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지윤의 페미니즘 산책] 개강을 맞이하며: 학교는 누구를 위한 공간인가? 〈1124호(개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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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지윤의 페미니즘 산책] 개강을 맞이하며: 학교는 누구를 위한 공간인가? 〈1124호(개강호)〉
  • 구지윤 페미니스트 연구 웹진 Fwd 필진
  • 승인 2024.02.26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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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지윤 페미니스트 연구 웹진 Fwd 필진
구지윤 페미니스트 연구 웹진 Fwd 필진

조금은 따분한 질문에서 시작해보자. 학교란 어떤 공간인가? 학생은 강의를 듣고 학우들과 다양한 활동을 하며, 교수는 연구를 하
고 수업을 진행한다. 개강이라는 새로운 시작이 설레기도 하지만, 한 학기 동안 주어지는 과제와 시험을 생각하면 2월이 지나가는 게 야속하기만 하다. 캠퍼스를 가득 채우는 사람들과 왁자지껄함 속에서 이번 학기 역시 으레 그래왔듯 누군가에게는 배움이 주는 즐거움으로 반짝거리는 시간이, 누군가에게는 지루함과 권태로 가득찬 시간이, 또 누군가에게는 진로를 정하거나 바꾸는 계기가 될 테다. 아직은조금 싸늘한 바람이 불어올 때 학교가 열리고, 매미소리와 함께 한 학기가 저물어갈 것이다. 우리가 쉽게 떠올릴 수 있는 학교생활이다.

그렇다면 다시 질문을 바꾸어서, 학교는 누구를 위한 공간인가? 학교를 구성하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누구나 가장 먼저 ‘학생’이라 답할 것이다. 여기에 질문들을 더해보자. 이때의 학생은 어떤 학생이며, 누구의 얼굴로 대표되는가? 대학 캠퍼스는 흔히 20대 ‘청춘의 상징’이자 이성애 연애에 대한 낭만이 넘치는 곳으로 그려진다. 어떤 이들은 학교를 사회에 나가기 전 ‘가장 안락한 곳’이자 학생이라는 ‘안전한 신분’으로 머물 수 있는 곳이라 일컫는다. 이 말을 전면 부정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모든 사람에게 정말 안락하고 안전한 곳일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물음표를 붙일 수밖에 없다.

대표적으로는 화장실이라는 공간이 그렇다. 매해 화장실을 비롯한 다양한 공간에서 여성을 대상으로 한 불법촬영 범죄 건수가 증가하고 있다. 혹시 학교 내 화장실 어딘가에 불법 촬영기기가 숨어있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마음으로 화장실을 이용하는 학생들에게 학교가 과연 안전한 공간일 수 있을까? ‘본 화장실은 몇 년도 몇 월 며칠 불법 촬영기기 단속이 완료되었다’는 한 장의 스티커를 우리는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까. 물론 여성들에게 여자 화장실이 공포의 공간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때로 여자 화장실은 생리대를 빌리고 빌려주는 ‘소소한 연대의 장’이 되기도 하고, 성차별에 반대하는 전단이나 스티커 등을 통해 페미니스트 의식을 고취시키는 교육의 장이자 투쟁 공간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이 곧 화장실을 한 치의 불안과 의심 없이 이용할 수 있는 곳으로 만들어주지는 않는다.

화장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폭력은 비단 불법촬영에 국한되지 않는다. 여자 화장실과 남자 화장실이라는 두 가지 선택지만 주어지는 상황에서, 태어날 때 지정된 성별로 정체화*하지 않는 사람들은 화장실 한 번을 가기 위해 무수히 많은 갈등과 타협의 과정을 겪고 상황에 따라 서로 다른 전략을 택한다. 이때 경우의 수는 수없이 다양하다. 만에 하나 지정성별과 ‘반대되는’ 화장실에 ‘몰래 들어온’ 범죄자로 의심받을 경우를 대비해 트랜지션 의료**진단서를 항상 갖고 다니는 경우, 법적 성별정정이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이미 지정성별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보이지 않아 화장실 이용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 장시간 화장실을 이용하지 못함으로써 방광염 등 배뇨관련 질환을 앓는 경우 등 트랜스/젠더퀴어 당사자들이 입이 아플 정도로 반복해온 이야기이다. 그러나 2022년이 되어서야성공회대학교에서 대학 최초 ‘모두의 화장실’이 설치되었다는 사실은 학교라는 공간에 트랜스/젠더퀴어 학생이 얼마나 구성원으로 인식되고 존중받고 있는지를 방증한다.

화장실뿐 아니라 학교 곳곳의 턱과 계단은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 학생들의 접근성을 제한한다. 강의를 듣기 위해 비장애인 학생에 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은 장애인 학생이 감수해야 할 사항이 아니라, 장애인 학생의 학습권을 적극적으로 보장하지 않는 학교에 그 책임이 있다. 또한 청소노동자와 경비노동자 없이 학교는 유지될 수 없다. 그러나 이들이 하청의 하청 업체에 고용되어 있다는 이유로 요구사항을 손쉽게 묵살하는 것은 이들이 정말 학교의 구성원이 아니기 때문일까?

대학은 생각보다 훨씬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고, 따라서 이들이 경험하는 학교라는 공간은 서로 다르게 이해될 수밖에 없다.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학교는 어떤 사람을 기준으로 설계된 공간이고, 누구의 공간으로 이해되는가?

*자신의 성정체성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결정하는 일을 뜻하는 말
**자신의 정체성과 맞는 몸을 위해 받는 호르몬요법,성확정수술 등을 통틀어 일컫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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