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소멸의 시대 ··· ‘서울공화국’을 넘어 국가균형발전으로 〈1118호(개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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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소멸의 시대 ··· ‘서울공화국’을 넘어 국가균형발전으로 〈1118호(개강호)〉
  • 이서하 편집장
  • 승인 2023.08.28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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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지역에서든 자유롭게 삶의 방향 선택할 수 있어야

“인프라가 모자라서 지방에 살기 어려워요.” 상경의 이유를 논할 때 흔히 등장하는 표현이다. 서울을 위시한 수도권과 소위 ‘지방’으로 불리는 여타 지역의 인프라 차이는 오래전부터 지적되어 왔다. 이에 각 지자체뿐 아니라 중앙정부에서도 균형 발전 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나 이미 고착화된 구조의 개선은 여전히 쉽지 않은 상황이다. 청년층이 수도권 및 거점 도시로 떠나며 지역 거주 인구가 지속해 줄어드는 데 더해 고령화까지 진행되며 지역 내 노동력 저하로 인한 생산성 및 지역경제 활력의 추락, 나아가 지역 소멸 문제도 자연스럽게 거론되고 있다. 2021년, 행정안전부는 국가균형발전 사업의 일환으로 인구감소지역에 △경기 가평군 △강원 고성군 △충북 괴산군 △전북 고창군 등 89개 지역을, 관심지역에 △대전 동구 △인천 동구 △부산 중구 등 18개 지역을 지정한 바 있다. 100개가 넘는 지역이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는 현재, 본지는 지역소멸의 근본적 문제와 그 해결 방안을 좀더 깊이 알아보고자 했다.

 

인프라의 차이는 곧 선택권의 차이

‘인프라’란 인프라스트럭처(infrastructure)의 줄임말로, ‘사회적 생산기반’을 의미한다. 경제활동의 기반을 형성하는 기초시설인 △도로 △하천 △항만 △공항 △농업 기반 등이 대표적으로, 시대가 변화하며 △학교 △병원 △공원 등 사회복지 및 생활환경시설을 이에 포함해 사용하고 있다. ‘서울공화국’ 역시 이러한 인프라가 수도인 서울에 집중되어 있기에 생겨난 표현이다.

▲사진은 국토연구원에서 1월에 발간한 ‘청년의 지역이동과 정착’ 보도자료의 시·도별 청년인구 만 명당 채용공고 건수 지표이다. (출처/ 국토연구원)
▲사진은 국토연구원에서 1월에 발간한 ‘청년의 지역이동과 정착’ 보도자료의 시·도별 청년인구 만 명당 채용공고 건수 지표이다. (출처/ 국토연구원)

국토연구원의 지난해 12월 보도자료에 따르면, ‘수도권→지방’ 유형과 ‘지방→수도권’ 유형을 막론하고 청년층의 지역이동 대표 요인은 ‘일자리’다. 2022년 10월 10일 기준 광역권별 청년인구 만 명당 채용공고 건수는 △수도권(30.0%) △충청권(17.0%) △제주권(16.0%) 등 순으로 높게 나타났으며, 시도별로는 △전남(69건) △경남(72건) △울
산·경북(76건) 순으로 낮게 나타났다. 단순 채용건수뿐 아니라 직무의 종류가 다양하지 않은 점도 문제다. 서울로 상경한 직장인 대구 출신 박 모 씨는 “살던 지역에 제조업, 서비스업 이외 직무가 많지 않아 아쉬웠다”라며 일자리 선택의 폭이 좁은 점을 지적했다.

출판업계 종사자 전진숙 씨(이하 전 씨) 역시 “거주하던 지역에서 계속 살고 싶었지만, 국어국문학과라는 전공을 살려 직업을 갖기 위해서는 무조건 상경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라며 문제를 제기했다. 전 씨는 “출판업은 대략적인 수치로 90%가 서울에 집중된 상황이라고 알고 있다. 이는 다른 업계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다”라며 “직장을 가지고 싶은 지역 청년들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창업을 하거나, 공무원 준비를 하거나, 상경을 하거나 셋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의견을 밝혔다.

