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로 배우는 것을 거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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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로 배우는 것을 거부합니다
  • 서상혁 기자
  • 승인 2015.11.21 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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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성의 가치를 무시하는 정부의 국정화

 

하나로 배우는 것을 거부합니다

 

다양성의 가치를 무시하는 정부의 국정화

 

무더운 여름이 지난 가을날, 대한민국에선 역사 전쟁으로 아직도 뜨거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지난달 12일 정부가 중ㆍ고등학교 역사 교과서를 국정 교과서로 전환하겠다고 발표하자, 이를 반대하는 학계와 학생, 시민들이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역사 교과서의 국정화는 아이들의 사고를 획일화 시킬 수 있다며 정부의 국정화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역사는 누가 바라보느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다양한 관점으로 서술될 수밖에 없다. 이를 하나의 관점으로 서술해 학생을 가르친다는 것은 다양성의 가치를 무시하는 행위다.

이에 본지는 정부의 역사 교과서의 국정화 추진 과정을 알아보고 국정화를 주장하는 근거를 살펴봤다. 또한 국정화에 반대하는 교수와 학생들의 의견을 들어 그들이 말하는 역사 교과서의 올바른 방향성을 들어봤다.

 

역사 전쟁, 그 발단은?

현행 교과서는 검정 방식에 따라 크게 △국정 교과서 △검정 교과서 △인정 교과서 △자유 발행제로 구분된다. 그 중 국정 교과서와 검정 교과서에 대해 알아보자.

국정교과서는 국가 및 정부에서 국가적 통일성이 필요한 교과목 위주로 직접 주관해 교과서를 발간하는 책을 말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국정교과서는 초ㆍ중ㆍ고등학교 어느 곳에서나 의무적으로 사용하도록 되어 있다. 검정 교과서는 국가 및 정부에서 채택된 민간 출판사에서 만든 교과서를 말한다. 교육부에서 지정한 검정기관에서 심사를 맡는데, 역사 교과서의 경우 역사편찬위원회에서 그 외 과목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 수행하게 된다. 의무성을 띄는 국정 교과서와는 달리 각 학교별로 원하는 출판사, 내용에 따라 교과서를 채택할 수 있는 것이 차이점이다. 2015년 현재 중ㆍ고등학교에서 사용 중인 교과서 중 국정 교과서는 없으며, 초등학교 일부 교과목에서만 국정 교과서를 사용 중이다. 현재 논란이 되는 역사 과목의 경우 중학교에선 9종, 고등학교에선 8종의 검정 교과서를 채택하고 있다.

사실 역사 교과서의 국정화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동안 중ㆍ고등학교 역사 교과서는 국정과 검정 체제 사이를 오갔다. 광복 직후인 1946년부터 1973년까지는 검정 교과서를 사용했었다. 이후 정권을 잡은 박정희 대통령은 ‘국적 있는 교육’을 표방하며 당시 22종이던 역사 교과서의 국정화를 단행했다. 그렇게 2000년대 초반까지 유지되어왔던 국정 체제는 2003년 한국 근현대사의 검정 교과서로의 분리, 2010년 중학교 역사 교과서의 검정 전환, 2011년 고등학교 역사 교과서의 검정 전환으로 국정 체제는 끝이 났다.

이후 국정화가 재점화 된 시기는 지난 2013년 말부터였다. 당시 보수 이념이 투영된 교학사 교과서가 채택되자 극심한 이념 갈등이 벌어졌다. 일부 진보 세력은 채택 반대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이에 여당은 이듬해 1월 역사 과목의 국정 교과서 환원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국정화를 찬성하는 정부ㆍ여당ㆍ학계와 반대하는 야당ㆍ학계ㆍ시민단체 간의 공방이 끊임없이 이어졌고, 그 와중에 정부는 지난달 12일 국정 교과서 전환 확정 발표를 했다. 정부의 발표 이후 야당은 “유신ㆍ독재로의 회귀”, “친일 미화의 의도”라며 강도 높은 비판을 하고 있다. 이에 여당은 “아이들에게 올바른 역사를 가르치기 위함”이라고 응수하며 연일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정부는 11월 2일까지 역사 교과서의 국정화에 대한 국민의 의견을 수렴한 뒤 확정ㆍ고시하겠다는 행정예고를 한 상태다. 만약 국정 교과서가 고시될 경우 중ㆍ고등학교 역사 교과서는 2011년 이후 6년 만에 국정으로 회귀하게 된다.

