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은 학문의 장? 학점의 장?
필자는 매 학기 수강신청을 할 때마다 딜레마에 빠진다. 이번 학기도 듣고 싶었던 ‘초급 불어’라는 과목을 두고 홀로 설전을 벌였다. 한 번쯤 듣고 싶었던 교양과목이었지만 내게 ‘제2외국어’는 항상 취약한 과목이었다. 좋은 학점을 받을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선뜻 수강신청을 할 수 없었다.
수강신청 변경기간이면 대부분의 학우에게서 어떤 과목이 쉬운 교과과정인지, 교수가 학점에 인색하지 않은지가 단연 화젯거리다. D홈페이지의 우리 대학 게시판에는 어떤 과목이 학점을 받기 쉬운지 서로 추천하고, 추천 받는 글이 가득하다.
유럽과 같은 선진국은 대학을 ‘순수 학문의 장’으로 평가한다. 특히 이탈리아에서는 대학이 취업을 위한 필수 과정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나라처럼 과열된 양상을 띠지 않는다. 졸업하기도 어려워 전체의 약 30%만이 졸업을 한다.
반면 우리나라 대부분의 대학은 A학점이나 B학점을 높은 비율로 배당한다. 절대평가를 실시하지 않는 이유도 학문을 닦는 목적보다 ‘학점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부작용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취업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대학생활은 결국 대학을 학문의 장이 아닌 학점의 장으로 이끌고 있었다.
결국 필자는 ‘내게 부족하다고 생각한 과목’보다 ‘좀 더 익숙한 과목’을 수강신청 했다. 물론 학점에 연연하지 않고 부족한 학문을 배운다는 생각으로 수강신청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 어떤 과목을 듣던지 필자가 열심히 한다면 스스로의 학문적 깊이를 닦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서류전형에 쓸 수 있는 것은 나의 학문적 깊이보다 학점이다. 씁쓸하지만 이번 학기도 역시 필자의 시간표는 학점의 장이 되었다.
서민지 기자 sophyseo@mj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