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 전, 아직도 잊지 못하는 역사적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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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 전, 아직도 잊지 못하는 역사적 비극
  • 최홍
  • 승인 2010.10.17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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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브러진 시체들, 총탄소리가 생생히 기억돼

아이콘)이산가족을 만나다
꼭지2. 60년 전, 아직도 잊지 못하는 역사적 비극
널브러진 시체들, 총탄소리가 생생히 기억돼

서울특별시 용산구 후암동에 사는 우연제 씨(83, 이하 우 씨)는 “우리 가족은 역사에 의해 풍비박산이 났다”며 “가족을 보지 못하는 것이 원통하다”고 말했다. 이번 31일에 열리는 이산가족 상봉 명단에 오르지 못한 그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그는 “죽기 전에 이북에 있는 가족을 한 번만이라도 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확히 60년 전이었다. 우 씨는 함경남도 삼수군 용천리에서 3남 3녀 중 맏딸로 태어났다. 일본이 물러가고 해방을 맞으니 소련이 들어왔다. 당시 우 씨는 18살이었다. 그리고 19살 때, 당시 28살인 남편과 결혼하게 됐다. 남편은 자동차 공장에서 근무하며 돈을 벌고 있었다.
남편과 결혼 한 후 얼마 안 돼 한국전쟁이 터졌다. 어느 날 집 앞에 우리나라의 육군 비행기가 낮게 허공을 돌고 있었다. 우 씨는 “당시 그게 무슨 뜻인지 몰라 그냥 잠을 잤다”며 “나중에서야 군국이 후퇴한다는 뜻이란 것을 알았다”고 말했다. 그러던 밤 12시쯤 윗집에 살던 남편의 형님이 “후퇴했다! 우리도 국군을 따라 가야 한다”고 문을 열면서 외쳤다. 우 씨는 짐을 머리에 이고, 남편은 딸을 업어 떠날 채비를 했다. 시내에 나갔더니 큰 아버지는 이미 후퇴 중인 국군을 따라 떠났다. 버려진 큰 어머니와 아이들은 집에 덩그러니 놓여졌다. 설상가상으로 우 씨의 작은 시아버지는 북군에 징병됐다. 많은 여인들이 남편을 따라 남한으로 간다고 했으나, 남편들은 “전쟁이 끝나면 곧 올라올 건데 뭐 때문에 다 버리고 따라오냐, 여기서 기다려라”라고 했다. 그래도 우 씨는 후퇴하는 육군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갔다. 100리쯤 걸었을 때는 우 씨의 발에 진물이 나기도 했다.
눈이 유난히 많이 내리던 날이었다. 갑산에 도착했을 때, 북한군에게 죽임을 당한 피란민들의 송장들이 곳곳에 널브러져 있었다. 우 씨는 “많은 사람들이 울면서 자기 가족의 시체를 찾았다”며 “소달구지에 가족의 시체를 싣고 있었다”고 전했다. 그러던 중 그는 중국군이 북에서 내려오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널브러진 시체를 보니 우 씨는 마음이 더 다급해졌다. 3.8선에 도착을 때 쯤, 그들은 후퇴하는 국군에 의해 저지당했다. 피란민 속에 공산군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우 씨와 가족들은 할 수 없이 함흥 옆에 있는 흥남으로 가 배를 타기로 했다. 부두역에 와보니 많은 피란민들이 미국의 배를 타려고 대기하고 있었다. 수많은 짐칸에 타려고 모두 아우성이었다. 미국인도 많았다. 그러다 갑자기 배를 타기 위해 대기하던 중 소란한 소리가 났다. 그는 “미국인이 한국여자를 강탈하려고 했었다”며 “남편처럼 보이는 사람은 여성을 보호하다가 미국인의 총에 맞아 죽었다”고 말했다. 우 씨는 남편과 함께 얼굴을 가리고 짐칸에 몸을 실었다. 배가 운항되고 며칠이 지났다. 부산역에 도착했다. 국군이 우리 몸을 수색했다. 그들은 거제도로 옮겨져 일을 하며 근근이 살게 됐다.
지금 우 씨의 자녀들을 모두 성공해서 미국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그는 “이북에 있는 가족이 보고 싶었지만, 당시엔 먹고 살기 바빠 연락을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우 씨는 “며칠 전 중국을 통해 이북에 있는 가족에게 연락이 닿았다”며 “하지만 모두 굶어 죽고, 여동생 두 명만 남았다”고 말했다. 그는 아직도 이북에 있는 가족을 만나기 위해 다방면에서 알아보고 있다고 한다. 더불어 우 씨는 현재 대학생들에게 “열심히 공부하여 분단의 아픔을 세계에 알리고, 통일을 이뤄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원고매수: 8.5매
필자: 최홍 기자 g2430@mju.ac.kr

꼭지2.JPG
△우연제 씨는 “이북에 남은 여동생 2명이 너무 보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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