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식성 인문학자의 세상읽기] 천 원짜리 밥 〈1114호〉
상태바
[잡식성 인문학자의 세상읽기] 천 원짜리 밥 〈1114호〉
  • 명대신문
  • 승인 2023.04.16 12:1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강부원 인문학협동조합원
강부원 인문학협동조합원

누구나가 먹는다. 아주 적게 먹거나 혹은 너무 많이 먹기도 한다. 때로는 좋은 음식만을 골라 먹거나 나쁜 음식인지를 알면서 계속 먹기도 한다. ‘먹방’을 보면서 먹는 사람도 늘었다. 과거에 먹은 음식이 아름다운 추억인 경우도 있지만, 누군가에게 음식은 그저 삶을 지속하는 생물학적 연료일 뿐인 경우도 있다. 먹는 모습과 먹기의 의미가 차이 나는 이유는 서로 간의 경제적 · 문화적 · 감정적 조건이 다르기 때문이다.

즉, ‘먹는 일’은 곧 특정 사회 구성원의 삶과 문화를 설명하는 가장 훌륭한 콘텐츠인 셈이다. 실제 인류는 ‘호모 쿠커스’의 삶을 살고 있는 유일한 동물이다. 음식이야말로 신의 축복이자, 지상의 행복이다. 축복과 행복을 온전히 누리며 좋은 것만 골라 먹는 사람들이 있다. 반면에 겨우 얻어먹거나 간신히 먹고 사는 사람들도 있다. 도처에 서로 다른 먹는 조건에 놓여 있는 사람들이 흩어져 있다. 대학도 예외가 아니다. 어떤 이들은 비싸고 좋은 음식을 먹으러 학교 밖으로 나가고, 누군가는 학식도 너무 비싸 편의점으로 발길을 돌리거나 심지어 굶기도 한다.

금년부터 몇몇 대학들이 학생들에게 아침 식사를 천 원에 제공하기로 해 화제가 된 바 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쌀 소비를 촉진하기 위해 지원하는 ‘천 원의 아침밥’ 사업의 일환이다. 정부가 천 원, 대학이 천 원을 각각 지원하고, 학생이 낸 천 원을 합쳐 도합 삼천 원짜리 학식을 천 원에 사 먹을 수 있게 만들었다. 쌀로 지은 밥을 포함하는 간소한 차림이다.

물론 어떤 학교는 이미 몇 년 전부터 자체적으로 그리 해왔다는 소식도 들린다. 이사장과 총장의 뜻이 곡진해 학생들 아침이라도 굶기지 않으려 시작했다는 말도 있고, 후배를 생각하는 동문 선배들이 기금을 모아 운영하는 곳도 있다는 후문이다. 풍족하진 않지만 천 원으로 밥 한 끼를 간단히 먹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학생들은 반기는 분위기다.

대학생들은 코로나 이후 급격히 오른 물가를 ‘밥값’을 통해 체감한다. 예전 학식은 대체로 오천 원 이내로 해결 가능했고, 학교 밖으로 나가도 만 원 정도면 제법 근사한 한 끼를 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시절은 옛말이 됐다. 이제는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다고 학식을 먹는 시대가 아니다. 오히려 가격 상관없이 학식 메뉴를 마음대로 고르는 사람이 부러움을 살 정도다.

2023년 현재 ‘천 원의 아침밥’을 운영하는 대학은 전국에 고작 마흔한 곳에 불과하다. 게다가 혜택을 받는 인원도 한정적이라, 아침마다 선착순으로 마감하니 눈치작전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100명에게만 밥을 주는 곳도 있고, 겨우 50명만 먹을 수 있게 하는 학교도 있다. 예산이 한정돼 있어 어쩔 수 없는 노릇이라지만 너무 야박하다. 안타깝게도 우리 학교는 아직 천 원으로 아침밥을 먹을 수 없다. 어서 빨리 지원 대상 학교도 늘리고, 밥을 먹을 수 있는 학생 수도 통 크게 늘렸으면 좋겠다.

다행스럽게도 정치권에서도 대학의 천 원 학식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얼마 전에는 신임 여당 대표가 한 대학 캠퍼스 식당을 방문해 학생들과 함께 밥을 먹으며 천 원 학식을 전국적으로 확대하겠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정부가 먼저 재정 지원을 통해 대학생들을 위한 천 원 학식을 확대 보급하겠다니 환영할만한 일이다. 다음 총선에서 대학생 표를 얻으려는 목적이겠지만, 당장 주머니 사정이 아쉬운 학 생들에게는 나쁘지 않은 소식이다.

천 원 학식은 대학생들이 누릴 수 있는 보편적 복지의 상징이다. 천 원은 밥을 먹는 학생들이 지불하는 최소한의 자존심이자 양심이기도 하다. ‘정부’와 ‘대학’과 ‘학생’이 각각 낸 천 원을 통해 완성된 밥 한 끼는 우리 사회가 공동으로 마련한 혜택인 동시에 한 개인이 마음으로 깊이 감사를 표한 결과물이기도 한 셈이다. 그러니 역설적으로 정부의 지원과 대학의 의지 그리고 학생들의 적극적인 요구가 없다면 천 원짜리 밥이 전국의 모든 대학으로 확산될 가능성은 별로 없다.

천 원 학식이 확산돼 인플레이션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대학생들에게 조금이나마 비빌 언덕이 되길 바란다. 대학에서마저 ‘먹는 일’이 서로 간의 삶의 격차를 잔인하게 드러내는 행위가 된다면 너무 우울하다. 제도와 마음이 한데 결합돼 실현된 ‘천 원의 아침밥’이 학생들의 삶을 바꿀 수 있는 변화의 동력이 된다면 얼마나 든든하겠는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 인문캠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거북골로 34 (명지대학교) 학생회관 2층
  • 자연캠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명지로 116 학생회관 2층
  • 대표전화 : 02-300-1750~1(인문캠) 031-330-6111(자연캠)
  • 팩스 : 02-300-1752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승환
  • 제호 : 명대신문
  • 창간일 : 1954년 11월
  • 발행인 : 유병진
  • 편집인 : 송재일
  • 편집장 : 한지유(정외 21)
  • 디자인·인쇄 : 중앙일보M&P
  • - 명대신문의 모든 콘텐츠(영상, 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명대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jupress@hanmail.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