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기원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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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기원은 무엇일까
  • 구희주
  • 승인 2015.03.29 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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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기원은 무엇일까



인류는 언제, 왜 예술을 탄생시켰을까. 먹고사는 문제와 별 관련이 없음에도 찬란하고 공교로운 예술을 왜 굳이 만들어냈을까.

언뜻 과학과 관련이 없어 보이는 주제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예술의 기원에 관한 주요한 연구 결과는 ‘사이언스’나 ‘네이처’, ‘미국 국립 과학원 회보(PNAS)’ 같은 주요한 과학 학술지의 표지로 소개된다. 예술의 기원을 밝히는 과정에 필연적으로 연대 측정이나 지층 분석 같은 과학적 연구가 포함되는데다, 인류의 진화와 관련 있기 때문이리라.

우선 선사시대 예술의 대명사 동굴벽화. 정교한 동물 그림과 기하학적 무늬가 돋보이는 이들 작품은 유럽에서 주로 발견됐다. 프랑스 남부의 라스코나 알타미라, 스페인 북부의 엘 카스티요의 동굴이 대표적인데, 함께 남아 있는 유적과 인근에서 발견된 유골, 그리고 연대 측정 결과를 보면 이들 작품을 남긴 것은 우리와 똑같은 현생인류(호모 사피엔스)였다. 짧게는 1만여 년 전(알타미라)부터, 길게는 3만여 년 전(라스코)에 살던 조상이다. 그런데 2013년에 동굴 중 일부의 연대 측정을 다시 해 본 결과 가장 오래된 벽화가 발견됐다. 바로 스페인 북부 엘 카스티요 동굴의 벽화들이었다. 여기에는 동물을 그린 그림 외에도 손바닥 모양의 스텐실(어떤 모양을 두고 그 주변에 안료를 칠해 모양을 부각시키는 미술 기법)이 다수 발견됐는데 최대 3만 7000년 전 그려진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까지 나온 손바닥 그림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었다. 연구 결과는 ‘사이언스’ 지에 대서특필됐다.

엘 카스티요 동굴벽화가 최고(最古)의 벽화로 밝혀지고 이에 필적하는 연대를 보여 주는 동굴벽화가 유럽 외의 다른 지역에서는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고고학계는 지난해 가을까지도 동굴벽화의 기원이 유럽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최근 이런 사실도 새로운 연구 결과로 다시 깨졌다. 지난해 가을 ‘네이처’에는 고고학자들을 당황하게 하는 연구 결과가 실렸다. 인도네시아의 술라웨시 섬에 있던 동굴 벽화의 연대를 새롭게 측정해봤는데 결과가 이상했다. 거의 4만 년 전 작품으로 나왔기 때문이다. 엘 카스티요의 동굴 벽화보다 더 오래된 연대였다. 고고학자들은 당황했다. 그동안 이 지역에서 변변한 석기나 예술작품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석기의 세련도나 숙련도가 문화의 세련도를 나타낸다고 믿던 유럽 출신 고고학자들은(유럽은 세련된 석기도 많이 발견되고 발달한 선사시대 동굴 벽화도 많았다) 석기가 투박한 동남아시아에서 정교한 예술이 먼저 생겼다는 사실을 처음엔 믿지 못 했다.

하지만 과학적 연구 결과에 고고학자들도 수긍하고 있다. 현재 고고학계는 예술이 한 군데에서 생겨서 세계로 퍼진 게 아니라, 지구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생겼으리라고 본다. 예술은 인류의 보편적인 특성이었던 것이다. 다만 여전히 남은 의문은 있다. 예술이 왜 꼭 현생인류의 시대, 그것도 딱 3만~4만 년 전 같은 시기에 유럽과 아시아에서 발생했느냐는 것이다. 이전에도 인류는 존재했는데, 3만~4만 년 전 지구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고고학자와 인류학자들의 설명은 이렇다. 그 시기는 가장 혹독했던 빙하기였다. 인류가 이겨내기 쉽지 않은 환경이었다. 인류에겐 ‘정신승리’가 필요했고, 그것은 먹고사는 문제와 무관한 방식으로 이뤄져야만 했다. 예술은 그중 하나였다. 동물 그림을 그리며 혹은 가장 손쉬운 도구인 ‘손’ 모양을 바위에 남기며, 이들은 춥고 괴로운 빙하기를 견디는 의식을 행했다. 그림이 뭔가 실용적인 역할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인류를 인류로서, 위대한 존재로서 살아남게는 했을 것이다. 지금도 그렇듯이 말이다.




윤신영.jpg 윤신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ashill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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