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시인의 행복과 불행
원시인이 살던 시대. 세 명의 남자 원시인이 있었다. 그들의 양식은 멧돼지. 사냥을 해서 먹고 살았다. 그 중 한 명은 올가미 기술로 멧돼지를 잡았고, 둘 중 한 명은 함정을 파서 먹고 살았다. 나머지 한 명은 몽둥이질로 먹잇감을 때려잡아 해결했다.
그들의 삶은 평화로웠다. 각자의 기술로 먹잇감을 얻었고, 그래서 순조로웠다. 그러던 어느 날 셋은 거의 동시에 여자 원시인을 얻어 짝을 맺었다. 자연히 먹잇감이 더 필요했다. 각자가 갖고 있던 기술만으로는 더 많은 멧돼지를 잡을 수 없었다. 적어도 두세 개 이상의 사냥기술이 필요했다. 다른 원시인이 갖고 있는 사냥기술을 익혀야 했다. 밤을 새워가며 배울 수밖에.
필자의 학창시절, ‘일인일기一人一技’라고 해서 적어도 한 가지 기술을 갖도록 권장하는 교육목표를 세워놓고 매진했다. 소위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 그 전문기술로 평생이 보장되는 세상이었다. 세상은 급변했다. 멀티, 유비쿼터스, 통섭 등이 요구되는 시대이다. 아날로그, 디지털 등은 급변한 시대를 살기 위한 방법론이고, 이제는 또 다른 무엇인가를 개척해야 되는 절체절명의 시점에 와 있다. 한 우물만을 파다 가는 경쟁에서 뒤지는 세상이 되었다. 두세 개 우물을 동시에 파는 등 기발한 기술과 능력을 갖춰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과연 그렇게 살아야 하나? 문득 회의에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세상은 그런 회의에 빠진 젊은 원시인(?)을 용서하지 않는다. 학교는 그런 점에서 일생을 좌우하는 인큐베이터인 셈이다. 그 속에서 삶을 개척하는 수단과 방법을 한껏 배우고 익혀야 한다. 학교는 그런 점에서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는 셈이다.
예전 선생님들은 흔히 대학시절이 ‘내가 갈 길이 어디인가’를 정하는 때라고 했다. 그리고 상급 교과과정을 거치면서 전공을 심화하고 목표로 세운 전문가가 되는 것이라고 했다. 이 시대에도 그런 느긋한 행보로는 원시인 딱지를 떼기가 요원하다. 본격적인 인생의 출발선에 있는 젊은이들이 먹이 활동을 위해 정글로 뛰어들기엔 기술과 기능이 미숙하다. 너무나 많은 어려움이 도사리고 있다.
난관을 극복하고 용감무쌍한 용사가 되기 위해서는 원시적인 세 가지 기본기 외에 첨단기술을 갈고닦아야 한다. 아직은 달리 길이 없잖은가! 서둘러야 한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것이 원시인의 불행인 동시에 행복이다. 하기에 따라서 블루오션이 펼쳐져 있으니까.
권용(국문 66) 동문
박정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