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진칼럼] AI가 못하는 일, 상상하기: 인간‘종특’ 〈1123호(종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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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진칼럼] AI가 못하는 일, 상상하기: 인간‘종특’ 〈1123호(종강호)〉
  • 전진영 건축대학 건축학부 교수
  • 승인 2023.11.20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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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영 건축대학 건축학부 교수
전진영 건축대학 건축학부 교수

건축가의 치열한 삶을 살던 내가 명지대에 교수로 부임한 지 20년이 넘었다. 강산이 두 번 변했음직한 시간을 학생들과 부대끼면서, 젊은이들이 문제를 파악하여 해법을 찾는 방식이 적지 않게 바뀌고 있음을 실감한다. 확실히 20년 전의 제자들과 지금의 제자들은 다르다. 물론 그 사이 스마트폰이 발명되었고 수많은 신조어가 명멸했으며 지구적인 역병을 겪긴 했지만 말이다.

“요즘 학생들은 도대체 어떤 생각을 하는지 모를 때가 많아요.” 교수 초년시절 가르쳤던 몇 몇 제자들이 건축사가 되어 외래(겸임)교수자 격으로 설계교과를 지도하면서 이런 말을 할 때면 정말 세상이 달라졌음을 실감한다. 전통적인 문제 해결 방식이 [정의-분석-해석]의 과정으로 진행되었다면 지금은 [정의-검색-조 합]으로 바뀐 것 같다. ‘통섭’이니 ‘융합’이니 하는 사회적 요구도 이런 변화를 부추겼던 것 같다. 현시점의 기술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들에 시간을 빼앗기느니 발생 가능한 더 많은 경우를 검색해야 한다고 해도 할 말은 없다. 더 나아가,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긴 사례까지 들고 온다면 도망가야 할 판이다.

이 시점에서 던져야 하는 질문이 하나 있다. 지금 우리가 잃고 있는 것은 없는가? 우리의 판단력과 직관은 여전한가? 스마트폰(과 컴퓨터)의 도움 없이 혼자서 또는 사람들과의 소통(집단지성)을 통해 결론을 도출하는 능력이 남아 있기나 한가? 안타깝게도 20년이 넘는 나의 교수 경험이 주는 답은 ‘글쎄…?’다. 인간이 만물 의 영장인 것은 ‘해석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상상력을 전제로 하는 ‘해석 능력’이야말로 창 의력의 본질이며 인간을 다른 종의 생명체, 심지어 AI보다 뛰어난 존재로 만드는 요소다. AI가 생성하는 알고리즘은 ‘해석’이 아닌 ‘입력’ 의 결과물이므로 AI는 결코 인간의 영역으로 들어올 수 없다. 문제는 인간이 자진하여 AI의 영역에 편입되려고 하는 것이다.

최근 20여 년 사이에 개발된 3D 프로그램들이 모델링과 렌더링에 획기적인 결과를 제공하면서 건축과 도시의 모습을 바꾸고 있다. 엄청 새롭게. 좋은 점도 많다. 과거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형태나 구법이 가능해졌고 진부했던 도시의 분위기에 활력을 주는 건축물과 공간들이 생겨나고 있다. DDP와 같은 비정형 건축물은 상권 활성화를 통한 경제적 기여도까지 크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요즘 수많은 건축가와 건축학도들은 DDP를 설계한 자하 하디드와 같은 스타 건축가가 되고 싶어 한다.

불과 한 세대 전까지도 불가능했던 이런 류의 건축디자인은 컴퓨터의 발전이 이루어 낸 성과다. 컴퓨터는 설계 프로세스를 바꾸게 했다. 이 창문의 형태와 색깔은 어때야 하는가를 고민하는 방식이 아니고 어떤 조합들이 이 창문에 어울릴까를 선택하는 방식이 된 것이다. 주관식에서 다지선다형으로 바뀐 것인데, 프로그램이 발전하면서 선택 가능한 조합의 숫자는 무한대에 이르는 지경이다. 하지만 편리한 세상이 되었다고 마냥 좋아할 일은 아니다. 건축을 설계하며 쏟아붓는 진득한 고민이 청년세대를 중심으로 사라지기 시작했다. 괜찮 다 싶은 건축디자인을 복제하는 일들도 빈번하다. 표절 시비를 피하고자 필요한 변형은 거치겠지만, 유전자 복제와 같은 아류들의 범람은 도시의 모습을 우스꽝스럽게 만든다. 건축가들은 상상력을 잃고 도시는 정체성을 잃게 되는 것이 우리 미래의 모습이 아니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

컴퓨터, AI… 이런 것들은 모두 도구다. 나는 우리 청년들이 응당 해야 하는 ‘상상하기’ 훈련을 도구에게 맡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도구들은 상상의 능력이 없으며, 상상하는 능력은 인간만의 ‘종특’이기 때문이다. 나의 설계 수업을 듣는 학생들에게, 최종 결과물은 컴퓨터로 정리하되 설계 과정은 백지에 연필로 진행하게 한다. 백지에서 멋진 공간을 찾아내어 연필로 표시하는 작업은 상상력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컴퓨터만큼 연필을 잘 다루는 학생들이 사랑스러운 것은 그들의 미래가 상상되기 때문이다.

청년들이여, 스마트폰에서 잠시 눈을 떼고 차분히 해법을 고민해 보세요. 여러분의 미래 는 여러분의 상상에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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