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의 심리학
상태바
신뢰의 심리학
  • 박세희
  • 승인 2010.10.11 08:2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알고심리

타블로가 미국에 있는 대학교를 진짜로 졸업했는지에 대한 공방이 지난 주 내내 대한민국 입방아계를 흔들고 지나갔다. 또, 한 달 전쯤에는 총리와 장관 청문회에서 나온 군면제 의혹들에 대한 쑥덕공론이 있었다. 몇 달 전에는 천안함 사건과 관련된 의혹과 해명으로 한동안 인터넷과 언론이 뜨거웠고 아직도 그 열기가 남아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사건들의 공통점은 사회적 ‘신뢰’의 정도에 대한 판단이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이다. 요즘 상황을 요약하자면, ‘나를 믿어라!’라고 주장하는 쪽과 다른 한쪽에서 ‘흥, 믿을게 따로 있지!’라는 기세대결이 지속되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신뢰의 사전적 의미는 ‘굳게 믿고 의지함’이라고 나와 있다. 그런데 심리학에서는 좀 더 세부적으로 정의된다. 일본의 야마기시山岸俊男라는 학자에 의하면 신뢰는 ‘사회적 불확실성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상대에 대한 믿음 때문에 상대가 자신에게 선한 행동을 하리라 기대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간단히 말하면, ‘상대가 나에게 손해를 끼치지 않을 것’으로 기대하는 것이다. 그런데 신뢰의 문제는 단순한 입방아 차원을 넘어 중요한 사회적 자본을 구성하는 요소라는 점에서 좀 심각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여기서 사회적 자본이란 단순히 경제적 자본으로 해결될 수 없는 또 다른 생산의 중요한 수단을 말한다.

흔히 현대사회를 ‘신용사회’라고 한다. 이 사회에서는 신용카드로 물건을 사는데, 이런 행위는 나중에 꼭 갚을 것이라는 믿음이 없다면 불가능하다. 꼭 경제적인 것 이외에도 사회적 영역에서 신뢰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주변 사람들이 나를 해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야 원활한 사회생활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차례를 기다리면 내 몫이 분명히 있다는 믿음이 있어야 여유와 관용도 생긴다. 신뢰가 없는 사회는 주변 사람들을 경계하며 살아야 하고, 이런 것들이 사회적 비용으로 지출되며, 생산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 우리의 에너지를 소진시킨다. 사실 ‘빨리빨리’가 전 국민의 언어 습관화가 된 것도 훗날의 결과를 신뢰할 수 없었던 지난 아픈 역사의 흉터에서 나온 집단무의식일지도 모른다.

신뢰와 관련된 심리학적 효과 중 ‘플라시보 효과Placebo effect’라는 것이 있다. ‘플라시보’란 ‘가짜 약’을 뜻한다. 심리학 이론 중 그래도 대중적으로 알려진 이 효과를 간략히 설명하면 이렇다. 사실은 비타민인데, 이것을 진통제라고 말하고 투약을 하면 정말로 진통효과가 나타난다. 이처럼 우리의 믿음은 신경 생리적 구조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이것과 정반대의 효과다. 이것을 ‘노시보 효과Nocebo Effect’라고 한다. 정말 효과가 있는 약을 주는데도, 환자가 약의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믿으면 정말로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 대표적인 예가 정상적인 우유를 먹게 하고, 나중에 그 우유가 상한 우유였다는 정보를 주면 정말로 배탈이 난다. 우리 속담에 ‘콩으로 메주를 쒀도 믿지 않는다’는 말은 바로 이런 ‘노시보 효과’를 두고 하는 말이리라.

이런 ‘노시보 효과’는 일단 신뢰가 무너지면 왜 다시 회복하기 힘든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다. 최근 타블로 사건은 실상 타블로의 문제라기보다는 사회 전반적인 신뢰의 문제가 드러난 단편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상황에서 진짜 무엇을 보여주더라도 그것을 믿지 않는 차원을 넘어, 반대의 효과를 일으키는 ‘노시보 효과’가 사회전반에 나타나고 있지 않는지 정말 걱정된다. 그래서 그런가? 요즘 ‘공정사회’가 화두로 등장하였다. 믿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자는 것이다. ‘누가 이런 말에 토를 달겠나’ 생각하겠지만 정작 이 말을 주장하신 높은 분이 신뢰와는 조금 거리를 두고(?) 사셨던 분이라 충분한 설득력을 얻고 있지 못하다. 전형적인 사회적 ‘노시보 현상’이다!

신뢰를 높이거나 회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여기에 대한 응급처방은 내가 알고 있는 한 없다. 즉 신뢰라는 것은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다. 신뢰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서 얻어지는 것이다. 책 <어린왕자>에서 여우가 신뢰관계와 관련하여 이런 말을 한다. ‘아주 참을성이 많아야 해. 처음에는 좀 떨어져있어. 내가 곁눈으로 너를 볼 테니 너는 아무 말도 하지 마. 말이란 오해의 근원이니까. 그러다가 매일 조금씩 더 가까이 앉는 거야.’ 말이 쉽지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의심’이 풍부한 나는 본능적으로 느낀다. 그래서 그런가? 얻기 어렵고, 그래서 귀하기 때문에 ‘신뢰’가 더 가치를 발휘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 인문캠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거북골로 34 (명지대학교) 학생회관 2층
  • 자연캠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명지로 116 학생회관 2층
  • 대표전화 : 02-300-1750~1(인문캠) 031-330-6111(자연캠)
  • 팩스 : 02-300-1752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승환
  • 제호 : 명대신문
  • 창간일 : 1954년 11월
  • 발행인 : 유병진
  • 편집인 : 송재일
  • 편집장 : 한지유(정외 21)
  • 디자인·인쇄 : 중앙일보M&P
  • - 명대신문의 모든 콘텐츠(영상, 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명대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jupress@hanmail.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