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몽迷夢을 벗어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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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몽迷夢을 벗어나며
  • 최홍
  • 승인 2011.03.15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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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정거장> 미몽迷夢을 벗어나며

“당신은 다른 사람들이 당신을 좋아하고 칭찬하기를 바라지만, 자신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편입니다. 당신은 어느 정도 성격적 결함을 가지고 있지만 대체로 그것들을 상쇄할 능력이 있습니다. 당신에게는 아직 활용하지 않은 많은 잠재력이 있습니다. 당신은 절제되고 자기 통제력이 있어 보이지만, 속으로는 걱정과 불안이 많은 편입니다. 이따금 외향적이고 사교적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내성적이고 경계심이 많은 편입니다.”
당신은 어떤가? 위 글과 당신의 성격이 비슷하다고 생각하는가? 아마도 그럴 것이다. 그럼 위의 문장들을 이렇게 고치는 것은 어떤가?
“당신은 자신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편이지만, 다른 사람들이 당신을 좋아하고 칭찬하기를 바랍니다. 당신은 당신 성격의 문제들을 충분히 극복할 능력이 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성격적 결함을 가지고 있다고 여기는 편입니다. 당신에게는 아직 활용하지 않은 많은 잠재력이 있습니다. 속으로는 걱정과 불안이 많다고 생각하겠지만, 실은 절제되고 자기 통제력이 있는 사람입니다. 이따금 내성적이고 경계심이 많기도 하지만, 사실은 외향적이고 사교적이기도 한 편입니다.”
이 글 역시 공감을 일으키는 무언가가 있다. 독자들은 눈치 챘겠지만 바로 위의 글은 처음의 글에 있는 문장들의 앞뒤를 바꾸어 놓은 것에 불과하다. 그래도 이런 글을 보게 되면 당신은 마음의 위안을 얻으며 ‘심히’ 공감을 하게 된다. 사실, 이런 글을 보게 되어 마음이 편해지고 생활의 활력을 얻는다면 물론 그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이제 약간의 대가, 말하자면 당신 마음에 쏙 드는 한마디에 가격을 지불한다면? 뭐, 그 또한 과하지 않다면 기분 좋게 얼마간의 금전을 지불할 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것은 사실 ‘포러Forer’ 효과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석할 수 있는 말을 자신에게 꼭 들어맞는다고 생각하게 되는, 막연한 일반론의 과잉해석을 일컫는 용어이다. 사이비 점쟁이들의 주된 무기인 것이다.
우리는 종종 미몽迷夢에 빠진다. ‘올해는 이 지긋지긋한 내 불운이 끝날 것인가?’ ‘이런 기막힌 우연이라니, 그는 바로 나의 운명의 상대가 아닐까?’ 이런 종류의 상념들을 쉴 새 없이 마음에 품고 다닌다. 같은 강의를 듣고 있는 어떤 여학생의 생일이 알고 보니 나와 정확히 같은 날이라면, 왠지 그녀와 나는 알 수 없는 인연의 끈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아 자꾸만 그녀를 뒤돌아보게 된다. 하지만 23명만 있다면 그 중 둘의 생일이 같은 확률은 50%이다. 믿겨지지 않는다고? 23명이 모두 다른 생일일 경우는 몇 가지나 될까? 일 년은 365일이니까 한 사람이 생일을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당연히 365가지이다. 그리고 그 다음은 이미 하루가 빠져있으니까 364가지, 그리고 그 다음은 363가지, 그렇다면 모두 생일이 다를 가짓수는 365×364×……×343이다. 편의상 이 수를 A라고 하자. 23명이 생일을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을 B라고 한다면 모두 365를 23번 곱한 것이니까 모두 생일이 다를 확률은 B/A이고 이를 계산기로 계산해 보면 약 0.49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두 사람이 생일이 같을 확률은 50%를 약간 넘는다! 5000원을 딸 수 있는 로또의 당첨 확률이 약 2%임을 생각한다면 사실 엄청나게 높은 확률이다.
하지만 우린 거의 이런 생각들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운명이라 생각했던 인연과 맺어지지 못해 비관하고, 얼토당토않은 점쟁이의 말을 맹신하고, 때로는 극히 희박한 확률의 카지노 게임에 재산을 탕진하기도 한다. 때로는 심지어 이렇게 ‘따지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재수 없어’하고 비난하기도 한다. 그러나 조금만 더 따져보고 조금만 끈질기게 사고해 본다면 이런 말도 되지 않는 상황을 피할 수 있다. 수학이 어렵다고? 보지 않았는가? 간단한 산술만으로도 납득할 수 있는 이해를 할 수가 있다. 약간의 노력을 기울이는 수고를 귀찮아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더 없이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 ‘귀차니즘’은 모든 맹신, 비이성, 불합리의 씨앗이다. 그것이 개인적인 것이라면 그 만의 문제로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불행히도 이런 종류의 것들은 가족과, 사회에 심각한 피해를 준다. 그야말로 칼 세이건의 말처럼 이것은 ‘악령’이다. 그러나 이런 공적인 문제를 차치하더라도 개인의 행복한 삶을 위해 합리와 이성은 횃불을 든 파수꾼이 된다. 건전한 회의주의, 이것은 바로 과학에의 출발점이다. 조금 과장해서 이야기하자면 진리에 이르는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다. 수많은 교과서의 공식들을 외워 알고 있다고 해서 ‘과학적’이 되는 것이 아니다. 항상 생각하고 따져보기를 귀찮아하지 말자. 그것이 바로 우리 주변 도처에 널려있는 미몽迷夢에서 깨어나는 길이다.

원고매수: 11.3매
필자: 김창모 건국대학교 물리학과 교수
정리: 최홍 기자

916호 과학정거장.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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