일자리 외의 문화도 다르지 않다. 박 모 씨는 자정 이후의 교통편이 택시와 자차뿐이었다는 점을 지적하며 “시내 중심부에 직장과 유흥거리가 밀집해 있어 충분한 시간을 내지 않는 이상 접근하기 어려울 때가 많았다”라고 교통수단 및 편의 · 문화시설의 부족함을 논했다. 안동대학교 지역사회발전연구소 최돈승 소장(이하 최 소장) 역시 “수도권 외의 지방은 교통이 매우 불편하다. 직업을 구하고, 생필품들을 구매하는 것부터 어려운 문제”라며 도시의 탄탄한 인프라 구축이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한 청년층들의 니즈를 지방보다 적은 비용으로 충족시킬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고 분석했다. 이러한 문제는 단순 문화시설에 국한되지 않는다. 필요한 의료시설이 인근에 없어 타 도시나 서울로 이동해야 하는 경우, 이동 시간 때문에 골든타임을 놓치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인프라의 차이가 선택권을 제한할 뿐 아니라 생명 역시도 위협하는 것이다.

 

경기 침체와 지역 사업
① 지역의 특색을 담아
인구 감소로 인한 문제 중 대표적인 것은 경기 침체다. 최 소장은 “지역인구의 감소는 지역 경기의 침체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다양한 축제나 문화행사를 통해 관광객을 유치하여 경제를 활성화시킬 필요가 있다”라며 축제 및 관광산업의 필요성을 논했다. 방문객 수 자체도 중요하지만, 그 방문객들이 얼마나 소비와 연결될 수 있는지도 중요한 문제라는 것이다.

이러한 산업들은 파생 산업이 발생하기도 한다. 제주도는 불편한 대중교통의 대안으로 제주국제공항부터 해안도로 및 중문관광단지 일대를 운행하는 자율주행 자동차 ‘탐라 자율차’모빌리티 서비스를 시작했다. 또한 충청북도에 위치한 지역발전연구센터의 도시및지역계획학박사 원광희 센터장(이하 원 박사)은 “영동의 경우 포도 1차 산업 중심으로 소득을 창출했다면, 균형발전 사업을 통해 농가형 와이너리를 43개 육성함으로써 2차, 3차 산업을 융복합해 지역발전을 꾀하고 있다”라고 전략
사업 일부를 소개했다.

② 양날의 검
이러한 지역 사업에서 파생되는 문제도 없지 않다. 제주도의 진곶내는 지형이 험해 사고 위험이 크고, 일부 지역이 사유지인 만큼 출입 통제선을 만들었으나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기 위해 지속적으로 해당 지역에 침입해 갈등이 생기기도 했다. 강원도 양양은 서핑으로 유입된 청년층을 타깃으로 한 클럽이 다수 유치되었고, 이를 통해 ‘핫 플레이스’로 불리며 비약적인 성장을 이뤘다. 그러나 클럽 특성상 밤새 해당 지역의 야간 소음진동기준인 60데시벨을 훌쩍 넘긴 100데시벨이 측정될 정도로 음악 소리를 키우거나, 화려하게 불을 밝혀 인근 주민들의 수면을 방해하는 등 피해가 일어나고 있다.

최 소장 역시도 “하회마을은 안동을 대표하는 관광지지만 실제로 주민이 거주하는 공간이다. 일부 관광객들이 모르고 주민의 주거 공간을 침입하는 경우가 가끔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라며 관광으로 인한 피해 사례를 거론했다. 하지만 최 소장은 동시에 “지역의 고유한 브랜드 가치를 제공해 줄 수 있다는 측면에서 관계인구*를 늘릴 수 있는 좋은 수단이 될 수 있다”라며 축제 및 관광산업 유치의 불가피함을 논했다. 어떻게든 지역 내에서 소비가 발생해야만 지역경제가 버틸 수 있다는 것이다.

*관계인구 : 해당 지역에 거주하지 않더라도 부분적으로 방문하면서 지역에 기여할 수 있는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

 

오래 머무를 수 있는 지역

▲사진은 제주더큰내일센터에 청년들이 시도한 프로젝트 일부가 기록되어 있는 모습이다.
▲사진은 제주더큰내일센터에 청년들이 시도한 프로젝트 일부가 기록되어 있는 모습이다.

관계인구 역시 중요하지만, 지역이 장기적으로 발전하고 유지되기 위해서는 해당 지역에서 살아가고자 하는 인구가 필수적이다. 지역마다 청년 인구의 효과적인 정착을 위하여 청년정책에 힘쓰는 이유다. 제주도는 “일하고 싶은 곳에서 살기보다 살고 싶은 곳에서 일하기”를 표어로 내걸었다. 제주더큰내일센터를 위시한 청년센터들은 청년들의 각종 프로젝트를 지원하며 그에 필요한 교육을 제공하고 있다. 충북청년희망센터 역시도 청년창업 입주 기업 모집, 고립 및 은둔청년에 대한 실태조사 등의 정책을 펼치고 있다. 이외 전라북도, 경상북도 등 다양한 지역이 지역자원을 활용한 창업 프로그램 등을 통해 청년들의 지역 정착을 도모하고 있다.

