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서야 제대로 지킬 수 있다 〈1123호(종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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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서야 제대로 지킬 수 있다 〈1123호(종강호)〉
  • 명대신문
  • 승인 2023.11.20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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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종류의 폭력을 상대로 하든, 피해자가 일상으로 복귀하게끔 돕는 일은 쉽지 않다. 개인의 트라우마와 상처에 더하여 사회의 2차 가해 또한 존재하기 때문이다. 민간 단체와 지원 기관의 힘 역시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국가 차원의 피해자 지원책이 필요한 이유다. 국가가 피해자를 돌본다는 것은 그들의 삶에 관심을 가지고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피해자의 일상 복귀를 위해서는 믿을 수 있는 단단한 기반으로서의 국가, ‘마저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번 여성가족부의 2024년 예산안에서는 ‘여성폭력 방지 및 폭력 피해자지원 관련 예산’ 142억 원이 삭감됐다.

여성가족부는 성매매 피해자 구조지원 예산을 절반 가량, 가정폭력 상담소 운영 예산과 성폭력 피해자 의료비 등의 지원 예산을 일부 삭감했다. 초 · 중 · 고교 학생을 대상으로 한 성인권 교육 사업과 디지털 성범죄 예방교육 콘텐츠 제작, 이주여성 인식 개선 및 폭력피해 예방 홍보 사업 예산은 전액 삭감됐다. 여성가족부는 해당 예산안이 ‘약자 복지 및 저출산 대응에 집중 투자하는 방식으로 편성된 예산’이라고 해명했다. 5대 폭력 피해자 통합 지원 등의 예산은 오히려 늘어, 총 삭감액만 따지면 53억 원 정도라는 것이다. 결론은 “효 율적 예산 운영을 통해 보다 촘촘한 여 성폭력 피해자 지원체계를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여성폭력 피해자 지원 단체 569곳이 참여한 연대체 ‘여성폭력 방지 및 피해자 지원 예산 감축 철회 촉구 공동행동’은 기자회견을 열어 “피해자 지원 체계를 무력화하려는 예산안에 반대한다”고 외쳤고, 광주광역시 서구 의회 역시 ‘여성폭력방지 및 피해자 지원예산 삭감철회 촉구 건의안’을 채택하는 등 해당 예산안에 반발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이번 예산안이 피해자 지원체계에 도움이 되기보다는 퇴보시키는 것이라는 증명이다.

예산 편성은 국가의 방향성을 알리는 하나의 지표로서 기능한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며 여성가족부는 존폐의 위기에 놓였다. 끝내 실질적으로 폐지되지는 않았지만, 여성정책에 대해 회의적이고 무지한 발언을 일삼는 장관의 모습으로 인해 사실상 사라진 것과 다름없거나, 사라져야 하는 이유를 스스로 만들고 있다는 의견마저 존재한다. 이런 와중 닥쳐온 2024년 예산안은 과연 국가가 말하는 ‘약자 복지’에 ‘여성 폭력 피해자’가 속해 있는지 물어볼 수밖에 없게끔 한다. 여성가족부의 기초는 성평등이다. 여기서 말하는 성평등이란 젠더에 따른 권력의 차등을 없애고 모두가 평등한 위치에 서는 것을 말한다. 다양한 형태의 가족 및 청소년에 대한 정책 역시 이 토대 위에서 기능한다. 이제는 젠더 갈등이라는 이름의 ‘페미니즘 사냥’ 속에서 각종 오해로 얼룩진 여성가족부의 의미가 바로 서야 할 때다. 다른 무엇이 아닌, 약자들의 일상을 위해서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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