 

국정 교과서는 정부의 입장을 드러내는 용도

정부와 여당은 역사 교과서의 국정화를 추진하면서 “미래 세대에게 우리 역사를 올바르고 균형 있게 가르치기 위함”이라며 그 근거를 “좌편향”으로 들었다. 현행 역사 교과서가 이념 측면에서 진보 쪽으로 쏠려있다는 이야기다. 기록하는 사람의 사관에 따라 서술되는 내용이 달라지는 역사의 특성상 집필자마다 정치적 편향성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검정 교과서를 심사하는 주체는 정부다. 정부는 검정 교과서의 오류, 또는 정부가 판단할 때 부적절하다고 생각되는 내용을 집필진에게 수정하도록 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다. 실제로 지난 2013년 정부는 8종 역사 교과서의 수정 권고와 수정 명령을 내렸고 이에 따라 2250건의 수정 및 보완이 이뤄졌다.

한편, 본지는 현재 정부가 좌편향이라고 주장하는 근거들 중 몇 가지를 살펴봤다.

먼저 북한이 주장하는 주체사상 논란이다. 정부ㆍ여당은 현행 역사 교과서가 북한의 선전선동 목적으로 만들어진 주체사상을 여과 없이 그대로 소개한다고 주장한다. 주체사상에 대한 구체적 비판 없이 원문을 그대로 인용해, 학생들이 오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금성출판사에서 발간한 고등학교 역사 교과서의 ‘더 알아보기’에선 북한이 주장하는 ‘주체사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해당 부분은 북한이 주장하는 주체사상을 인용해 설명했을 뿐이고, 그 뒤에는 ‘그러나 주체사상은 김일성주의로 천명되면서 반대파를 숙청하는 구실 및 북한 주민을 통제하고 동원하는 수단으로 이용되었다’는 비판도 함께 적혀있다. 해당 교과서의 자습서에도 ‘북한의 주체사상은 김일성 개인숭배며, 김일성은 권력을 절대화하기 위해 국가 주권을 대표하는 주석제를 채택했다’고 적혀있다. 여과 없이 그대로 소개한다고 보기엔 다소 무리가 있다. 또한 북한이 주장하는 주체사상에 대한 설명은 교육부의 집필기준에 따른 사항이다. 교육부에서 고시한 2015년 역사과 교육과정에서는 북한의 변화와 관련된 학습 요소로 ‘주체사상과 세습 체제’가 명시되어있다.

이어서 ‘정부 수립’과 ‘건국일’ 논란이다. 정부와 여당은 현행 교과서 대부분은 1948년 대한민국의 단독정부와 관련해선 ‘정부 수립’, 북한에는 ‘국가 수립’이라는 표현을 사용해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격하시켰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대한민국 건국을 언제로 볼 지에 대해서는 학계에서도 의견이 나뉜다. 일제 강점기인 1919년에 수립된 상해 임시정부를 정부로 인정할 만한 수준이었느냐에 따라 의견이 갈리는데, 보수 성향의 학자들은 1948년 8월 15일을 건국일로, 진보 성향 학자들은 임시정부가 세워진 1919년 4월 11일을 건국일로 보고 있다.

이승만 전 대통령과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 서술도 논쟁 거리다. 정부와 여당은 교학사를 제외한 다른 현행 교과서들이 이승만 전 대통령의 사사오입개헌, 발췌개헌 등 부정적인 부분을 지나치게 부각했다고 주장한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학자들 사이에서 어떻게 볼지에 대해 극명하게 의견이 갈리는 인물이다. 보수 진영에선 건국의 아버지라고 추앙받고 있으나, 진보 진영에선 발췌개헌ㆍ사사오입 개헌 등을 통해 민주주의를 거스른 것은 분명한 과오라며 교과서에서 상세히 다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한강의 기적’을 일궈내며 대한민국 경제를 발전시켰지만, 독재와 인권탄압이라는 어두운 부분도 갖고 있다.

현재, 정부는 국정 역사 교과서의 이름을 ‘올바른 역사 교과서’로 짓고 편찬 준비 중이다. 아직 역사학계 내에서도 이견이 갈리는 사항이 있는데도, 정부와 여당은 좌편향을 근거로 들어 하나의 역사관으로 보는 하나의 교과서를 만들려고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교과서가 과연 올바르고 균형잡힌 교과서일까. 논란이 되는 사항들을 정부의 입장에 따라 선택하게 되면 그에 반대하는 이들이 들고 일어나 사회 혼란을 더욱 야기할 것이다. 검정 역사교과서가 편향된 시각을 갖게 한다고 주장하지만 정부가 주체가 되어 집필한다는 점에서 어떤 교과서 체제가 더 편향성을 갖는지에 대한 답은 뻔하다. 이를 두고 덕성여자대학교 사학과 정요근 교수는 “국정화는 다양성과 참신성을 부정하고 획일성을 통해 정치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함이며, 정부의 입장 또는 통치자의 입장이 반영되어 교과서가 편찬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획일화된 역사교육을 반대한다”

