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들여다보는 작가 편혜영 교수를 만나다
상태바
세계를 들여다보는 작가 편혜영 교수를 만나다
  • 윤다영
  • 승인 2017.09.11 02: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자기 얘기를 꾸준히 쓸 수 있는 작가로 남고 싶어요"

2000년에 등단한 이후 다양한 작품을 통해 독자와 소통하고 있는 우리대학 문예창작학과
 편혜영 교수. 2014년도에 발표한 단편소설 「식물 애호」가 미국 시사 주간지 ‘뉴요커’에 실리는 등 국내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역량을 인정받고 있는 그녀. 자기 세계를 유지하면서 꾸준히 소설을 쓰고 싶다는 편혜영 교수를 명대신문이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Q. 소설가라는 꿈을 가지게 된 계기가 궁금 해요.
A. 막연히 글을 쓰는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 했지만, 제가 쓰는 게 소설이 되리라고는 생각 하지 못했어요. 대학에 진학해 공부하면서 소설의 스펙트럼이 무척 넓고 다양해서 여러 방식으로 세계와 맞닿아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매혹시킬 만큼 좋은 소설도 많이 만났고요.


Q.  서울예대 문예창작과에  22살의 나이로 진학했는데,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A. 글을 쓰는 것과 관련된 것을 배우고 싶었는 데, 고등학교를 졸업할 당시 진학 정보가 많지 않아서 어느 학교나 학과에 진학해야 하는지 잘 몰 랐어요. 그때만 해도 진학 가이드가 지금처럼 자세하지 않았죠. 아는 선배 한 분이 서울예대 문예 창작과를 졸업하고 라디오 작가를 하고 있어서 지침이 됐어요. 글을 쓰는 일을 배우려면 이 학과에 가면 되겠다고 생각해 뒤늦게 진학했어요.


Q. 소설의 영감은 주로 어디서 받으시나요?
A. 소설의 영감은 아주 다양한 통로에서 옵니다. 저녁 뉴스에서 본 것이 실마리가 되기도 하고 신문 기사에서 소재를 얻기도 하고요. 친구들과 얘기를 나누다가 쓸거리를 얻기도 하고 여행을 하다가 만난 공간이나 사물을 보고 소설을 쓰기도 합니다. 아주 다양하고 많은 이야기 가운데 낯설게 느껴지거나 흥미롭게 느껴지는 소재가 있으면, 그게 왜 낯선 느낌을 주는지, 어떤 점에서 흥미로운지 생각하게 됩니다. 질문도 계속 던지고요. 그렇게 점점 질문하고 거기에 답을 해나가면서 이야기를 만들어나갑니다.


Q. 그렇다면 소설을 쓸 때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나요?
A. 소설을 쓰는 동안 이 소설이 나에게 재미있는지, 어떤 점에서 재미있는지가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소설을 읽는 사람에게 세계에 한 새로운 발견이 되는 경우 좋은 작품이 되는데, 마찬 가지로 쓰는 사람에게도 그 소설을 쓰는 동안 발견할 수 있는 게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지점이 쓰는 동안의 재미를 만들어 주고요. 또, 만든 상황이나 이야기가 이해가 되는지, 어떤 점에서 개연성이 떨어지는지, 인물은 공감할 수 있는지, 문장은 어떤지 자주 생각하지요.


Q. 소설집 「저녁의 구애」에 실린 8개의 작품이 신기하게도 ‘동일성의 지옥’이라는 하나
의 주제를 쫓고 있는 느낌인데,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으셨나요?
A. 메시지를 정하고 8편의 소설을 배치했다기보다는 비슷한 시기에 쓴 소설들이어서 서로 많이 닮은 느낌이 드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작가의 한 시절의 고민이나 생각, 궁리 같은 게 그 작가가 쓴 소설에 담기기 마련이니까요. 「저녁의 구애」를 쓰던 시기는 제가 회사를 막 퇴직 한 직후입니다. 그러다 보니 시스템에 매인 사람 들, 동일한 일상에 쫓기는 사람들에 한 얘기 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정작 회사를 다닐 때는 이런 얘기는 사실 쓰지 않았죠. 경험도 시간이 지나 객관화를 거친 후에야 쓸 수 있습니다.


