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지대 앞에서 비건으로 살아남기 〈112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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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지대 앞에서 비건으로 살아남기 〈1121호〉
  • 김다은 사회문화부장
  • 승인 2023.10.09 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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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채식연합 조사에 따르면 현재 대한민국 채식 인구는 250만 명에 달한다. 마케팅조사 기관인 한국리서치의 정기 조사 결과로는 만 18세 이상 성인 남녀 중 4%가 스스로를 채식주의자로 칭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체 인구통계 기준으로 환산하면 176만 명에 달하는 인원이다. 채식 인구의 증가와 함께 ‘비건’은 우리에게 더 이상 낯설지 않은 개념으로 자리 잡았다. ‘비건 뷰티’, ‘비건 레더’ 등 식습관뿐만 아니라 삶 전체에 적용할 수 있는 개념으로 확장해 일상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비거니즘을 실천하는 이들은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 비건으로 살아가기가 쉽지 않다고 말한다. 이에 기자는 직접 일주일가량 우리 대학 앞에서 비건으로 살기에 도전했다.

 

▲사진은 대체육을 사용한 햄버거(위)와 동물성 재료를 뺀 김밥(아래)이다.
▲사진은 대체육을 사용한 햄버거(위)와 동물성 재료를 뺀 김밥(아래)이다.

비건, 풀만 먹나요?

사전에서 비건은 ‘엄격한 채식주의자’로 정의된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비건은 엄격한 채식주의자를 ‘포함’하는 개념이다. 비거니즘의 실천은 식습관의 변화에서만 비롯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해양환경단체 시‘ 셰퍼드’ 김한민 활동가의 저서 『아무튼, 비건』에서는 비건을 “동물로 만든 제품의 소비를 거부하는 사람이자 소비자운동”이라고 정의한다. △고기 △생선 △유제품 등을 먹지 않는 것뿐만 아니라 가죽, 모피 등의 제품도 사지 않으며, 꿀과 같이 동물을 착취해 생산한 제품도 거부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비건이 식단에 국한되지 않고 삶의 방식 전체를 포괄하는 개념인 것과 별개로 식생활에 대한 제약은 우리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식단에 있어 소비 범주에 따라 채식주의를 구분하는 것이 보편으로 자리 잡았다. 대표적으로는 △플렉시테리언 △페스코 △락토 오보 △락토 △비건 등으로 나눈다. 이러한 구분과 지칭은 자신의 소비 범주를 간단히 설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동시에 완벽성을 요구하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비거니즘 실천의 방식을 제한한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따라서 본지에서는 이러한 구분에 구애받지 않고 비거니즘을 향한 모든 실천을 ‘비건 지향’으로 칭하고자 한다.

 

▲표는 소비 범주에 따른 채식주의의 보편적인 구분을 나타낸 것이다.
▲표는 소비 범주에 따른 채식주의의 보편적인 구분을 나타낸 것이다.

협소한 선택지와 치열한 고민

평소에도 가장 큰 고민이었던 점심 메뉴 선정은 비거니즘 실천을 시작하고 더욱 어려운 일이 됐다. 채식이 가능한 식당을 안내하고 채식 경험을 공유하는 ‘채식 한끼’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우리 대학 근처의 채식 식당을 찾아본 결과, 좁은 범위에서는 4곳부터 거리 범위를 최대한 넓힌 경우 11곳까지 채식 옵션을 제공하는 식당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사진은 ‘채식 한끼’ 어플리케이션 화면을 캡쳐한 것이다.
▲사진은 ‘채식 한끼’ 어플리케이션 화면을 캡쳐한 것이다.

그러나 이 중 대부분은 프랜차이즈 브랜드의 채식 옵션 메뉴였고 카페, 베이커리 등 식당이 아닌 가게들도 포함돼 있었다. 매일 다양한  비건 식사를 하기 위해서는 몇 안 되는 식당을 놓고 고민할 수밖에 없었고, 그마저도 비건 선택지가 아닌 자체적으로 동물성 재료를 빼고 제조해달라고 요청해야 하는 경우가 다수였다.

이렇게 고민을 거듭해 동물성 재료를 뺀 샐러드 김밥, 치즈와 육류를 넣지 않은 샌드위치, 햄버거 프랜차이즈의 비건 버거 등을 먹을 수 있었다. 3년 째 비건 지향 중인 소윤주(청지 20) 학우 또한 본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비거니즘 실천에 가장 어려운 것 중 하나가 학교 앞에서 선택할 수 있는 비건식이 많이 없다는 사실이다”라며 “화장품 같은 경우 비건 인증 마크를 통해 쉽게 구분할 수 있지만 음식점에는 비건 옵션이 있는 경우조차 많지 않다”고 대학 생활 중 비거니즘 실천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도시락을 싸서 다니거나 지하철역에서 파는 옥수수를 사 먹는 등의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지만, 음식점 어딜 가든 비건 옵션이 있다면 훨씬 편하고 안심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바람을 전하기도 했다.