정부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 확정 발표 이후 이에 반대하는 움직임은 점점 더 거세지고 있다. 학계부터 시작해, 정치계, 시민단체 등 다양한 단체들이 전국 곳곳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역사 교과서의 국정화를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지난달 24일, 국정화를 반대하는 466개 교육ㆍ시민단체로 구성된 ‘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네트워크’는 회원 포함 1500여 명이 청계광장에서 ‘국정화 저지를 위한 제2차 범국민 촛불 문화제’를 진행해 “어떤 국가나 권력도 획일적인 역사관을 강요해선 안 된다”며 정부의 국정화 중단을 촉구했다. 이날 시위에 참여한 서울대학교에 재학 중인 장현서(서양사학과 15) 학생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역사 교과서의 국정화는 옳지 않아 이렇게 시위에 나오게 됐다. 정부는 현행 교과서가 북한의 사상을 여과 없이 가르친다 하지만 고등학생 때부터 북한의 체제에 대해 옳다고 생각한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고 전했다.

교과서를 집필하는 연구원 및 교수들 사이에서도 대대적인 국정화 반대 움직임이 일고 있다. 지난달 16일에는 국내 최대 역사 연구단체인 한국역사연구회에서 국정교과서 제작에 불참을 선언했다. 지난 9월 서울대학교 역사 관련 5개 학과 교수 34명이 황우여 교육부 장관에게 역사 국정화 반대 뜻을 전하는 의견서를 제출한 것을 시작으로 △고려대학교 △건국대학교 △덕성여자대학교 등 수많은 대학교의 교수들이 집필 거부 선언을 하거나 국정화 반대를 표명했다. 정요근 교수는 “현행 검정 교과서에도 많은 오류가 있다. 하지만 검정을 강화하는 방법으로 해결해나가야지, 국정화로 해결하는 것은 잘못됐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대학 정치외교학과 김도종 교수(이하 김 교수)도 “국정화로 교과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행 검정 교과서에도 많은 오류가 있다”고 말했다.

대학가의 국정화 반대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각 대학의 게시판에는 국정화를 비난하는 대자보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으며 각 대학 총학생회들은 한 목소리를 내며 정부의 정책을 규탄하고 있다. 우리대학 인문캠 학생회관 1층에 대자보를 붙인 김수정(문창 13) 학우는 “교과서가 잘못된 방향으로 바뀐다면 아이들이 어떤 시선을 가질지 걱정이 돼 이렇게 행동에 나섰다”고 말했다.

지난 20일에는 광화문 앞에서 평화나비네트워크, 고려대학교 포함 총 17개 대학 총학생회가 모인 ‘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를 위한 대학생 연석회의’가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의 국정화 추진 중단을 촉구했다. 우리대학 평화나비네트워크인 ‘명지나비’ 대표 최나현(국문 12) 학우는 “평화나비네트워크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동아리이며, 진실 된 역사를 기억하고,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기 위한 동아리다. 역사의 획일화를 말하는 국정 교과서를 저지하기 위한 행동에 나서는 것은 당연하다”며 “옳지 않은 것에 반발하고 당당히 자신의 의견을 밝힐 수 있는 학우들이 있기에 충분히 힘을 더 모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역사는 모두에 의해 쓰여져야 한다

날이 갈수록 역사 교과서의 국정화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자, 여당은 “친일ㆍ독재에 대한 미화는 없을 것이라며, 아직 나오지도 않은 교과서를 음해하지 말라”고 맞받아쳤다. 박근혜 대통령 역시 지난 27일 내년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아직 만들어지지 않는 교과서, 일어나지 않을 일에 대해 왜곡과 혼란을 없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자라나는 세대가 미래로 나아갈 수 있도록 국민 여러분께서 지혜와 힘을 모아주길 바란다. 왜곡 국정 교과서는 저부터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반대 측이 주장하는 의혹을 일축했다.

하지만 이는 나왔냐 나오지 않았냐, 미화냐 왜곡이냐 문제가 아니다. 역사 교과서를 하나로 만들려는 시도 자체가 문제다. 김도종 교수는 교과서 하나로 배우게 되면 정권이 바뀔 때 마다 그 내용이 바뀔 수 있음을 지적한다. 그는 “검정 교과서 체제에서는 학교에 따라 교재를 선택할 수 있었지만, 국정화가 진행되면 선택권이 없다. 5년 동안 같은 내용을 가르치다가 정권이 바뀌면 또 다른 내용으로 가르치게 될 가능성이 높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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