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지 않는 사회, 조장하는 국가 〈112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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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지 않는 사회, 조장하는 국가 〈1126호〉
  • 김다은 사회문화부장
  • 승인 2024.03.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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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율 하락에도 줄삭감되는 독서 예산

‘국민 독서실태 조사’(이하 조사)는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에서 2년마다 시행하는 국내 유일의 종합적 독서지표 조사로, 국민들의 독서 환경과 독서실태 변화를 파악하고 독서 진흥 정책을 수립하기 위해 실시된다. 1993년 처음 ‘전국민독서실태조사’를 추진한 이래로 표본의 크기를 점차 확대해 가며 오늘날까지 조사해 오고 있다.

가장 최근 발표된 2021년 조사 결과 기준, 만 19세 이상 성인 중 1년간 △교과서 △학습참고서 △수험서를 제외한 일반도서를 한 권 이상 읽은 ‘성인 연간 종합 독서율’(이하 독서율)은 47.5%로 나타났다. △종이책 △전자책 △오디오북 등 형태를 가리지 않고 한 가지 이상을 읽거나 들은 비율을 조사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결과는 대한민국 성인의 절반 이상이 1년에 책을 한 권도 채 접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런 결과에도 문체부는 2024년 예산안에서 △도서관 △출판 △서점 분야의 예산을 대폭 삭감했다. 이에 본지는 독서율 하락과 국가 예산 사이의 관계를 살펴보고, 삭감된 독서 관련 예산이 국민의 의식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가늠해 보고자 한다. 


읽지 않는 사회의 시작은

독서율이 50% 이하로 떨어진 것은 갑작스러운 현상이 아니다. 과거 문체부가 발표한 동일한 조사의 독서율은 △72.2%(2013년) △67.4%(2015년) △62.3%(2017년) △55.7%(2019년) △47.5%(2021년)로 꾸준히 하향세를 보였다. 또한, 조사는 독서율뿐만 아니라 책 읽기를 어렵게 하는 요인인 ‘독서 장애 요인’을 함께 물었는데, 성인의 경우 △일 때문에 시간이 없어서(26.5%) △책 이외의 매체/콘텐츠 이용(26.2%) △책 읽는 습관이 들지 않아서(9.7%) 등의 이유로 독서를 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래프는 성인의 연간 종합 독서율 추이를 나타낸 것이다.
▲그래프는 성인의 연간 종합 독서율 추이를 나타낸 것이다.

우리 대학 도서관장인 문헌정보학과 김영석 교수(이하 김 교수)는 “OECD 국가 대비 긴 노동시간과 빠르게 발전한 IT 기술도 독서율 하락에 영향을 준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힌 동시에, “그러나 현재 대부분의 성인이 독서에 대한 훈련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다. 독서는 공공도서관을 포함한 ‘독서 인프라’ 구축을 통해 청소년기부터 꾸준히 습관화하는 것이 중요한데, 비교적 최근에 시작된 공공도서관의 발전이 낮은 독서율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추정된다”고 미비한 독서 인프라와 독서율 하락의 관계를 설명했다.

조사의 책임 연구자인 책과사회연구소의 백원근 대표(이하 백 대표)는 독서율 하락 원인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스마트폰, 유튜브 등 뉴미디어 이용이나 공부, 일 때문에 시간이 없어서’를 독서 장애 요인으로 꼽지만, 이는 표면적인 이유에 불과하다. 독서율이 하락한 것은 국민들이 삶의 여유가 없고 행복지수가 낮으며, 책 읽기의 즐거움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고 독서 습관이 없기 때문이다”라고 책과 접하고 재미를 알도록 하는 기회를 만드는 사회의 역할을 강조했다.


독서 인프라의 주축, 도서관의 위기

독서 인프라가 독서율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만큼, 도서관을 위시한 인프라 구축은 현재 우리 사회의 중요한 과제이다. 「도서관법」 제4조는 공공도서관을 “공중의 정보이용 · 독서활동 · 문화활동 및 평생학습을 주된 목적으로 하는 도서관”이라고 정의한다. 국민 누구나 언제든 책을 접하고 독서 습관을 형성하도록 돕는 것이 공공도서관의 목적이라는 것이다. 특히 공공도서관은 금전적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누릴 수 있는 대표적인 문화 기관이라는 점에서 독서 인프라의 핵심을 차지한다.

