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대신문, 2016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자 안지은(문창 11)학우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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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대신문, 2016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자 안지은(문창 11)학우를 만나다
  • 안수현 기자
  • 승인 2016.05.17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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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대신문, 2016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자 안지은(문창 11)학우를 만나다

명대신문, 2016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자 안지은(문창 11)학우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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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자는 우리대학 문예창작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인 안지은 학우이다. 학부생의 등단은 조금 특별한 일이다. 졸업 전에 등단하는 게 목표였고 늘 주변에도 그렇게 말하고 다녔다는 그녀. 안지은 학우를 만나기 전, 필자는 인터뷰를 위해 그녀의 시를 읽었다. 사실대로 고백하자면 인터뷰 전에 형식적으로 하는 사전조사에 가까웠다. 게다가 그 날은 몹시 피곤한 날이었다. 그런데 시를 읽어 내려가면서 그 피곤함은 말끔하게 사라졌다. 그녀의 시 중 필자는 어느 작품도 명확하게 읽을 수 없었지만 자꾸만 반복해서 읽고 싶었다. 재밌었다. 그래서 그녀가 더욱 궁금해졌다. 

안지은 학우는 참 유쾌하고 편한 사람이었다. 옆에 있으면 기분 좋은 에너지가 전달되는 듯 했고, 그 편안함 안에서도 자기 생각을 거침없이 이야기했다. 신춘문예 당선도 ‘내 글을 읽고 나를 이해하고 발견해 주는 심사위원을 만난 게 큰 운이었다’며 겸손해 하더니, 계 속 성적장학금 받고 다니면서 학과가 본인에게 잘 맞기 때문이라며 끝까지 겸손의 모습을 보인다. 우리는 처음 만났지만 꽤 진솔한 얘기를 많이 나눌 수 있었다. 그녀 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녀의 시는 '안지은' 학우, 그 자체였다. 

Q. 당선 후에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A. 갓 등단한 신인이고 대형 일간지인 조선일보에서 등단해서 그런지 청탁이 많이 들어온다. 3, 4월은 내내 원고 청탁 받아서 시만 쓰다가 중간고사가 겹쳐서 바쁘게 지냈다. 지금 딱 한숨 돌리고 한가한 날을 보내고 있다. 

Q. 당선 소식 들었을 때 어땠나?
A. 아직도 기억이 나는데, 그때가 12월 23일이었다. 당 시 맥딜리버리 콜 센터 심야 알바를 하고 있었다. 보통 저녁 8시에 시작해서 아침 8시까지 일을 하는데 12월은 콜이 많을 때라 그 날은 오전 10시까지 일을 했다. 아침에 일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에 뭔가 허탈감이 들었다. 나는 퇴근하는데 남은 출근하고. 오묘하면서 기분이 이상했다. 집에 가서 잠을 자는데 오후 5시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늘 무음으로 해놓다가 그날만 진동으로 하고 잔 날이었다. 전화가 와서 보니 모르는 번호라 택배인 줄 알았다. “안지은씨 맞으시죠” “네. 맞는데요.” “남자세요” 택배아저씨가 참 무례하다고 생각하며 아니라고 대답하려는 찰나, “조선일보 신문사인 데요, 24일 오전까지 수상소감 준비하세요” 해서 당선된 걸 알았다. 그쪽에선 “네, 당선축하드려요” 하고 바로 끊어버렸다. 당황스러움과 감격이 같이 몰려왔다. 일어나 울면서 가족들, 교수님들께 전화했다. 

Q. 글은 어떻게 쓰게 됐나?
A. 원래는 꿈이 개그맨이었다. 고등학교 때 연극영화과를 준비했는데 학원을 가니 끼가 많은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조금 주눅이 들더라. 다들 수능 준비하는데 내가 지금 준비해서 할 수 있을까 싶었다. 그런데 그 당시 교내에서 연극부 활동을 해서 극본을 썼는데 국어를 좋아하고 잘하니 선생님들이 국문과나 문창과를 추천했다. 고3 8월부터 실기를 준비했다. 그런데 너무 불안했다. 다 수능 문제 푸는데 나는 책 읽고 필사하고 이러고 있으니 내가 할 수 있을까? 의구심 이 들었다. 그래도 결국 소설로 명지대 문창과를 입학 하게 됐다. 1학년 때는 소설을 주로 썼다. 그런데 나는 소설 쓰는 애 치고는 시집을 많이 읽는 편이었다. 그 때 당시는 시를 읽는게 어려웠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고등학교 때 배운대로 자꾸 논리적으로 분석하려고 하니까 그런 어려움이 자꾸 생기는 것 같다. 시가 논리적으로 분석하는 장르는 아니지 않나. 나는 그냥 시에서 오는 분위기, 느낌 문장이 그냥 좋았다. 어떻게 나한테 그런 느낌을 줄 수 있지? 그래서 계속 읽었다. 시를 제대로 써 본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래서 형식적으로 시를 쓰곤 했었다.

