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서바이벌가이드의 올바른 사용법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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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서바이벌가이드의 올바른 사용법 (4)
  • 구희주
  • 승인 2014.12.13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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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문화상 소설 부문 당선작> 좀비서바이벌가이드의 올바른 사용법 (4)


5. 사태까지 0에서 4를 반복하라

 

어느 정도 생존에 대한 윤곽이 잡혀나갔다. 이제 사태가 일어날 때까지, 지금까지 했던 모든 것들을 개선하고 보강하는 나날이 이어졌다. 도검소지허가증이 필요 없다는 정보를 듣고 온타리오 사(社)의 18인치 정글도를 구입했다. 역시 배척 하나만으론 안심이 되지 않았다. 46cm짜리 날붙이는 도검소지증이 필요 없는데, 그보다 40cm가 작은 6cm 남짓한 손칼에 도검소지증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언뜻 이해가지 않았지만, 어찌됐든 더 나은 준비를 할 수 있어서 좋았다. 나이프 동호 사이트에서 중고로 9만원에 구입해서, 택배가 도착한 날은 9월 20일이었다. 이날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유튜브 조회 기록으로 기네스에 올랐다. 일루미나티가 흑막이라는, 음모론자들의 의견도 있었다. 인터넷 실명제가 위헌으로 끝난 이상, 아무도 우리의 그럴듯한 말을 막을 수 없었다..

 

긴급식량의 긴급함을 맛본 뒤, 적어도 아주 기초적인 요리는 배워뒀다. 사태가 일어나면 가스레인지도, 전기밥솥도 마음대로 쓸 수 없을 테니까. 특히 메주를 이용한 된장과 청국장은 반드시 적당한 가공이 필요했다. 갑자기 아주 잘하게 되지는 않았지만, 미간을 찌푸리지 않고 먹을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

매번 휴일마다 산장에 가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자전거 동호회에 들었다. 오래도록 도로를 달린 베테랑들에 이끌려, 도시주변 국도 이곳저곳을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썩 좋은 자전거도 아니었고, 그 이전에 내 체력으로 따라갈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사람이 아닌, 그저 자전거의 엔진인 것 같았다. 나는 입에서 단내가 날 때까지 달려야 했다.

이상하게도, 사태에 대비하면 할수록 주위로부터 잘하고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무기를 구입하거나 산장을 보수하거나, 식량을 구입하거나할 때 들어가는 돈은 제법 되어서, 그 돈을 충당하기 위해 알바를 뛰어야 했다. 사람들은 그런 나를 보고 열심히 살고 있다고 했다. 정글도를 사거나, 긴급식량을 사는 것은 그저 묘한 취미쯤으로 여기는듯했다. 자전거 동호회에 나가거나, 산장에 오르는 걸 좋은 생활습관이라 칭찬했고, 요리를 배우자 이게 제법이라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멸망까지 두 달도 채 남지 않은 2012년 11월 7일,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재선에 성공하고, 바로 다음날 중국에서 시진핑의 차기 지도자 승격이 확정되었다. 두 나라 모두 좀비에 대한 보도는 더 이상 흘러나오지 않았다.

나는 준비를 계속했다.

 

오랜만에 친구와 술을 마시고 헤어졌을 때는 이미 자정이었다. 버스는 끊기고 택시 타기는 아까워서, 그냥 집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도중에 시장을 지났는데, 한밤중 시장은 마치 달의 표면처럼 조용했다. 시장 주변의 도로는 차도 잘 다니지 않아서 더욱 그랬는지도 모른다. 천천히 길을 걷는데, 반대편 인도에서 고양이 한 마리가 보였다. 갈색바탕에 검은 줄무늬가 희미한 달빛에도 선명하게 보였다. 고양이는 항상 그래온 듯 익숙한 모양새로, 꼬리를 빳빳이 쳐들고 건너왔다. 건너편에 있는 나 따윈 안중에도 없어 보였다.

나도, 고양이도 알아채지 못했다. 언제 다가왔는지, 잘 다니지 않던 차 한 대가 순식간에 고양이의 머리를 짓밟고 지나갔다.

덜컹, 하는 소리가 났다. 고양이의 조막만한 머리는 바퀴 밑에 깔려, 잡아 채이듯 그대로 말려 올라가 차체와 바퀴 사이의 공간을 한번 훑었다. 그 다음 도로에 내팽개쳐졌다.

예상 못한 상황에 그저 가만히 서 있었다. 고양이가 깔렸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었다. 고양이가 아무렇지도 않게 골골대며 도로를 가로질러, 시장 점포 사이의 틈으로 들어 가버린 것 때문이었다. 으스러진 듯한 머리와, 마찬가지로 부러진 듯한 목을 가슴께 아래로 덜렁거리며.

별것 아니었을 수도 있다. 그 움직임이 꺼져가기 직전의 마지막 평온이었을 수도, 단순히 술김에 헛것을 본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그 고양이는 벌써 감염된 고양이였을 수도 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미국에서 중국으로 한 달, 조금 더 북쪽까지 또 한 달, 그렇다면 중국에서 한국으로 5달 동안 전파되지 않을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어쩌면, 그 고양이야 말로 한국의 좀비 사태의 시발점이 될 것이다. 그 고양이는 점포사이에 숨어서, 지나다니는 주부들의 발목 언저리를 조심스레 할퀼지도 모른다. 그 주부는 집에 와서 몸의 이상을 느끼고,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을, 그리고 야간자습을 마치고 돌아온 딸을 차례로 감염시킬 지도 모른다. 한 동네에서 일어난 일은 금방 도시 전체로 퍼질 것이고, 출동한 군인, 경찰도 차마 자신의 가족이 있을지 모르는 좀비들에게 마음껏 발포하지는 못할 것이다. 도시에서 전국으로, 전국에서 세계로 들불처럼 번져갈 것이다. 그때야 말로, 우리 인류는 하나가 될 것이다. 사태를 극복하거나, 멸망하거나, 둘 중 하나로.

 

집에 돌아왔을 때쯤 술로 달뜬 머리가 조금은 차가워져 있었다. 그때 본 고양이는 한국에서, 어쩌면 세계에서 머잖아 일어날 좀비사태의 징후 중 하나였을지도 몰랐다. 그것은 곧 지금껏 해온 노력이 무용한 것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어쩌면 나는 여태껏 마음 한 구석에, 혹시 내가 해오던 것이 전부 무용한 것은 아닐까 하는, 일말의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그리고 그 불안감을 떨치기 위해, 그렇게 열심히 대비에 열을 올렸는지도.

순간, 지금껏 나는 무엇을 기대하고 있었는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나는 단순히 좀비에게서 생존하고 싶었던 건지, 아니면 그저 종말해가는 세상을 혼자 바라보고 싶었던 건지를 말이다.

자꾸 떠지려는 눈을 억지로 눈을 감았다. 다음날 아침 일찍, 그해 마지막 자전거 라이딩이 있었기 때문이다. 11월 21일의 밤이었다.

 

2012년 12월 21일의 밤은 아주 조용한 밤이었다. 마치 세계적으로 약속이나 한 듯,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잠시 당황했지만, 곧 안심했다. 마야의 달력이었기 때문에, 날짜 변경선 문제로 한국에서는 22일이 멸망의 날이었기 때문이다.

2012년 12월 22일, 싸이의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 조회 수가 1억 건을 돌파했다. 그게 기억나는, 가장 뚜렷한 사건이었다. 일루미나티의 영향력은 무서웠다. 음모론자들의, 우리끼리의 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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