A. 저희 집안은 대대로 기술자의 피가 흐르는데, 저에게 토목은 아까 말했듯이 한 강연을 보고나서 시작하게 됐죠. 짧은 순간에 내린 결정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결과적으로는 지금도 전공 관련 회사에서 행복하게 일하고 있 네요. 정리하자면 토목과는 내 인생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꽃집이라는 무언가를 만들게 해 준 발판이며, 인생에 있어 저를 이끌어준 가장 중요한 결정 중에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Q. 김상대에게 명지대학교란?
A. 저는 학과에 애정이 많았어요. 문과에 서 이과로 전향하기 위해 원래 원했던 학교들을 포기하면서까지 토목과로 진학하고 싶었어요. 이 길을 직접 선택해 입학한 만큼 학교 생활을 보람차게 하자는 생각이 들어 자취도 하게 되고 열심히 달렸는데 여기까지 왔네요. 지금은 용인에 있는 자연캠의 교통시설도 많이 구축되고, 내가 몸담았던 토목관도 넓은 곳에 자리하고 있어 많이 발전한 것 같아 뿌듯합니다. 현재 내 삶이 이렇게 되기까지 많이 이끌어 준 학교라 고마움을 느끼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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