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를 갈무리하는 10월이다. 지난 호 가을이 주는 교훈에 이어 이번 호는 노벨상 시즌에 맞추어 가치와 관점 교육의 중요성을 나누고자 한다. 흔히 과학기술은 가치중립적이라고 한다. 과연 그럴까?
근세 영국의 철학자 베이컨은, 과학 은 반드시 경험적 근거를 가져야 하고 가설이나 이론은 실험과 관찰을 통해 검증될 뿐이라는 “과학기술의 중립성 도그마”를 정립했다. 이후 과학은 관찰 자 관점에서만 존재하였고 가치와 무관했다. 이후 근대 과학은 눈부시게 발전했지만, 그 부작용도 만만치 않아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인류는 자기 성찰을 해야 했다. 최근 영화는 미 정부의 맨해튼 계획에서 책임 개발자인 물리학자 오펜하이머가 1945년 7월 16일 원자폭탄 실험에 성공하고 고초를 겪는 이야기를 다룬다. 과학자의 가치중립성이 가능하고 원자폭탄이 인류의 진보라 믿은 오펜하이머와 달리, 아인슈타인은 대통령에서 보내는 편지에서 핵은 긍정적으로도 부정적으로도 사용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 문제는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한 스웨덴의 화학자이자 산업가인 알프레드 노벨이 왜 노벨상 설립을 유언했는지에 해결의 실마리가 있다. 다이너마이트가 군사적으로 많이 사용되면서 그는 심기가 불편했는데, 그러던 중 그의 친형이 죽었을 때 프랑스 한 신문에 실수로 알프레드 노벨의 부고기사가 실렸다. ‘죽음의 상인 다이너마이트 왕, 알프레드 노벨 사망하다’라고. 그는 평생의 재산과 명성이 사람을 죽이는 폭탄을 만들어 얻은 대가일 뿐이었다고 깊이 반성하고, 유언장을 고쳤다. “내 재산에서 생기는 이자로 해마다 물리학, 화학, 생리학 및 의학, 문학, 평화의 다섯 부문에서 공헌이 있는 사람에게 상을 주라”고. 세계평화와 과학의 발달을 염원한 유언에 따라 그의 유산은 스웨덴 과학아카데미에 기부되었고, 1901년부터 노벨상이 수여됐다. 이후 1968년 경제학상을 추가했고 노벨평화 상만 노르웨이에서, 나머지 상은 스웨덴에서 수여된다.
1962년 미국의 과학철학자 토마스 쿤은 저서『과학혁명의 구조(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 에서 과학기술문명이 핵무기, 환경 파괴, 인간의 수단화 등 판도라 상자에 불과한 것 아니냐는 주장에, 과학기술을 옹호하는 측에서 과학기술은 중립적이어서 책임이 없고, 이를 오남용하는 인간과 사회에 책임 있다는 도그마를 분석하였다. 그 결과, 과학 활동에는 인간의 주관적인 요소들(사회, 문화, 정치, 경제적 요인들과 과학자 개인의 가치, 편견 등)이 언제나 개입하기에 과학은 가치중립적이지 않다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