이런 정책들은 지속되어야 실효성이 있다. 경상남도의 경우, ‘청년센터 온나’ 운영, 지역 청년단체 지원사업 등의 청년정책이 3년가량 시행되었으나 도지사가 바뀌자 청년정책들이 축소되거나 폐지되었다. 전 씨는 “지역의 고령화, 청년 유출, 지방 소멸 현상, 지역 청년들의 실업률을 이야기하려면 결국 지자체의 정책과 지원이 얼마나 실효성 있게 꾸준히 운영되고 있는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라며 “도지사나 지역 의원이 바뀌었다고 정책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일은 있어서는 안 된다”라고 정책 유지의 불안정함을 지적했다.

최 소장 역시 “청년층의 유입보다 중요한 것은 지역 내 청년층의 유출 방지”라며 지역 내에서의 탄탄한 인프라 구축이 필요함을 논했다. 또한 “뜬금없을 수 있지만 지역사회 발전의 핵심은 ‘엄마가 살기 좋은 곳’으로의 변화여야 한다”라며 “경험적으로 결혼을 하고 자녀가 있을 때, 거주할 지역을 결정하는 것은 아빠보다는 엄마일 가능성이 높다. 엄마가 살기 좋은 곳이 아이에게 좋은 곳이며, 아이가 살기 좋은 곳이 가족이 행복해질 수 있는 곳”이라며 지역이 청년뿐 아니라 여성과 아이에게도 살기 좋은 공간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국가균형으로 가는 첫걸음, 직시와 전환
각지에서 노력이 이어지고는 있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한 것은 아니다. 실효성 있는 국가 지원과 더불어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어야 하기 때문이다. 원 박사는 “하루가 멀다 않고 들려오는 지방소멸의 소식들에 지방은 여전히 불안 속에 있으며, 지난해부터 정부에서도 부처별 경쟁하듯 관련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라며 “올해 1월부터 시행된 인구감소지역지원특별법에 따른 인구감소대응기금이 대표적인 예인데, 지역이 지닌 현실적인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시작점이 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정책이 탁상공론이 아니라, 현재 지역이 처한 문제를 직시하고 해결을 위한 실질적인 대책을 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해결책을 통해 바뀌어야 할 것 중 하나는 ‘지방은 인프라가 적어 살기 어렵고, 척박하다’는 국민들의 인식이다. 인프라의 문제는 분명 선택권의 문제로 귀결된다. 단순히 인프라가 생기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택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전 씨는 “사실 요즘은 OTT 서비스가 발달해 (지방에 산다고 해서) 꼭 문화시설을 즐기지 못한다는 느낌은 못 받고 있다”라며 “종종 전해 듣는 서울 사람들의 인프라가 없어서 지방에 내려가 살 자신이 없다는 말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라는 입장을 표했다. 서울에 산다고 해서 한 달에 최소 한 번씩 전시를 보는 사람의 수가 많은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최 소장 역시 “단기적으로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개인적으로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교육이 유일한 해결 방안이라고 생각한다”라며 물질적인 성공보다 어떤 삶을 살 것인지, 어떤 가치를 추구할 것인지를 고민할 수 있게 하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오랜 시간 서울을 위시한 수도권 중심으로 흘러온 대한민국의 역사가 몇 가지 사업으로 단번에 바뀔 수는 없다. 서울이 지역보다 낫다는 인식 역시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고, 한동안은 그것이 사실일지 모른다. 그러나 각지와 중앙정부가 지역에서 직접 살아가는 이들과 상생하는 발전 방향이 무엇인지를 거듭 고민해 살기 좋은 터전을 만들고, 국민들이 지역을 바라보는 시선이 지금과 달라질 수 있다면 언젠가는 각지가 고루 발전한 대한민국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지역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수도권보다 더 큰 기회비용을 지불해야 동일한 것들을 누릴 수 있는 현 상황을 타개하고 어느 지역에 머물든 원하는 미래를 자유롭게 그릴 수 있는 대한민국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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