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 꽃이 오른다 - 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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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 꽃이 오른다 - 2화
  • 이재희
  • 승인 2009.09.13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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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동네 계집들 중 가장 사내의 눈에 거슬리는 건 은지라는 과붓집 딸이었다. 고만고만한 촌동네 계집애들 중엔 유난히 눈과 입이 큼지막하고 눈가를 오므리며 웃는 모양이 화사하여 어디 있어도 눈에 띄는 인상이었다. 처녀애가 가슴이 크다고 동네에선 사내들 꼬이고 다니는 년이라 소문이 많았다. 사내 역시 은지가 눈에 보일 때마다 요사스러운 년… 하고 중얼거리며 침을 뱉었지만 자꾸만 흘끔흘끔 그 얼굴을 훔쳐보고 마는 것이었다. 가끔은 눈치 빠른 계집애 몇몇이 어째 그리 은지 얼굴만 쳐다보는 거냐며 놀려왔다. 계집들 자지러지는 웃음소리에 그는 주춤거리다 손가락이 없는 왼손이 헛돌아 미역을 두 줄로 널어놓은 나무 대를 쓰러트리기도 했다. 그럴 때면 입 안에서 말도 헛돌았다.

“보기는 무얼 봐! 누가 갈보 년을…….”

모래 먹은 미역들을 다시 주워 담는데 주렁주렁 매달린 바닷기가 덜 빠져 시커먼 미역줄기 사이로 은지의 독기 서린 표정이 보였다. 그는 습관적으로 눈썹을 찡그리며 몸을 돌렸다. 제 까짓 게 눈을 부라리면 어쩔 거야, 그는 혼잣말을 침 뱉듯이 내뱉으며 무어라 더 던져줄 말을 찾았지만 말이 짧아 몇 마디 욕설만 혼자 되뇌었다.

바닷가에 다녀 오는 날이면 사타구니 안쪽이 저릿한 것이 어둠을 더듬어 찾아오는 묘한 욕정에 잠을 이루기가 불편했다. 성한 오른 손을 바지춤 안에 넣고 있노라면 입을 커다랗게 벌리고 웃는 모습이나, 갈보라 욕한 저를 매섭게 노려보던 은지의 그 표정이 쉬지 않고 떠오르는 것이었다. 밤이 깊을수록 그 얼굴이 점차 선명하게 떠오르자, 머쓱해져서 허벅지를 벅벅 긁고는 바지 속에서 손을 꺼냈다. 잠이 영 오지 않을 모양이었다. 조용히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바람이 매서웠다. 틀림없이 바다가 일렁이고 있으리라. 검푸르게 일렁거리고 있을 밤바다를 생각하니 치가 떨렸다. 그러나 사내는 바닷가로 통하는 산길로 들어섰다. 이 촌동네는 밤이면 모두 죽은 것 마냥 조용했다. 익숙한 길에서 느껴지는 스산함에 몸을 움츠리고 걷는데 뜻밖의 인기척이 들었다. 허공에 대고 누구냐 외쳐보았지만 대답은 없었다. 한참 후에야 바스락 거리며 내려온 자그마한 그림자는 은지였다. 늘 반듯하게 드러나 있던 이마가 두려움에 일그러져 있었다. 은지 역시 사내를 알아 본 듯, 점차 표정이 인색하게 굳어갔다. 치마폭을 움켜쥐고 보자기를 뒤집어 쓴 채 산길을 내려오는 모양새는 소문이 죄 허튼 소리는 아닌 듯 보였다. 머리에 둔탁한 통증이 일었다.

“갈보, 갈보 맞구먼. 뭘 눈을 시퍼렇게 뜨고 달겨들어?”

바람이 찼다. 하지만 사내의 세게 쥔 오른 손에서는 땀이 배어 나왔다. 속에서 뜨끈하게 달구어지는 기운 때문이었다. 은지는 한동안 반응이 없더니, 성큼 걸어 내려와 그의 턱 바로 밑에 얼굴을 바싹 갖다 대었다.

“만날 내 가슴팍만 훔쳐보는 새끼가. 무얼?”

사내의 바지 속 쯤은 빤히 들여다보인다는 듯한 말투였다. 분노와 수치심이 범벅이 되어 머리에 열이 올랐다.

“뭐, 뭐여? 이 놈 저 놈 다 주물 댄 젖퉁이 내 무어 좋다고 본다고 지랄이여?”

어둠이 짙어 코앞에 있는 은지의 표정도 확실히 보이지 않았지만, 틀림없이 섬뜩할 만큼 독기 어린 표정을 짓고 있을 터였다.

“이 놈 저 놈 다 만졌대도 네 놈 한개 남은 병신 손으로는 어림도 없으니 퍼뜩 꺼지라!”

속에서 끓어오른 불덩이가 튀어나오려는 듯 목구멍이 뜨거웠다. 이미 온몸은 땀으로 젖어있었다. 참을 수 없는 ‘화’에 휩싸이는 그 순간, 사내는 깨달았다. 이 ‘화’가 아주 오래 되고 견고한 종류의 감정이라는 것을.

사내는 자신을 밀쳐내고 자리를 떠나려는 은지의 팔을 발작적으로 움켜잡았다. 그 팔이 생각보다 너무나 가늘어서 손에 얼마만큼의 힘이 실렸는지 스스로도 가늠할 수 없었다. 발악을 하는 은지를 질질 끌고 가 길이 나있지 않은 나무숲 사이로 던져버렸다. 욕설이 섞인 비명소리가 어두운 산길을 가득 메우며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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