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들이 적처럼 진주한 사회에서 〈112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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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들이 적처럼 진주한 사회에서 〈1120호〉
  • 강태혁(사학 16) 독자권익위원
  • 승인 2023.09.25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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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혁(사학 16) 독자권익위원
강태혁(사학 16) 독자권익위원

신문뿐 아니라 모든 일이 그럴 것이다. 내가 좋아서 시작한 일이라야 열정이라도 있는 것이지만, 열정의 유효기간은 대개 사랑의 그것과 비례한다. 도망가서라도 내가 품었던 이상의 원형을 지키고 싶지만 도망친 곳에는 낙원이 없고 남은 자리에는 밀린 업무와 서류만이 켜켜이 쌓일 뿐이다. 신문에 대한 회의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지난 학기 술자리에서 내가 독자권익위원회에 참여했다는 소식을 들은 동기는, 지금 시점에 학내 언론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 물었다. 그러나 어쨌든 내 기억으로 언론은 늘 언론의 일을 했다.

이번 호의 테마는 복지다. 체력단련실과 와이파이, 학교 앞 정문 교통의 난맥상을 스트레이트하게 짚었다. '왜'와 '무엇을'을 서두로 해서 '어떻게' 조치되는지 적확하게 적어낸 것이 정보 전달자로서의 학보의 역할이다. 이분법이 만연한 사회에서 '통추위' 기사를 다루며 중심을 잃지 않았고, 파산 문제의 반론글을 실으며 신문이 정치적 가치판단을 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드러낸 것으로도 읽혔다. 학보가 정보에 집중하는 것에 대해 여러 의견이 있겠으나 내 생각에는 그것이 신문이 본령을 다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칼럼이 아쉬웠다. 칼럼 자체가 방대한 내용을 응축해야 하는 것인데 그 응축된 글에 동어반복적인 내용이 더러 읽혔다. 오염수 방류를 반대한 대학생들이 체포되었다가 풀려난 기사는 배치가 학내 소식 사이라 약간 어색했다. 그러나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외부 칼럼보다는 교내 필진의, 특히 학생의 공간을 더욱 확대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다. 어쨌든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고, 학보의 주인도 학생이니까.

『무진기행』의 대목을 이 글의 제목으로 한 것은 현재 한국의 세태가 그것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중립성이라는 숭고한 가치는 왜 나만 비판하고 내적들은 비판하지 않느냐는 투정으로 희석된다. 불행하게도 그것이 오늘날의 한국이 담론을 다루는 방식이다. 여기서 '적'들은 실체 불분명하게 안개처럼 퍼져서 내 주위를 감싸고 있다. 요컨대 보이지는 않으면서 어디선가 나와 다른 의견을 제시하며 내게 피해를 주고 있다는 집단적 피해의식이 공론장을 휘감고 있다.

학보도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 것이다. 어떤 정보를 선택해야 할지, 그 주제가 학보에 실렸을 때 안개 속에서 누가 어떤 반응을 할지 당시로는 알 수 없다. 그러니 학보가 아주 미시적이고 작은 아이템만을 다룬다고 해서 아쉬워 할지라도 마냥 비판만 할 일은 아니다. 오히려 그런 방식이 명대신문이 제 나름대로 안개를 헤쳐나가는 방식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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