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진칼럼] 무심코 지나치는 상식의 허실 〈1125호〉
상태바
[명진칼럼] 무심코 지나치는 상식의 허실 〈1125호〉
  • 명대신문
  • 승인 2024.03.11 14: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명훈 경제학과 교수
이명훈 경제학과 교수

우리가 평소에 무심코 사용하는 용어들에는 흥미로운 사실이 숨어 있기도 하고,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한 용례들도 있다. 이러한 사례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번외로 경제학을 포함한 여러 학문을 하는 자세에 대해, 정조대왕이 언급한 내용에서 얻을 수 있는 통찰력을 감상해보자. 정조 왈, “독서(거시, 통계) 는 먼저 대요(수요, 공급, 통계량)를 파악해야 한다. 대요를 파악하면 만 가지 현상이 하나의 이치로 꿰어져서 반만 일하여도 공은 배로 거둔다. 대요를 파악하지 못하면 모든 사물이 서로 연관되지 않아서 종신토록 외우고 읽어도 이루는 바가 없다.” 학문을 암기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이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훌륭한 말씀이다.

이제 용어와 관련된 재미있는 사실들에 대해 살펴보자. 제육볶음은 돼지고기볶음 요리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제육이란 용어는 ‘여러 가지 제반(諸般) 고기’의 뜻이 아니라 ‘돼지고기’를 의미해야 한다. 그래서 살펴보니 돼지고기를 뜻하는 한자가 저육(猪肉)이다. 즉 돼지 저(猪)인 것이다. 따라서 맞는 표현은 ‘저육볶음’이다. 아마도 저육볶음이 발음의 편의상 제육볶음으로 변형됐을 것이다. 저육볶음이 어색하면 그냥 ‘돼지고기볶음’이라 해도 괜찮을 것이다. 섭씨 20도와 화씨 90도라고 할 때 섭씨와 화씨의 의미는? 섭씨 20도를 20°C 라고 표시하니까 C가 씨일까? 그러면 화씨 90도를 90°F라고 표시하니까 F가 씨일까? 20°C의 C는 Celsius가 창안한 온도체계이고 90°F의 F는 Fahrenheit가 창안한 온도체계이다. 이를 중국에서 Celsius의 첫 글자를 따서 섭 씨라고 불렀고 Fahrenheit의 첫 글자를 따서 화씨라고 불렀다. 만약에 한국 사람인 홍길동이 온도체계를 창안했다면 홍씨 20도, 이순신이 온도체계를 창안했다면 이씨 90도가 됐을 것이다.

달걀을 얇게 부쳐 잘게 썰어 놓은 고명을 우리나라에서는 ‘지단’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지단의 한자는 鷄蛋(한국어 발음: 계단)인데 이 단어의 중국어 발음이 지단이다. 그리고 지단(鷄蛋)는 그냥 egg를 의미한다. 즉 지단은 달걀을 의미할 뿐이다. 그러나 그냥 달걀을 의미하는 중국어 발음인 지단을 우리나라에서 달걀 고명이라는 특정한 의미로 쓰는 것은 잘못된 용법이라고 생각된다. 마치 egg를 달걀의 특정 요리만을 지칭하는 것으로 사용하는 것이 어색한 용법인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무심코 기계체조라는 용어를 쓰고 있다. 이 경우 기계는 한자어로는 器械(기계)이고 영어로는 apparatus이다. 그러나 우리는 기계라 할 때 machine을 의미하는 機械 (기계)를 떠올리게 된다. 따라서 apparatus는 기계로 번역하지 말고 ‘기구’로 번역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기계체조에서 기계는 machine을 떠올리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않은 용어이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기계체조 대신 ‘기구체조’로 쓰는 것을 제안한다. 최근에 ‘기구 필라테스’라는 용어를 쓰는데 이것이 매우 적절한 용어의 예이다.

영국의 중앙은행(Bank of England)을 영란은행이라 한다. 여기서 영란(英蘭)의 중국어 발음이 ‘잉란’이고 잉란이 England의 발음기호로 쓰인 것이다. 그러나 영란(英蘭)을 한국식 한자 발음으로 ‘영란’으로 읽는 것은 넌센스이다. 잉글란드은행 -> 잉란은행 까지는 좋은데 -> 영란은행까지 가는 것은 어색하다. 마찬가지로 네덜란드를 Holland라고도 하고 이의 중국어로 和蘭이라고 하고 이의 발음이 '허란'이다. 한국식 한자 발음을 화란이다. 즉 홀란드-> 허란 -> 화란까지 오게 된 것이다. 너무 멀리 왔다고나 할까! 독일은 Deutschland(도이 칠란트)인데 한자로 獨逸이라 한다. 중국어 발음은 ‘두이 또는 도이’이다. 즉 獨逸(도이)은 도이칠란트에서 앞의 두 자를 딴 발음기호인 것이다. 그러나 이의 한국식 한자 발음이 ‘독일’이 어서 우리나라에서는 독일이라는 발음을 무심코 쓰고 있다. 현재 중국은 독일을 德國이라 하고 ‘더구어’로 발음한다. 기독교라 할 때 기독은 한자로 基督이다. 원래는 그리스도의 중국어 발음기호로 基利斯督를 채택했다. 이것의 중국어 발음이 ‘지리스두’이다. 그리스도와 유사하다. 그러나 한국식 한자 발음은 ‘기리사독’ 이다. 용어가 4자로 기니까 중국에서는 첫 자 와 끝 자를 따서 ‘지두’라 했고, 한국에서는 ‘기독’이 된 것이다. 용어의 약자를 만들 때 첫 자 와 끝 자를 따는 희귀한 경우인 것이다.

인간사에도 이상과 현실 사이에 괴리가 많이 있듯이, 우리가 사용하는 용어들에도 이상과 현실의 차이를 발견하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용어들도 결국 인간사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 인문캠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거북골로 34 (명지대학교) 학생회관 2층
  • 자연캠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명지로 116 학생회관 2층
  • 대표전화 : 02-300-1750~1(인문캠) 031-330-6111(자연캠)
  • 팩스 : 02-300-1752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승환
  • 제호 : 명대신문
  • 창간일 : 1954년 11월
  • 발행인 : 유병진
  • 편집인 : 송재일
  • 편집장 : 한지유(정외 21)
  • 디자인·인쇄 : 중앙일보M&P
  • - 명대신문의 모든 콘텐츠(영상, 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명대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jupress@hanmail.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