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된 순간, 혹은 영화 〈1118호(개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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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된 순간, 혹은 영화 〈1118호(개강호)〉
  • 박현수(국문 20) 학우
  • 승인 2023.08.28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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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수(국문 20) 학우
박현수(국문 20) 학우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파벨만스〉(2022)는 어두운 상영관이 무섭다는 아이를 영화광 부모가 설득하는 오프닝으로 시작한다. “불이 꺼질 건데 음악이 크게 나올 거니까 놀라지 마.”, “무서운 꿈도 있지만, 이건 좋은 꿈이지.”, “영화는 꿈이란다, 잊히지 않는 꿈.” 아이는 첫 영화관 경험의 생경함에 멍해지고, 이후 영화감독이 된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영화를 좋아하게 되는 계기’가 존재한다. 한 영화를 꼬집을 수 없다고 해도, 어렴풋이 기억하는 특정 시기 또는 감정이 마음에 오래도록 남아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이 형성된다.

나의 경우는 초등학생 때 CGV 아트하우스에서 심야 영화로 본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1939)였다. 미국 남북 전쟁 시대 ‘스칼렛 오하라’의 삶과 사랑을 담은 영화로,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라는 카피로 유명하다. 어릴 적 보았기 때문에 영화를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늦은 밤에 4시간에 다다르는 영화를 졸음을 참으면서 볼 만큼 매 장면이 놀라웠다.

1930년대에 촬영된 이 흑백 영화에는 아역 배우도, 청년 배우도, 할머니 배우도 등장한다. 모두가 하나의 ‘가짜의’ 이야기를 연기하기 위해 모인 것이다. 카메라에 찍히는 대상은 배우뿐이지만, 촬영장에는 감독부터 시작해 촬영감독, 조명감독, 미술감독 등 수많은 사람이 함께한다. 촬영본은 수십 년이 지나도 매체를 통해 남아 다시 누군가에게 아이로, 청년으로, 할머니의 모습으로 보인다. 영화란 인생의 순간성을 표현하기 위해 기술을 통해 영원성을 발명해 낸 것 같다.

이상은 박제가 되어 버린 천재를 아느냐고 물었지만, 영화는 그 자체로 박제하기 위해 태어났다. 그림처럼 고정된 것, 사진처럼 진실인 것, 문학처럼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생생한 역동성을, 가짜인 것을, 눈에 보이는 것을 인력과 기술, 자본을 동원하여 ‘박제’한다.

언제까지 영화를 좋아할 수 있을지 아득해지기도 한다. 코로나 이후, 관객 수가 이전에 비해 반으로 줄어든 영화 시장을 보며 영화관의 수명은 어디까지이고 앞으로의 지표는 무엇이 될지 생각해 본다. 영화를 보는 통로로서 영화관이 줄어도, 4D를 넘어 VR 특별관이 만들어져도, 영화와 드라마 간의 경계가 없어진다 해도 시대의 흐름 속에서 영화는 매체만 바뀔 뿐이다. 찰나의 순간을 영원처럼 느끼고 싶은 인간의 욕망이 존재하는 한, 영화의 본질은 지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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