맙소사, 내가 정말 바다로 갔을 것 같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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맙소사, 내가 정말 바다로 갔을 것 같니?
  • 최홍
  • 승인 2011.03.27 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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맙소사, 내가 정말 바다로 갔을 것 같니?

<시도 모르는 것들>

맙소사, 내가 정말 바다로 갔을 것 같니?

그는 나를 달콤하게 그려놓았다
뜨거운 아스팔트에 떨어진 아이스크림
나는 녹기 시작하지만 아직
누구의 부드러운 혀끝에도 닿지 못했다
그는 늘 나 때문에 슬퍼한다
모래사막에 나를 그려놓고 나서
자신이 그린 것이 물고기였음을 기억한다
사막을 지나는 바람을 불러다
그는 나를 지워준다
그는 정말로 낙관주의자다
내가 바다로 갔다고 믿는다

                  -진은영, 「멜랑콜리아」전문

한때 인터넷에는 일명 <나루토 아저씨> 동영상이 인기를 끌었던 적이 있다. 뭔가 어수룩하면서도 지친 표정의 30대 사나이가 등장, 쓸쓸하게 웃으며 “내가 요즘 나루토를 보고 있는데, 느낀 게, 열심히 안 하면 안 될 것 같아. 근데 우린 열심히 안 하잖아. 우린 안 될 거야 아마”라고 말하는 짧은 대사가 전부였다. 그런데 이 단순한 대사에 담겨있는 자학과 달관의 페이소스가 각종 인터넷 게시판을 뜨겁게 달구어놓았다. 나 역시 궁금증을 참지 못하여 여기저기 뒤졌고 결국 이 동영상이 독립다큐멘터리 <반드시 크게 들을 것>(2010년 개봉)의 일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처음서부터 끝까지 이건 뭐, 정말로 재미있었다. 다큐멘터리가 이렇게 재미있어도 되나? 록의 불모지, 인천의 한 모텔촌에 겁 없이 문을 연 라이브 카페 겸 인디레이블 ‘루비살롱’. 여기에 소속된 유일한 밴드 <갤럭시 익스프레스>와 <타바코쥬스>. 이들 세 꼭짓점을 중심으로 다큐는 ‘빵빵하고’ 활력 있게 펼쳐진다. <갤럭시 익스프레스>는 곧 라이브 실력을 인정받아 홍대 인디씬의 최고 밴드가 되지만 <타바코쥬스>는 ‘막장 밴드’, ‘공연 뒷풀이 장의 쓰나미’라는 별칭을 얻으며 몰락을 거듭한다. 나루토 아저씨는 바로 이 <타바코 쥬스>의 보컬 권기욱이었던 것. 다큐멘터리 내내 술 먹고 ‘진상’ 피우고, 싸우고, 다시 뭉치고, 공연 펑크내기 일쑤인 <타바코쥬스>를 보다보면 ‘쟤들 진짜 어쩌려고 저래!’하는 마음이 절로 든다. 결국 이 밴드도 음악생활 10년 만에 첫 앨범을 내고 부활의 날갯짓을 펼친다, 는 게 대강의 줄거리이지만 내가 관심이 갔던 것은 영화가 개봉되고 나서 <나루토 아저씨>가 한동안 사람들을 피해 다녔다는 사실이다. 자기 인생에서 최악의 과도기가 거기 담겨 있고, 이제는 열심히 살고 있는데, 사람들이 여전히 “쟤들 계속 찌질이로 살겠지?”하고 기대(?)하는 것이 부담스러웠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자꾸만 자기들을 ‘개그 밴드’로 보려는 것이 싫다는 말. 제2의 <크라잉 넛>을 꿈꾸는 이들에게 영화의 성공이 오히려 ‘오해의 감옥’으로 되돌아온 셈이다.
참으로 오랜만에 한국시단에 이국적 사물과 그것들이 빚어내는 은유의 아름다움을 선사한 진은영의 두 번째 시집 <우리는 매일매일> (문지, 2008)에도 ‘오해의 감옥’이 빚어내는 우울을 노래한 시가 한 편 들어 있다. ‘멜랑콜리아(우울)’라는 제목의 인용시가 바로 그것이다. 사실 이 시는 연애시이다. 연애를 시작할 때, 우리는 얼마나 빛나는가? ‘나’는 ‘당신’의 모든 것을 사랑한다. 당신의 살짝 휘어진 새끼손가락, 웃을 때 드러나는 덧니, 파는 모두 골라내고 먹는 식성 하나까지 모두다 나의 감탄을 자아내는 찬미의 대상으로 변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까? ‘환상’속에서 너를 보기 때문이다. ‘진짜 너’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나의 환상으로 만든 너’를 가져다놓고 사랑하기 때문이다. ‘나의 마음에 드는 일부분’을 전체로 확대해서 ‘그게 바로 너’라고 믿는 것이다. 이 말도 안 되는 비약(환상)이 고통으로 되돌아오는 순간이 있다. 인용시의 시적 화자가 그렇다. 왜 그는 나를 달콤하게만 보는 걸까? 사실 난 아주 쓰기도 한데. 하지만 자신만의 환상에 빠져 있는 그 사람은 심지어 자기 멋대로 나를 모래사막의 물고기로 만들어버리기도 한다. 사막의 오아시스와 같은 존재로 만들어 숭배하는 것이다. 나는 고통스러운데. 힘든데. 너의 기대가 나를 힘들게 해, 라고 말하자 그는 슬퍼하며, 너무나 미안해하며 나를 바람에 태워 보낸다. 나는 간신히 숨을 돌리지만 오해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시의 마지막을 보라. “그는 정말로 낙관주의자다/ 내가 바다로 갔다고 믿는다”니. 그는 끝까지 자신이 ‘나’를 위해 ‘희생’을 하였고 자신으로 인해 ‘내’가 ‘바다와 같은 자유’를 얻었다고 믿는 것이다. 맙소사, 내가 정말 바다로 갔을 것 같니? 넌 누구를 사랑한 거니? ‘나’는 그렇게 우울하게 되묻지만 우리는 끝내 우리 사랑의 폭력성을 깨닫지 못하고 떠난 그/녀를 그리워하는 것이다.

필자: 박상수 시인ㆍ문학평론가ㆍ문예창작학과 강사
원고매수: 11.6매
정리: 최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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