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와 직장 사이
내가 대학 4학년이었던 시절에는 독재정권의 암울함이 있긴 했지만, 사회 전반의 경기는 좋았었다. 덕분에 일찌감치 취업을 결정한 이들이 적지 않았고, 서너 곳에서 합격 통지를 받아 행복한 고민에 빠진 이들도 꽤 여럿이었다. 나도 이런 행운을 잡은 축에 속했다. 9월을 채 마감하기 전 ‘입사’를 하게 되었으니까.
얼떨결에 낸 지원서가 덜컥 합격 통지서로 변하면서 나는 졸지에 ‘학생’에서 ‘직장인’이 되었다. 본사 교육에, 합숙훈련에, 지방 순회교육에, 관계사 탐방까지. 오전 9시 출근 오후 6시 퇴근의 틀 속에서 학교 수업은 엄두도 낼 수 없었다. 회사에 통사정하여 학교에 들른 날, 은사들은 나의 걱정을 통쾌하게 날려 버렸다. “수업일수는 걱정 마라, 축하한다.”
이듬해 2월, 나는 무사히 학사모를 썼다. 비록 대학 4년의 과 톱의 영예는 다른 이의 차지가 되긴 했지만.
30년도 훨씬 지난 옛일을 어제 일처럼 또렷이 기억하는 것은 그만큼 가슴을 졸였기 때문일 것이다. 대학교수가 되며 나 역시 학생들에게 “걱정 마라, 축하한다"고 말하기를 소망했다. 더욱이 내가 제자를 졸업시킨 2009년 이후 젊은이들의 사회진출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지 않은가.
그렇지만 ‘낙타가 바늘귀를 뚫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취업의 문턱을 넘어선 제자들에게 나는 선뜻 “걱정 마라”라는 말을 해주지 못한다. 대신 ‘5분의 4 이상 출석하지 않으면 학점 취득 불가’를 상기시키고 있다. 교육부의 엄격한 학사관리 때문이다.
물론 학사관리는 엄격해야 한다. 그러나 대학생의 신분으로 직장인이 된 이들에게까지 이를 요구하는 것은 무리이다. 졸업을 수개월 앞둔 예비 졸업생들에게도 엄연히 취업의 문호가 열려 있는 현실에서 ‘예외 없이 80% 출석’만을 고집하는 것은 오히려 많은 이들에게 거짓을 강요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정규직은 하늘에 별 따기요, 낮은 봉급에 계약직이라도, 아니, 정식 취업이 아닌 인턴직이라도 매달리는 젊은이들에게 ‘출석일수 미달’이라는 꼬리표를 들이밀 수는 없다. ‘눈 가리고 아웅’하기를 강요하는 탁상행정은 가라.
홍은희(디지털미디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