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지 마, 그냥 건들거려도 좋아, 그게 청춘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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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지 마, 그냥 건들거려도 좋아, 그게 청춘이야
  • 최홍
  • 승인 2011.04.14 23: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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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도 모르는 것들> 죽지 마, 그냥 건들거려도 좋아, 그게 청춘이야

죽지 마, 그냥 건들거려도 좋아, 그게 청춘이야

소풍 가서 보여줄게
그냥 건들거려도 좋아
네가 좋아

상쾌하지
미친 듯이 창문들이 열려 있는 건물이야
계단이 공중에서 끊어지지
건물이 웃지
네가 좋아
포르르 새똥이 자주 떨어지지
자주 남자애들이 싸우러 오지
불을 피운 자국이 있지
2층이 없지
자의식이 없지
홀에 우리는 보자기를 깔고

음식 냄새를 풍길 거야
소풍 가서 보여줄게
건물이 웃었어

뒷문으로 나가볼래?
나랑 함께 없어져볼래?
음악처럼
-김행숙, 「미완성 교향곡」 전문

20대의 한 시절을 치열하게 통과하는 청춘들의 이야기가 감동적으로 그려진 만화 <허니와 클로버>는 내가 곁에 두고 자주 펼쳐보는 만화다. 2006년도에 ‘아오이 유우’, ‘사쿠라이 쇼’ 주연으로 영화화가 되어, 이들을 사모하는 많은 팬들을 스크린 앞으로 끌어모은 적도 있지만(최근에는 대만판 드라마로도 제작되었다) 내가 보기에는 드라마보다는 영화가, 영화보다는 원작 만화가, 원작 만화보다는 애니가 훨씬 완성도가 높은 것 같다. 드라마나 영화는 미대생들의 사랑 이야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지만 원작은 좀 다르다.
엇갈리는 사랑도 한 줄기이지만 그것만큼이나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며 다뤄지는 것이 바로 ‘자아 찾기’라는 주제. 미대생들이 주인공이다보니 과연 내가 그림을 그려야 할까, 그림(꿈)이란 나에게 무엇인가 등 스스로의 내면과 진지하게 대면하여 답을 찾으려는 청춘들의 치열한 고민과 방황이 매우 설득력있게 전개되기 때문이다. 이 만화에는 각기 다른 매력을 지닌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현실적인 캐릭터가 바로 ‘다케모토(사쿠라이 쇼)'이다. 뛰어난 예술적 재능을 지닌 하구미(아오이 유우)를 좋아하지만 역시 천재적인 재능을 지닌 모리다 선배에게 하구미를 양보할 수밖에 없는 상황. 다케모토는 순정파이기는 하지만 하구미나 모리다 선배와 어울리기에는 스스로가 그저그런 평범한 학생이며 심지어는 진정 자신이 이루고 싶은 꿈이 무엇인지도 아직 찾지 못한 데서 오는 자괴감과 열등감에 시달리는 캐릭터이다. 그러나 어디에도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지 못하던 이 소심남은 어느 날 갑작스런 여행을 떠난다. 아줌마용 자전거를 타고 밖에 나왔다가 ‘이렇게 그냥 달리면 내가 과연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하는 충동적인 생각으로 여행을 시작한 것이다. 돈은 금방 떨어지고 우연히 만난 사람들의 도움으로 여행을 지속하던 그는 자신의 여행이 결국 ‘자아찾기 여행'이었음을 자각하게 된다. 미래는 보이지 않는데 가차없이 흐르는 날들이 그렇게도 두려웠던 것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답 따위는 없고, 자신이 정말 직성이 풀릴 때까지 열심히 해보았는가 하는 것만이 남는다는 것임을 깨달으면서 텅 빈 자신을 치유하고 돌아오게 된다. 이 과정의 이야기가 너무나도 진지하게, 감성적으로 그려져 있어서 살다가 까닭없이(사실은 까닭이 있어서) 지칠 때, 나는 이 부분을 꼭 찾아서 보고는 한다. 그러면 정말 다시 살아갈 힘이 생긴다.
김행숙의 시는 <허니와 클로버>보다는 훨씬 밝다. 침 좀 뱉고, 다리 좀 떠는 여고생의 한 시절을 들여다보는 것 같다. 그런데 전혀 죄의식이 없고, 투명하고, 즐겁다. 학교에서 단체로 봄소풍을 갔지만, 건들거리는 자신의 남자친구와 빠져나와서 자신들만의 아지트로 가서, 도시락을 펼쳐놓고, 둘이서만 은밀하게 속삭여보자는 유혹이 담겨있는 쪽지. 마치 내가 그런 쪽지를 받은 것 같다. 간신히 형체는 남아 있지만 사방으로 개방되어 있는 밀회의 공간이 연상되면서, 그곳에 둘이서만 있으면 정말 상쾌하고, “네”가 좋을 것 같고, 그대로 사라져버릴 것만 같다. 시를 다 읽고나면 ‘미완성 교향곡'이라는 제목은 너무나도 적절하게 이 공간과, 우리 청춘과, 미래의 가능성에 숨통을 틔워주는 훌륭한 제목으로 변한다. 그래서 이 시는 미완성인 채로 우리를 더욱 자유롭게 풀어주는 것이다.
지금 우리 청년들이 아프다. ‘자신이 찾아낸 진정한 꿈'이 아니라 ’계량화된 업적'과 ‘철학 없는 경쟁 그 자체'를 위해 젊은이들을 쥐어짜다보니 꿈을 찾아야 할 대학에서, 가장 행복해야 할 청춘들이 죽어가고 있다. ‘자아찾기 여행'은커녕 한나절 ‘소풍'을 갈 여유도 없이 고립되어 가고 있다. 결국 이 아픔도 혼자서 해결해야 한단 말인가. ‘청춘은 그냥 건들거려도 좋아'라고 말해줄 수 있는 어른들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원고매수: 12매
필자: 박상수 시인ㆍ문학평론가ㆍ문예창작학과 강사
정리: 최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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