Q. 소설을 쓸 때 신념이나 메시지는 미리 정 해두지 않는다는 뜻인가요?
A. 네. 사실, 신념 같은 확고부동한 생각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에요.(웃음) 특별한 메시지를 주장하고 싶은 생각도 없고요. 소설은 작가가 인식한 세계의 모습 중 일부를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의 형태로 보여주는 것이니까, 메시지로 접근하지 않아도 됩니다. 메시지가 강하면 수필 이나 주장이 담긴 글을 쓰는 게 적당하고요. 소설은 세계에 한 여러 인상 중 하나를 그저 이 야기로 제시할 뿐이죠. 낯선 장면에 매혹되거나 세상을 잠깐 들여다보고 싶은 호기심이 소설을 쓰게 해요.


Q. 단편 「식물애호」가 미국의 문예 주간지 ‘뉴요커’ 최근호에 게재되었는데 소감을 들어 보고 싶어요.
A. 뉴요커는 외국 작가의 작품에 무척 인색 한 잡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일 년에 수록되는 외 국 작가의 작품이 두서너 편에 불과하다고 들었 어요. 한국 작가 중에서 2000년 초반에 이문 열 선생님의 소설이 한 편 수록된 것이 전부입니다. 그간 인색했기 때문에 저로서는 운 좋게 제 작품을 수록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한국 소설이 미국에 진출한 역사가 짧고, 번역된 작품 수 도 많지 않아서 미국 내에서는 소수 문학이지만 최근 들어 신경숙 작가 나한강 작가 의 작품이 좋 은 반응을 얻고 있어요. 한국 문학에 한 호감 이 좀 높아진 가운데 제 작품을 수록할 수 있었 던 것으로 생각해요.


Q. 곧 등단 20주년이 되는데, 갓 등단했을 때와 지금을 비교해보면 어떤 점이 다른가요?
A. 개인적으로는 등단 직후는 소설을 계속 쓸 수 있을지 없을지 확신하지 못하던 시기였습 니다. 지금으로서는 계속 소설을 쓰는 사람이라는 스스로의 확신이 강해졌지요. 문학을 둘러싼 외부 환경도 많이 달라지고 있는 것 같습 니다. 소설이나 문학에 한 독자들의 관심은 점차 줄고 다양한 매체로 관심사가 넓어졌지요. 시기마다 작가들이 천착하는 주제가 조금씩 달라지는점도 흥미롭고요.

 

Q. 그렇다면 등단 후에 소설을 쓰면서 슬럼프가 찾아왔던 적이 있나요?
A. 매 작품을 쓸 때마다 슬럼프를 겪어요. 쓰기 싫고, 잘 안 써져요. 잘 안 써지기 때문에 쓰기 싫은 거지요. 그런데 소설은 세상에 없던 인물이나 상황을 만들어내는 것이기 때문에 사실 다 아는 일처럼, 이미 겪은 일처럼, 수월하게 써지면 오히려 수상한 겁니다. 저는 소설이 안 써 질 때면 안 쓰고 멍하니 시간을 보내요. 좋아하는 영화를 찾아보기도 하고, 아예 상관없는 장소에 가서 산책하며 시간을 보내기도 합니다. 생각이 고일 시간을 만들어주는 거죠. 그러다 보면 결국 다시 쓰게 됩니다. 써야만 하는 시간이 다가오기도 하고요.


Q. 그럴 때 다른 작가의 글을 읽으며 이겨내 기도 하나요? 어떤 작가를 가장 좋아하세요?
A. 다른 사람이 쓴 글을 보면서 감탄을 많이 하고 매혹을 잘 느끼기 때문에 좋아하는 작가 가 무척 많아요. 시기에 따라 자주 바뀌는데, 처음 소설 쓰기를 배울 때는 프랑스 소설과 독일 작가의 소설을 많이 읽었어요. 그중에서 세계관 자체에 영향을 받은 작가는 카프카라고 할 수 있어요. 세계라는 것이 얼마나 모호하고 불확실하고 무질서한 우연에 의해 진행되는 것인지 하는 느낌을 완벽하게 이야기로 전달해 주는 작가입니다.


