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듬 충만한 즐거운 일미 - 영화 ‘아메리칸 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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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듬 충만한 즐거운 일미 - 영화 ‘아메리칸 셰프’
  • 한동윤 대중음악평론가
  • 승인 2015.02.25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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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듬 충만한 즐거운 일미 - 영화 ‘아메리칸 셰프’

리듬 충만한 즐거운 일미 - 영화 ‘아메리칸 셰프’

 

요리는 리듬의 산물이다. 여러 재료를 손질하고 준비된 식자재들을 조리하는 작업은 계획된 규칙을 따른다. 이 과정은 항상 정량 내지는 적당량을 요구하며 굽기, 끓이기, 졸이기 등에서 시간 엄수를 중요시한다. 어느 부분 하나라도 틀어진다면 제대로 된 맛을 내기가 어렵다. 사용되는 제재들이 모두 잘 어우러져야 하며 속도, 세기 같은 가공의 단계가 딱딱 맞아떨어져야 한다. 맛있는 음식은 요리가 안정적이고 통일된 율동을 수반했을 때 탄생한다.

대중에게 <아이언맨> 시리즈의 해피 역으로 익숙한 존 파브로가 주방장 칼 캐스퍼를 연기한 <아메리칸 셰프>도 요리와 리듬의 긴밀한 관계를 강조한다. 칼이 음식을 만드는 장면마다 카메라 앵글은 그의 손을 따라다니면서 섬세한 공정과 알맞은 순서, 타이밍을 부각한다. 여기에 칼질을 하거나 음식을 굽고 볶을 때 나는 소리는 영상이 박자를 타고 전달되도록 보조한다. 이로써 영화 속 요리는 자연스럽게 리듬을 입는다. 대체로 시간 간격이 좁은 주연 배우들 간의 대화도 구기 종목의 랠리처럼 규칙적인 생동감을 나타내는 장치로 활용되고 있다.

결정적으로 사운드트랙이 ‘요리는 곧 리듬’이라는 메시지를 강력하게 지지한다. 처음부터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까지 영화에서는 내내 라틴음악이 흐른다. 다채로운 타악기 및 관악기를 활용해 그루브를 생성하는 남아메리카산 음악이 곳곳을 장식하고 있다. 사운드트랙은 라틴음악 외에도 리듬이 특징이자 생명인 재즈jazz, 펑크funk, 레게의 전신인 록스테디rocksteady 같은 장르들을 품음으로써 <아메리칸 셰프>가 내정한 주장에 힘을 싣는다. 율동성이 두드러진 곡들의 배치는 요리를 고된 노동이 아닌 즐거운 일로 표현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시작과 동시에 흐르는 와일드 매그놀리아스The Wild Magnolias의 ‘Brother John Is Gone / Herc-Jolly-John’부터 어깨를 들썩거리게 한다. 칼이 새로운 메뉴를 시도하는 장면에 나오는 피트 로드리게스Pete Rodriguez의 ‘I Like It Like That’이나 주인공들이 자축하며 파티를 벌이는 마지막 장면에 깔린 ‘Oye Como Va’도 흥겹다. 칼이 음식 칼럼니스트에게 욕을 퍼붓기 전 긴장을 고조시키는 데 쓰인 리퀴드 리퀴드Liquid Liquid의 ‘Cavern’, 레스토랑에서의 소동 때문에 자숙 겸 휴가를 결정해 마이애미로 떠나는 부분에 삽입된 조 쿠바Joe Cuba의 ‘Bang Bang’ 등도 주목할 만한 노래들이다. 라틴음악이 생소한 음악이라 할지라도 호쾌한 리듬에 이내 빠져들게 될 것이다.

영화는 주인공들의 새로운 여정을 통해서도 음악을 전시하고 있다. 부득이하게 레스토랑을 그만두고 머리를 식히러 간 마이애미는 1950년대 이후 집중적으로 이뤄진 쿠바 난민들의 이주 탓에 라틴음악이 번성했다. 칼과 그의 아들, 칼을 도우러 온 동료 마틴이 샌드위치 푸드트럭을 성공적으로 개시한 후 찾는 두 번째 도시 뉴올리언스는 재즈로 유명하며, 다음 영업장소로 택한 텍사스는 컨트리, 블루스의 요지다. 음악의 명소를 훑는 이동 경로도 요리와 리듬이 상통함을 부연한다.

꽤 맛깔스러운 영화다. 시련을 이겨 내고 재기한다는 뻔한 이야기를 지니고 있긴 해도 스칼렛 요한슨,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등 <아이언맨> 캐스팅의 재현이나, 퇴사를 야기한 SNS가 경력과 가족 관계 회복의 매개가 되는 설정이 재미있는 흐름을 연출한다. 무엇보다도 요리와 리듬의 친밀함, 생기 있는 삶의 은유인 경쾌한 음악이 감상을 흡족하게 한다. 리듬 충만한 일미를 경험할 수 있다.

 

한동윤 대중음악평론가ㆍ블로그 soulounge.egloo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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