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부원의 우리가 살았던 시간들] 춤추는 여자는 위험하다 〈1123호(종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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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부원의 우리가 살았던 시간들] 춤추는 여자는 위험하다 〈1123호(종강호)〉
  • 강부원 인문학협동조합원
  • 승인 2023.11.20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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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부원 인문학협동조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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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서울신문』에 연재된 정비석의 소설 『자유부인』은 당시의 부도덕한 세태를 대학교수 부인의 일탈을 중심으로 묘사해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 소설 연재 당시 서울법대 교수 황산덕은 “대학교수를 사회적으로 모욕하는 무의미한 소설은 쓰지 말아 달라”며 “정비석의 『자유부인』이 중공군 50만 명보다 더 무서운 해독을 끼치는 소설”이라고 성토했다. 한국전쟁 직후였으니 ‘중공군’ 비유는 어떤 욕설보다 강한 수위의 비난이었다.

또한 이 소설은 “북괴의 사주로 남한의 부패상을 샅샅이 파헤치는 이적 소설”이라는 평가를 듣기도 했다. 문학평론가 백철 역시 “신문 소설이 후진적인 대중 취미에 신경을 쓰느라 저속해지는 경우가 많다”며 거들었다. “패륜의 사회상”을 닮은 작품이라 배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자유부인』이 한국 문단의 수준을 격하시켰다는 날선 비판 역시 터져 나왔다.

사회 진출을 동경하며 춤추는 여성이 등장하는 소설 『자유부인』이 큰 인기를 얻자 이에 불안을 느낀 기득권 남성 지식인들이 한목소리로 비난에 나선 것이다. 문학작품 하나에 마치 우리 사회의 윤리와 도덕관념이 무너져 내린다는 듯이 호들갑을 떨었다. 이는 역설적으로 『자유부인』이 그만큼 한국 사회의 불법과 부정부패, 상류층의 타락과 위선의 양상을 적나라하게 폭로했다는 사실의 방증이기도 하다. 즉, ‘자유부인 논란’은 여성의 욕망과 자유를 일절 허락하지 않는 한국 사회의 엄격한 남성 (무)의식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사건이었다.

한편, 남성 지식인들에 의해 위험하고 해괴망측한 소설로 평가받았던 『자유부인』은 대중에게 폭발적인 관심과 인기를 얻었다. 초판본 『자유부인』은 발행 첫날 3천 부가 순식간에 모조리 팔려나갔다. 『자유부인』은 대중의 큰 호응에 힘입어 1956년 한형모 감독에 의해 영화로도 제작됐다. 영화 역시 파격적인 원작 소설의 인기에 걸맞게 흥행했다.

영화는 보수적인 윤리관을 소유한 한글학자 ‘장 교수’의 부인 ‘오선영’의 일탈에 초점을 맞췄다. 물론 장 교수와 미군 타이피스트 ‘은미’와의 은밀한 애정 전선도 부분적으로 부각되지만, 원작 소설과 마찬가지로 내러티브의 핵심에는 남편과 자식을 내버려둔 채 일탈을 감행하는 아내이자 어머니인 오선영이 위치한다. 오선영은 답답한 집에서 밖으로 나와 양품점에서 일도 하고, 옆집 대학생 ‘춘호’에게 춤을 배우기도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당시 오선영과 같은 가정부인들의 사회 참여와 취미 생활은 여성의 자아를 실현하는 적극적 실천으로 평가받지 못했다. 완고한 가부장제하에서 여성에게 할당된 사회적 역할은 제한적이었다. 여성들은 비정치적인 역할만을 부여받았고, 사회적 도전이 될 만한 임무는 맡을 수 없었다. 여성들이 ‘바깥일’을 하면 사람들은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았다.

‘가정’과 ‘사회’의 이중 굴레에 속박된 여성들에게 자유란 허황된 가치였고, 일탈을 감행한 여성에게는 가혹한 응징이 기다리고 있었다. 부인의 춤바람 때문에 가정이 파탄난다는 내용은 1950~60년대 여성 일탈 서사의 근간을 구성할 만큼 익숙한 것이었다. 남편은 아내의 외도에 절망하고 괴로워하며, 집안에 혼자 남아 엄마를 기다리는 아들은 안쓰럽게 그려진다. ‘바람난 엄마 때문에 무너진 가정’에 대한 이같은 묘사는 당시 영화와 드라마에서 가장 흔히 사용된 기법이었다.

이렇게 반복된 레퍼토리와 클리셰는 여성이 자유를 얻기 위해서 얼마나 큰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적나라한 반증인 동시에, 남편과 자식을 비롯한 가족구성원들이 안정적인 생활을 누리기 위해서는 여성의 금욕과 헌신이 필요하다는 지독한 역설이었다. 1950년대 벌어진 ‘자유부인 논란’은 실상 남성 지식인들이 가진 자유에 대한 협소한 이해와 젠더 강박증이 발현된 사태였다. 여성의 해방이나 사회 진출 문제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나 논쟁은 전혀 없었다. 어머니이자 아내인 여성이 집을 나가 춤추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사회 전체가 분열증에 걸린 것처럼 난리를 피운 것이다.

그 후로 오랫동안 ‘자유부인’이라는 말은 감각적 욕망과 해방된 자아를 실현하는 여성을 지칭하는 고유명사처럼 사용됐다. 이는 자유와 해방을 갈망하다 끝내 좌절된 여성이 겪어야 했던 수난은 지워내고, 꿈꾸듯 나풀대던 찰나의 순간만을 기억하는 고의적인 윤색에 가깝다. ‘자유부인’ 등장 이후 수십 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여성의 사회적 도전을 바라보는 남성들의 시선은 일관되게 삐딱하고, 여성의 행실을 재단하는 한국 사회 전반의 규율은 여전히 견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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