소설에서 시로 넘어오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모두가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지만 나는 유년 시절 부모님이 심하게 싸우셨는데 그런 사건들이 내면에 남아있다. 소설 도 폭력적인 아빠, 수동적인 엄마. 자꾸 그런 식으로 쓰 게 되더라. 남이 읽으면 나의 가정사를 알아챌 수 있을 정도로. 그런 인물들로 소설 속 인물을 만들고 이야기를 만드는 게 좋아서 소설을 썼던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도 소설은 어쨌든 허구이지 않나. 그런데 시로 넘어가니까 시는 그냥 나 자체, 안지은 이더라. 너무 가까운 거 다. 내가 뭘 숨기거나 허구적으로 만들려고 해도 그럴 수가 없는 거더라. 나의 상처가 나의 언어로 나올 수 있다는 게 결정적으로 가장 좋았다. 시는 언어가 가장 정제돼 있으니까 나는 나의 상처를 시로 폭발시킬 수 있었 다. 내 언어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 있는 게 좋아 시를 쓸 수밖에 없었다.

Q. 문창과에서 배운게 어떤 식으로 도움이 됐는지?
A. 항간에 문창과에서는 글을 쓰는 ‘스킬’을 가르친다고 하지만 나는 4년 동안 문창과에 다니면서 소설적 인, 시적인 스킬을 배워본 적이 없다. 내가 오로지 한 건 합평뿐이다. 혼자만의 싸움인 것이다. 좋은 점, 부족한 점을 말해주지 스킬을 말해주지 않지 않나. 결국 자기 콘텐츠를 만들어 가는가의 싸움인 것 같다. 내가 문창과에서 배운 것은 태도이다. 내가 문학하는데 도움을 받았지. 생각할 길을, 내 생각을 틔워준다. 작품도 많이 읽히고. 내가 쉽게 읽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 폭 넓게, 외국 작가의 작품이나 유명한 철학가들 읽을 수 있다. 내가 정보가 없으니 알 수 없는 것들이다. 양질의 컨텐츠. 근데 그것도 다 알려주지 않는다. 오직 내가 느끼고 내가 얻어 가면 되는 것이다. 내가 어떤 태도로, 내 세계관을 어떻게 만들까 하는데 도움을 많이 받았다. 

Q. 개인적으로 언제 글이 가장 잘 써지는가?
A. 새벽부터 동이 틀 무렵 가장 잘 써진다. 또 나는 글을 쓸 때 내가 너무 행복하면 글을 안 쓴다. 그래서 나는 나를 벼랑 끝으로 내몬다. 예전엔 내 상처를 들키기 싫어서 밝은 척, 쾌활한 척 하며 살았다. 내 속은 썩고 있었다는 사실을 나는 알지 못한 채 말이다. 근데 문학 을 통해 내 트라우마를 조금씩 직시하게 되면서, 물론 유년시절을 생각하면 여전히 마음 아프지만 더 이상 숨기고 싶지 않았다. 이젠 상처 받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게 됐다. 오히려 벼랑 끝에 몰려야 내가 글을 쓰니까 아낌없이 상처받고 많은 글을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

Q. <생일 축하해>나 <엑소더스 클럽>를 보면 마지막에 독자들에게 키를 던져주는 것 같다. 
A. 마지막 문장은 늘 공들여서 쓰려고 한다. 열리게 쓰면 너무 시가 흐지부지 되고 너무 꽉 닫히게 쓰면 시가 넓게 읽힐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된다. 그래서 모든 작가가 그렇겠지만 시작과 끝을 열심히 쓴다.