이처럼, 비건들은 비건임을 믿고 먹을 수 있는, 안심할 수 있는 식사를 원한다. 하지만 현재 한국에는 비건 옵션을 제공하는 식당의 수가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우리 대학 앞에서 비건 베이커리 ‘구떼’를 운영 중인 김지연 씨는 일반 음식점에서 비건 옵션을 제공하기 어려운 이유를 묻는 본지의 질문에 “결국엔 돈 때문이다. 음식이 남으면 먹거나 버릴 수 밖에 없어 재고 관리도 어려운 데다가, 논비건 메뉴에 비해 맛을 유지하는 것 또한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라고 밝혔다. 실제로 베이커리 운영에 있어서 어려운 점 또한 비건 버터와 같은 재료는 논비건 재료에 비해 수급이 어렵고, 가격도 비싼 점을 꼽았다.

수익 창출이 목적인 식당에서 비건 옵션을 제공하기엔 비건의 수요가 확실치 않고 재료 수급에도 어려움이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학생 복지의 일환인 학생 식당은 어떨까. 실제로 우리 대학은 세계스카우트잼버리에 참여한 대원들이 조기 폐영으로 기숙사에 입실했을 때 채식 옵션을 제공했다. 이는 곧 우리 대학 학생 식당이 비건 메뉴를 운영할 시설과 능력을 갖추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에 대해 우리 대학 마스터리스 업체인 ‘캠퍼스 파트너스’에 비건 메뉴 운영 가능성에 관해 묻자 “현재 학식에서 비건 옵션을 제공할 수 있는 여력이 충분히 갖추어져 있는 상태이다. MCC관 코이노니아홀 2층에 위치한 카페에서 조만간 비건 메뉴를 선보일 예정이다”라며 향후 계획을 밝혔다.


식사는 사회적 활동이다

비건에 도전한 일주일간 치열한 고민을 거듭해 메뉴를 결정했어도, 주변 사람들에게 함께 먹자고 제안하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았다. 우리 삶에서 식사가 일종의 사회적 활동으로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은 비거니즘 실천의 걸림돌이 된다. 식사의 메뉴보다는 함께하는 시간이 중요한 식탁에 둘러앉아도, 비건들은 메뉴에 신경 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인터뷰를 통해 비건으로 사는 어려움에 대해 물었을 때, 공통적으로 사회생활 도중 식사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답변했다. 5년차 비건 지향인이자 교사로 일하고 있는 ‘숨눈’(가명) 씨는 “친구를 만나거나 직장 회식에 참여하는 순간 메뉴 선택지가 줄어들어 민폐가 될까 걱정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4년째 비거니즘을 실천 중인 양현아 씨(이하 양 씨) 또한 “대부분의 사람이 함께 무언가를 먹는 행위로 친해지다 보니 관련 주제로 이야기가 나올 때 참여하지 못하면 아쉽다. 가령 맛집에 대한 이야기 를 할 때 쉽게 리액션할 수 없고, 먹을 수 있는 메뉴가 있을지부터 고민하게 되는 경우 외롭기도 하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이들 또한 사회 속에서 함께 비건으로 살아갈 각자의 방식을 찾고 있다. 숨눈 씨는 “적극적으로 비건 메뉴를 추천하며 존재를 드러낸다. 상대가 불편하면 나 또한 불편하지만, 서로 불편하게 만듦으로서 비건의 존재와 어려움을 알리는 것 또한 비건 지향의 운동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라며 “비건을 지향하는 삶이 맛도 재미도 없고 어렵다는 편견을 깨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고 자신만의 방법을 전했다. 숨눈 씨는 교사로서 생태전환 교육을 중점적으로 다루며 학생들에게 인간도 생태계 구성원 중 하나라는 공동체의 관점을 일깨우고자 노력하고 있다. ‘비건교사나는냥’이라는 비건 교사 모임에서 교육 콘텐츠를 만들고, 학생들에게 비건 간식을 나눠주거나 도시락을 보여주는 등 자신이 비건임을 적극적으로 드러낸다. 이러한 일들이 궁극적으로 비건이 보편으로 자리 잡는 사회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양 씨 또한 “주변인들에게 비건 음식을 많이 맛보여 주려고 한다”며 “비건식이 맛이 없다거나 영양이 불균형해 건강하지 못하다는 등의 편견을 없애기 위해 비건 간식이나 반찬처럼 맛있고 영양가 높은 비건식을 자주 권한다”고 밝혔다.