그러나 그 목적과 달리 오늘날 도서관 운영에 필요한 예산이 충분히 지원되지 못하는 상황이다. 몇몇 지자체의 작은도서관은 예산과 보조금이 삭감돼 실질적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작은도서관은 「작은도서관 진흥법」 제1조에 따라 “국민의 지식정보 접근성을 높이고 생활 친화적 도서관 문화의 향상”을 목적으로 운영되는, 시설과 자료 규모가 상대적으로 협소한 도서관이다. 작은도서관은 공공도서관에 비해 접근이 용이하고 생활 친화적인 성격의 문화공간으로, 지역 공동체 형성에 기여한다. 그러나 대구시는 지난해 예산에서 작은도서관 지원금을 전액 삭감했고, 고양시는 작은도서관의 보조금을 10분의 1로 축소했다. 서울시 또한 작은도서관 예산을 전액 삭감했다가 시민사회의 반발이 일자, 추경에 뒤늦게 지원 예산을 편성했다.

이뿐만 아니라 김 교수는 “작년부터 공공도서관을 지을 때 건립 타당성 조사를 실시하기 시작했고, 이는 곧 도서관에 대한 국가의 재정 지원이 엄격해졌다고 볼 수 있다”며, “예산 삭감 및 재정 지원에 대한 제한은 독서율에 단기적인 영향을 주지 않더라도 장기적으로는 분명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분석된다”고 설명했다.

 

책과 가까워질 기회가 사라진다

하지만 예산 삭감은 작은 도서관의 운영비에만 해당하는 문제가 아니다. 지난해 8월 발표된 2024년 문체부 예산안 기준, 기존에는 매년 약 60억 원가량을 투입해 운영하던 ‘국민독서문화증진 지원’ 사업 예산이 전액 삭감됐다. 예산이 축소된 것이아니라 예산 코드(1433-308) 자체가 사라져, 사실상 지원 사업이 통째로 폐지됨을 밝힌 것이다.

해당 사업 예산은 그간 공공도서관과 연계하여 진행하는 △독서동아리 활동 △북스타트 사업 △책의 해 사업 등을 지원하는 데 사용됐다. ‘북스타트 사업’은 지자체 도서관, 주민센터 등과 협력해 정기 예방접종 시기의 아이들에게 그림책이 든 가방을 선물하는 사업이다. 현재 약 72%의 지자체에서 300여 개의 도서관이 실시하고 있으며 취학 전 아동들뿐만 아니라 초등, 청소년 등까지 지원 대상을 확대해 독서의 습관화와 평등한 문화적 기회 제공을 목표로 한다. ‘책의 해’ 사업은 △도서관 △서점 △출판 등 다양한 분야의 민간 단체와 문체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함께 진행하는 사업으로 1993년 처음 시작한 이래 독서문화 확산을 목표로 운영돼 왔다.

두 사업 모두 다양한 세대를 대상으로 독서 경험을 제공하고 궁극적으로는 독서를 습관으로 만든다는 목적을 가진다. 실제로 책의 해 사업은 “일회성의 독서 캠페인 사업이라기보다는 책 생태계의 다양성 제고와 지속가능성을 추동하는 장기 전략형 사업”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로선 사업을 지원하던 예산 항목 자체가 사라져 전적으로 민간에 의존해야 하고, 따라서 지속적인 운영 여부마저 불확실한 상황이다. 이에 책읽는사회문화재단, 책과사회연구소 등의 단체들은 “국민 누구나 책을 가까이하고 향유하는 독서 친화적인 사회를 만들기 위해 정부 독서 진흥 정책이 더욱 강화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2024년도 독서 예산을 전폐에 가깝게 삭감한 처사는 부당하다”라며 국민독서문화증진 지원 예산을 복원하고 책 읽는 사회 만들기에 나설 것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책을 만들고 파는 이들이 맞은 위기

작가, 서점을 포함한 출판계 또한 우리 사회를 독서 친화적인 사회와 멀어지게 하는 예산 삭감을 피할 수 없었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주도하던 ‘우수출판콘텐츠 제작지원’ 사업과 ‘중소출판사 출판콘텐츠 창작지원’ 사업은 각각 13억 원, 7억 원 규모의 지원 사업이었으나 관련 예산이 올해 전액 삭감됐다.

▲표는 출판 및 서점 분야에서 삭감된 예산 항목을 나타낸 것이다.
▲표는 출판 및 서점 분야에서 삭감된 예산 항목을 나타낸 것이다.

