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이념대립 속에
또 밀려나는 진실들
이름 찾아 많이도 헤맸어♪
-뮤지컬 더 라스트 키스, 〈사랑이야〉
지난 3일, 제주4 · 3평화공원에서 ‘제75주년 제주4 · 3희생자 추념식’이 열렸다. 제주 4 · 3사건(이하 4 · 3)은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1948년 4월 3일 발생한 소요 사태 및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 충돌과 진압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이다.
‘사건’은 공식 명칭이 아니다. 7년 7개월간 벌어진 4 · 3은 여러 국면이 혼재하고, 정의하기도 어려워 꾸준한 논의가 필요하다. 그러나 4 · 3특별법과 진상조사보고서 등으로 주류 역사학계와 정부가 국가공권력에 의한 대규모 민간인 희생 사실을 인정했음에도 이념 갈등을 이용한 논점 흐리기는 여전하다.
태영호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3 · 8 국민의 힘 전당대회 당시 “제주4 · 3사건은 명백히 북한 김일성의 지시로 촉발됐다”라고 말해 논란을 빚었다. 자칭 서북청년단은 4 · 3평화공원을 찾아 망언을 내뱉었고, 윤석열 대통령은 역대 보수 세력 대통령들이 그랬듯 추념식에 불참했다. 추념사마저 명예 회복 대신 문화관광을 말하니, 아무래도 이들은 ‘반공’으로 학살이 정당화되는 시대에 낙오된 듯싶다.
젠더, 세대, 지역 등 곳곳에서 갈등이 팽배한 시대다. 화합이 절실한 오늘날, 국민의 오랜 고통을 해소하는 것은 그 초석이 될 것이다. 1만 4,738명이 학살당했다. 어떤 이유로도 용인될 수 없는 사건이다. 그러나 75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사건에는 이름이 없다.
사건에 대한 시각은 이름에서 드러나고, 계속되는 왜곡은 바른 이름의 필요를 증명한다. ‘통일운동’이든 ‘항쟁’이든 제주4 · 3평화 기념관의 빈 비석 위로 4 · 3의 정확한 이름이 기록되는 그날까지, 정부는 무의미한 갈등 조장과 외면 대신 역사를 직시하고 4 · 3에 대한 건설적인 논의를 해나가야 할 것이다.
반성 없이 미래 없고
이념 위에 사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