Q. 죽음과 관련된 시가 많더라. 그렇다면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볼 수 있나?
A. 당연히 영향이 크다. 아직까지도 아빠의 죽음과 관련된 파편으로 글을 많이 쓴다. 죽음이 두렵진 않지만 죽음 이후의 세계를 모르니까. 아빠가 림프암 4기 말 기 판정을 받았다. 나는 아빠가 안 죽을 거라고 생각했다. 항암치료도 잘 받았다. 근데 그 암이 급성 백혈병 으로 전이됐다고 했다. 이건 진행률이 70프로나 더 빨라 2주밖에 못산다는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 판정 받고 1주일 만에 돌아가셨다. 아빠가 돌아가시기 4일 전 부터 죽음이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혈소판에 문제가 있으니까 피가 멈추지도 않고 온몸이 다 멍투성이였다. 임종 직전엔 눈에 검은자와 빨간색 밖에 보이지 않았다. 눈에 실핏줄 다 터져서. 어느 날 집에서 혼자 밥을 먹는데 갑자기 너무 외로웠다. 원래 혼자 밥 먹는 걸 좋아하고 익숙했는데.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셔서 가족끼리 온전히 밥을 먹어 본 기억이 없다. 그래서 엄마한 테 문득 외로워서 아빠가 빨리 나아서 네 명이 함께 밥 먹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병간호로 예민했던 엄마는 지금 상황이 이런데 외로운 게 대수냐고 이기적인 거 아니냐고 화를 냈다. 서로 감정이 격해져서 막 싸웠다. 결국 울면서 화해하고 집에 가려는데 아빠가 “지은아” 부르는 것이다. “엄마랑 아빠가 너무 사랑하는 거 알지” 나는 대답도 안하고 문 닫고 나가버렸다. 그게 아빠의 마지막이었다. 그날 새벽에 아빠는 의식이 없다가 이틀 후 돌아가셨다. 그게 너무 후회된다. 정신 있을 때 사랑한다고 말했어야 했는데. 그게 가장 크 다.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부모님을 참 미워했다. 병간호 해본사람은 알겠지만 너무 힘들다. 개그맨 1차 서류 붙고 2차 면접시험 보러가야 하는데 아빠가 중환자실에 들어갔다. 그거마저도 미웠다. 왜 아빠는 지금 아파서 왜 내 발목을 잡는 거야? 심지어 빨리 죽었으면 좋 겠다는 생각까지 해봤다. 이게 죄책감의 총합이 된 것 같다. 이렇게 아빠가 빨리 돌아가실 줄 알았으면 더 잘 해줄걸 그런 거. 그래서 작품 속 죽음의 얘기는 미안함과 죄책감에 기인한다. 이제 1년 조금 넘은 거라 아직은 영향이 많다.

Q. <희귀종>이나 <술래잡기>를 보면 역설적인 걸 즐겨 쓰는 것 같다.
A. 형식을 통해 전달하고 싶은 것도 있다. 또, 대부분 독자들은 내 개인 이야기를 모르지 않나. 시 자체만을 본다. 나는 작가로서 조금 두려웠다. 내 속을 다 읽히면 어떡하지? 나를 다 읽어버리면 어떡하지? 그래서 계속 꼬게 됐다. 이영주 선생님이 시에 방어기제가 심하다고, 너무 닫혀있다고, 자꾸 숨기려고 한다고 그러셨다. 그래서 털어놨다. 사람들이 나를 다 읽을까봐 두렵다고. 하지만 사람들은 다 나를 모르고 그들은 다 시로써 볼 뿐이라는 말을 해줬다. 극복하고 있다.

Q. 비슷한 시어라던가 문장이 있는 것 같다.
A. 나와 가까운 시어들이 있다. 예를 들면 '벽'이 그런데. 나랑 감정적, 나의 속성과 좀 맞는 것 같다.

Q. 어떤 작가가 되고 싶나?
A. 2016년에 등단한 사람들 중에 가장 잘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내 세계관을 형성하는 중이고 컨텐츠를 찾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먼 훗날에 내 컨텐츠가 확실한 시인이 되고 싶다. 내가 누구보다 나를 잘 알고. 독자와 문단에서 인정받고 싶다. 결국에는 내가 내 자신 을 인정할 수 있는 시인이 되고 싶다. 

Q. 학우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시집이나 책이 있다면? 

- 이영주 <차가운 사탕들> 
죽음에 관한 시편이 많다. 엄청 언어가 정제돼 있고 사유가 좋은 시집이다. 내가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시집이어서 추천하고 싶다.

- 오은 <호텔 타셀의 돼지들>
정말 재밌다. 말장난이 재밌어서 읽는 재미가 있다.

-성동혁 <6>
이것도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와닿는 문장, 느낌이 매우 많다. 아픈 시편들이 많은데 그 점에 많이 공감해서 좋아한다. 이런 감성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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