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안 해요
상태바
아무것도 안 해요
  • 박정환
  • 승인 2009.09.14 08:4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아무것도 안 해요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을 때,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이렇게 묻기 시작한다. ‘지금 뭐해?’ 돌이켜 보건데, 20대 시절 내 대답의 80%는 ‘아무것도 안 해요’였다. 휴강 때문에 시간이 남았을 때 수업 후 과방의 인조가죽 소파에 앉아 밍기적 거리면서, 집에 돌아와 책상 앞에 앉아서도, 자체 종강을 하고 혼자 여행을 떠나서도, 나는 대체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이유는 진짜 아무것도 할 게 없기 때문이기도 했고, 아무것도 하기 싫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왜 꼭 무언가를 해야 한단 말인가. 할 일도 없는데 찾아서까지 해야 한단 말인가. 일찍 일어나는 새는 먹이는 빨리 찾을지 몰라도 인생은 얼마나 피곤하겠는가. 그 시절 나의 좌우명이 ‘유유자적’과 ‘안빈낙도’였으니. 나는 3학년이 지나도록 학점관리를 하지 않았고 영어능력시험도 본 적이 없었다. 그래도 별 일 없이 잘 살았다.
문제는 졸업 이후였다. 6월에 모든 학기를 이수한 후, 9월이 되자 무엇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어머니가 활활 타오르는 눈빛으로 압박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왠지 본격 취직은 부담스러웠다. 그때 나는 등단 직후였고 계속 글을 쓸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청탁이 없었고, 글쓰기가 밥벌이가 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을 뿐이었다. 그날부터 아르바이트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일반 사무직 △중학교 교무실 보조 △사서 △과학보조교사 등 서울시 교육청 홈페이지와 인터넷벼룩시장 사이트에 하루 종일 달라붙어 있다가 난사하듯이 이력서를 투척했다. 나는 약 다섯 달간 오십 군데가 넘는 곳에 이메일이나 팩스를 보냈다. 서류를 통과한 것은 고등학교 한 군데 뿐이었다. 그날은 진눈깨비가 내렸고, 여배우 한명이 자살 했고, 나는 교감선생님 개인면담 이후 즉시 거절당했다. 다섯 달 동안 친척들이 가장 많이 한 질문은, ‘요새 무슨 일해?’였다. 나는 재학시절과 똑같이 대답했다. ‘아무것도 안 해요’
요즘은 상황이 달라져, 아무것도 안하는 시간을 만들려 노력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의 귀중함을 알기 때문이다. 20대의 말미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그때를 후회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왜냐하면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진실로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끊임없이 과거를 반추하며 나 자신에 대해 생각했고, 내가 바라는 글쓰기에 대해 생각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누군가에게 말하면 얼굴이 붉어질 생각들을, 밥이 되는 것도 아니고 당장 써먹을 데에도 없는 생각을, 꼬리에 꼬리를 물고 반복했다. 모든 것이 진지했다. 한없이 가벼웠고, 사고는 유연했으며, 고집불통이었다.
그것이 얼마나 가치 있고 귀중한 것인지, 나는 그 시간을 일부러 만들어야 하는 지금 깨닫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것만큼 생산적인 것은 없으니까.
                  
                                                                           동문칼럼 사진.JPG
                                                                                                 김유진(문창 00) 동문
                                                                                                                     소설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