걱정과 우려, 그리고 오해

양 씨의 말처럼 비건들은 우려와 걱정 속에서 생활한다. 애정이 담겼으나 오해와 얽혀있는 걱정들은 일주일간의 비건 체험 동안에도 끊이지 않았다. “그러다 쓰러지는 것 아니냐”, “단백질 부족으로 위험하다” 등 비건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말들은 풀만 먹는다는 오해와 더불어 정설처럼 받아들여지곤 한다.

언뜻 본 비건식은 영양학적으로 불균형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우리의 단백질 섭취가 지나치게 동물성 식품에 의존하고 있기에 생긴 오해에 불과하다. 직업환경의학 전문의이자 생활습관의학전문의인 이의철 교수는 그의 저서 『기후미식』에서 동물성 단백질이 낳을 수 있는 악영향에 대해 경고한다. “과도한 동물성 단백질 중심의 식단이 심혈관 질환과 당뇨 발병 가능성을 높이고, 이러한 만성질환을 유발하는 인슐린 저항성 상태를 만들 수 있다”고 밝힌 것이다.

 

▲사진은 미국 농무부(USDA)가 발표한 권장 식단 ‘마이 플레이트’의 구성이다.
▲사진은 미국 농무부(USDA)가 발표한 권장 식단 ‘마이 플레이트’의 구성이다.

실제로 미국 농무부(USDA)가 1992년 처음 발표하기 시작한 권장 식단 변천사를 통해 바람직한 식단 통념 또한 시간이 지나며 변화했음을 알 수 있다. 2005년 발표한 푸드 피라미드는 육류와 달걀은 조금 먹되 곡물과 채소, 유제품을 많이 섭취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그러나 2011년 푸드 피라미드를 보완하여 발표한 권장 식단인 ‘마이 플레이트’는 △채소 △곡물 △과일 △유제품 △단백질로 구성돼있다. 육류와 달걀이 단백질이라는 표현으로 대체되었고, 유제품 또한 두유를 통해 필요한 영양소를 섭취할 수 있음을 상세 설명에서 명시했다. 게다가 2011년 농무부의 마이 플레이트를 보완하여 하버드 공중보건대학원에서 제안한 권장 식단은 △채소 △곡물 △과일 △기름 △단백질 △물로 구성돼 유제품마저 선택사항이 됐다. 이는 더 이상 동물성 단백질을 넘어 동물성 식품이 우리 식탁에 필수 요소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비건 지향인들의 신체적 변화 또한 비건에 대한 오해를 부정한다. 본지와 인터뷰 한 비건 지향인 ‘동글’(가명) 씨는 “이전부터 건강상의 이유로 운동과 식단을 꾸준히 관리하고 있었다. 비건 지향인이 되고 전에 하던 강도 높은 운동을 유지했는데 수행력도, 건강도 타인이 체감할 정도로 좋아졌다”고 밝혔다. 양 씨 또한 “가족력으로 혈압 문제가 있어 꾸준히 검사해 왔는데, 채식을 시작하기 전 건강검진을 받을 때 고혈압 위험 전 단계라는 진단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채식을 한 이후 정상 수치를 유지하고 있다”며 실제 경험한 변화에 대해 설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건

몇 없는 선택지, 사회생활의 어려움, 오해에서 비롯된 걱정 등 비거니즘 실천을 힘들게 하는 것들은 매 순간 존재한다. 이뿐만 아니라 비건들은 완벽하지 못한 자신에 대한 죄책감과 나 하나의 노력이 환경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무력감에 괴로워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비건 지향의 길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비건이 되길 선택한 이유와 맞닿아 있다. 이화여대 식품영양학과 조미숙 교수팀이 2020년 5월 수행한 설문 조사 결과 국내 채식주의자들의 채식 시작 동기는 △건강(36.3%) △동물보호(34.7%) △환경보호(15.1%) 순으로 많았다. 인터뷰에 참여한 비건 지향인들의 사유도 설문조사 결과와 유사했다. 소윤주 학우는 동물권과 환경 문제에 대한 복합적인 관심에서 비롯해 비건 지향의 삶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양 씨 또한 기후 위기와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아 비건을 시작했고, 숨눈 씨는 약자, 소수자 인권과 동물권이 맞닿아 있음을 알게된 후 본격적으로 비건을 지향하게 됐다. 동글 씨의 비건 지향은 공장식 축산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시작됐다.


이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비건 지향을 위해 분투하고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삶이 다채로워지는 것을 경험했다. “맛의 지평이 넓어진다”거나, “비거니즘을 통해 새로운 사람, 새로운 공동체를 만날 수 있었다”는 비건들의 경험담은 그들이 꾸준히 비건을 향해 나아갈 힘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국 사회에서는 아직 멀고도 험해 보이는 비건 지향의 길은 함께할수록 수월해진다. 일주일에 한 번, 하루에 한 끼라도 비건을 실천해 보자. 한 명의 완전한 비건보다 열 명의 비건 지향인이 세상을 바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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