그간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은 ‘세종도서 선정 · 구입 지원’ 사업을 통해 “우수 출판콘텐츠 제작 활성화”와 “책 읽는 문화 확산 기여”를 목적으로 학술, 교양 두 부문에서 도합 940종의 우수도서를 선정해 도서관 및 사회복지시설 등에 보급했다. 그러나 이는 올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문학나눔 도서보급’ 사업과 통합되면서 예산 규모가 지난해 대비 25억 원 가량 축소됐다. 이에 문체부는 비슷한 성격의 두 사업을 통합하여 중복 예산을 제거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지난해 문체부 박보균 전 장관은 세종도서 선정에 “사업의 핵심인 심사, 평가, 선정 및 심사위원 구성, 관리에 있어 객관성과 공정성 등 근본적인 문제점과 운영체계, 실태의 부실함을 확인했다”며 구조적 개편을 이미 예고한 바 있다. 이에 대한출판문화협회는 현재의 세종도서 선정 및 운영 체계를 만든 것은 문체부임을 강조하며 “세종도서사업의 문제 지적이 예산축소의 빌미로 전락해서는 안 될 일이다”라고 반박했다.

현재 1인 출판사 ‘구픽’을 운영 중인 김지아 대표(이하 김 대표)는 우수출판콘텐츠 제작지원사업을 통해 전혜진 작가의 『280일』을 출간했고, 곽재식 작가의 『로봇공화국에서 살아남는 법』, 듀나 작가의 『옛날 영화, 이 좋은 걸 이제 알았다니』 등의 작품은 각각 세종도서와 문학나눔 사업에 선정되어 지원을 받았다. 김 대표는 본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소규모 출판사의 입장에서 지원금은 1년 출판사 운영을 좌우할 정도로 아주 중요하고 큰 금액이다”라며, “한 책을 출간해도 다음 책의 제작비를 벌어다 주지 못하는 요즘 같은 분위기에서 지원사업마저 폐지된다면 1년에 한 권도 출간하기 어려운 소형 출판사들도 많아질 것이다. 예산을 복원해 양질의 출판 콘텐츠가 책이 되는 과정과 소규모 출판사에 대한 지원을 늘려 작가들이 소규모 출판사와도 적극적으로 출간 작업을 할 수 있게 하는 방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지역서점 경쟁력 강화’ 및 ‘지역서점 문화활동 지원’ 사업 예산은 2023년 기준 도합 11억 원 규모의 예산이 투입되었으나 전액 삭감됐고, 이에 한국서점조합연합회는 “지역서점은 문화 격차를 해소하는 문화 인프라의 역할을 지역 곳곳에서 수행해오고 있었다”며 “지역서점에서 진행하는 약 750여 개의 문화 프로그램을 2024년도부터는 볼 수 없다. 이로 인한 피해는 지역서점을 통해 문화 프로그램 을 향유하던 국민들이 고스란히 안게 됐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발표해 유감을 표했다.

문체부 장관은 「출판문화산업 진흥법」에 따라 출판문화산업의 진흥에 필요한 기본계획을 5년마다 수립 · 시행할 의무가 있다. 이에 따라 2022년, “우리나라 어디에서나 자유로운 독서 활동을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며 △지역서점의 경쟁력 강화 △서점소멸지역에서 ‘작은서점’ 시범 운영 △지역 도서 물류체계와 출판 유통구조 개선을 통한 지역출판 활성화 등의 계획이 ‘제5차 출판문화산업 진흥 계획(2022~2026)’에 포함됐다. 또한, 고령층, 다문화가정 등을 위한 다양성 도서 출간을 지원해 다양한 독서 수요에 대응하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그러나 올해 문체부 예산안은 앞서 발표한 사업을 위한 예산 확보가 가능한지 의문이 드는 수준이다. 문체부가 기존 사업들을 폐지하고 마련하겠다고 주장한 ‘중소출판사 성장도약사업’ 등의 신사업은 2024년의 1/4분기가 지나가고 있는 현재까지 어떤 계획도 발표되지 않았다.

하락하는 독서율과 삭감되는 예산은 우리 사회가 독서의 가치를 부정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질문하게 한다. 김 교수는 “우리는 유아기에는 우리 삶에 필요한 기본적인 문해력을 기르기 위해, 청소년기에는 창의적 활동의 기반이 될 지식과 정보를 흡수하기 위해, 성인의 경우는 지친 일상의 휴식을 위해 책을 읽는다. 이처럼 생애주기마다 다양한 이유로 독서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가치가 있다”며 여전히 유효한 독서의 가치를 설명했다.

지난 14일, 문체부가 주최한 간담회에서 유인촌 장관은 출판계 인사들이 모자란 예산에 대해 언급하자 각 단체 대표들의 의견을 내년 예산에 반영하겠다고 답했다. 한번 줄어든 예산을 다시 확보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한번 활기를 잃은 산업이 회생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대한민국 국민의 독서율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기관 및 기업, 즉 독서 산업에 대한 지원이 충분히 이루어지고 있는지 늦지 않게 돌아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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