Q. 후속작 계획에 대해서 간단히 말해주세요.
A. 내년 초쯤에 소설이 출간될 것 같아요. 병원이라는 조직과 비밀스러운 시스템에 관한 이야기를 궁리하고 있습니다.


Q. 후속작으로 소설 장르 외에 도전해보고 싶은 장르는 있나요?
A. 창작과 관련된 장르로요? 없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상상력이나 창작 능력이 그다지 많 지 않아서(웃음) 소설에만 쏟아부어도 아쉽습니다. 소설 이외의 다른 장르에 쓰기는 아깝죠.


Q. 독자들에게 어떤 소설가로 기억되고 싶 은가요?
A. 지금으로서는 동시와 호흡하면서 오랫동안 소설을 써 온 작가, 자기 세계를 유지하면 서 갱신하려고 노력한 작가라는 얘기를 들을 수 있으면 무척 좋겠어요.


Q. 교수로서의 모습도 궁금해요. 글을 쓰고자 하는 학생들에게 ‘읽어라’는 말씀을 많이 하신다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A. 무엇이든 쓰려면 자기가 쓰려는 것보다 몇 배는 되게 읽어야 쓸 수 있습니다. 당연한 얘기 에요. 좋은 글을 쓰려면 많이 읽어야 해요. 책을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다른 작가들이 어떻게 썼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소설로 표현된 세계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책을 많이 읽으면 인간에 한, 세계에 한, 생각에 한 경험치가 늘어나죠. 그 속에서 자기 생각이나 의견, 입
장 같은 것도 조금씩 정리를 할 수 있고요.


Q. 소설가가 꿈인 학우들을 위해 조언 부탁 해요.
A. 소설을 쓴다는 것은 자기가 경험하지 못 한 다른 사람의 삶에 해 최선을 다해서 생각 해보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어요. 사실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는 동안에는 나 아닌 다른 사람 에 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상상할 기회가 많지 않잖아요. 소설을 쓴다는 건 어떤 상황에 처 한 사람을 상상하는 것이기 때문에, 누군가를 깊이 이해하는 경험을 갖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무작정 자기가 하고 싶은 얘기를 글로 털어 내려고 조급해하지 말고 다른 사람에 해, 세계에 해, 자기 시각을 가질 수 있도록 생각도 많이 하고 경험도 많이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까 얘기한 로 독서가 좋은 조력자가 되고요.


Q.  교수로서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A. 글쓰기에 한 열망이 있어서 문예창작학과에 입학하기는 했지만, 점차로 문학적 재능을 쉽게 판단해 버리고 소설이나 시 자체에 흥미를 잃어버리는 학생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막상 써보려니 쓰기 힘들고, 써도 칭찬도 못 받고 하니까, 금세 결론을 지어 버립니다. 문학적 재능 은 순간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오래 지속하는 힘" 자체라고 학생들에게 자주 얘기 합니다. 학생들과 오랫동안 함께 좋아하는 소설을 읽고 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소설을 쓰려 는 학생들에게, 뭔가 써보려고 궁리를 하는 학생들에게 계속해서 쓸 수 있도록 격려하고 용기를 주는 선생이 되고 싶어요.


Q. 편혜영 에게 명지대란?
A. 소설은 고시 공부하듯이 골방에 틀어박 혀 홀로 끙끙 앓으며 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세계를 경험하는 것이 필 요해요. 그런 의미에서 명지학교는 저한테 젊은 세대와 가깝게 만나 소통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한국 문학을 책임질 다음 세대를 미리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지요.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 인문캠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거북골로 34 (명지대학교) 학생회관 2층
  • 자연캠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명지로 116 학생회관 2층
  • 대표전화 : 02-300-1750~1(인문캠) 031-330-6111(자연캠)
  • 팩스 : 02-300-1752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승환
  • 제호 : 명대신문
  • 창간일 : 1954년 11월
  • 발행인 : 유병진
  • 편집인 : 송재일
  • 편집장 : 한지유(정외 21)
  • 디자인·인쇄 : 중앙일보M&P
  • - 명대신문의 모든 콘텐츠(영상, 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명대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jupress@hanmail.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