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 동아리, 학회 등 대부분의 학내 활동은 종강과 함께 활동을 마친다. 그러나 여기 종강을 마친 이후에 바빠지는 동아리가 있다.
바로 인해극단(회장 박경규 ‧ 영문 16)이다. 친구들, 선후배들과의 연말 파티도 뒤로한 채 공연 준비에 매진하는 인해극단은 올해로 35년 전통을 자랑한다.
인문대학 내 학회로 시작했지만, 이후 다른 단과대 학생도 함께하며 그 규모가 커졌다. 지난해부터는 양근애 문예창작학과 교수가 지도 교수로 합류했다.
지난해 12월 말, 코로나19 범유행으로 인해 3년 만에 정기 공연을 재개한 인해극단을 명대신문이 만나봤다.
"인물마다 개성이 강한 작품으로 선정했습니다" - 자기소개와 작품 선정 이유
송민석(이하 민석) : 반갑습니다. 먼저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박경규(이하 경규) : 인해극단 단장을 맡고 있고, 2022년 겨울 정기공연 작품 <완벽한 타인>에서 강태수 역을 맡은 박경규입니다.
안용욱(이하 용욱 ‧ 일문 18) : 이번 작품에서 연출을 맡았던 안용욱입니다. 전반적인 연기 지도와 동선 파악 등을 담당했습니다. 기본적인 연기력을 다지고, 캐릭터에 맞는 연기를 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게 제 역할이죠. 연기가 처음인 친구들도 환영입니다.
어영선(이하 영선 ‧ 정외 19) : 반갑습니다. 저는 고준모 역을 맡은 어영선입니다.
권수현(이하 수현 ‧ 국통 19) : 안녕하세요. 예진 역 권수현입니다. 잘 부탁합니다.
민석 : 3년 만에 다시 오른 무대인데요. 많은 작품 중에서 <완벽한 타인>을 선정했던 이유가 있을까요.
용욱 : 제가 단장님께 추천했어요. 한정적인 공간에서 이뤄져서 연극화하기에 좋다고 생각한 게 첫 번째 이유이고요. 두 번째로는 인물마다 성격과 개성이 워낙 강해서 작품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분명히 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영선 : 한 공간에서 동시에 보이기 때문에 누가 대사를 치거나 행동, 몸짓 하나하나에 많은 관객들이 추리하고 유치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현 : 제가 생각하기에도 스토리 전개가 긴장감이 있고, 심리전도 재미있고, 등장인물이 여러 명이어서 연습하는 동안 꽤 재미있었어요.
"발성은 물론 눈빛까지도 잘 파악해야…"- 3달 동안의 준비 과정을 돌이켜보다
민석 : 공연은 학기 말에 하지만, 연습은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한단 말이에요. 그동안 어떤 연습 과정을 거쳤는지가 궁금합니다.
경규 : 일단 대본을 쭉 읽으면서 자신이 맡은 인물의 성격을 파악하는 게 먼저였죠. 제가 맡았던 태수 역은 다른 사람들이 봤을 때 아내한테 되게 못되게 굴어요. (웃음) 사람들 간의 관계에서 우위를 점하고자 하는 욕구가 강해요. 지고는 못 사는 성격이랄까.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태수의 태도가 바뀌게 돼요. 단순히 대본을 읽는 것만으로는 되지 않기 때문에, 제가 맡은 배역 뿐만 아니라 극중 제 아내인 수현 역도 잘 이해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영선 : <완벽한 타인>은 반전을 거듭하는 스토리가 전개되는 게 특징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어떤 사람이 이러이러한 얘기를 나누고 있는 동안 다른 사람은 어떻게 리액션을 하고 있는지, 어떤 표정을 보이는지 파악하는 것도 중요했던 것 같아요.
수현 : 연습하다보니 배우들 간의 눈빛을 잘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연습을 거듭할수록 공기까지 점점 무거워지며 긴장감이 높아지는데 관객들이 그 흐름을 잘 탈 수 있도록 저희가 잘 준비했던 거 같아요.
용욱 : 저는 전반적인 연출을 담당했던 사람으로서, 배우마다 어떤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지, 그 속에서 어떤 심리 변화가 생기는지를 주목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준비해왔습니다. 어떤 배역은 상대방의 비밀을 너무 파헤치려고 하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하고요. 또, 숨겨왔던 비밀이 밝혀졌을 때 나타나는 갈등이나 파국을 어떻게 풀어가는지를 느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자신의 캐릭터를 형성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 나중에서야 영화 원작을 본 이야기
민석 : 듣다 보니 연습을 하면서 단순히 대사의 연기적 톤, 발성만 체크하는 것이 아니라 비언어적인 요소들까지 챙겼다는 게 느껴져요.
용욱 : 그렇죠. 그거를 단계별로 짜서 초반에는 대본을 쭉 리딩하며 대사를 뱉는 연습에 집중하고, 그 다음에는 비언어적인 대사를 전달하는 것, 그리고 대사를 듣고 어색하지 않게 반응하는 방법 등등 이러한 것들을 체계적으로 연습을 해왔죠. 그간 잘 따라와 줘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경규 : 연습을 어느 정도 마친 후에는 다같이 도서관에 가서 원작을 같이 보기도 했습니다.
민석 : 도서관에서요?
용욱 : 네네. (웃음) 연극 연습을 시작하고 나서 단원들한테 한동안 <완벽한 타인> 영화 원작을 못 보게 했습니다. 원작을 흉내를 내지 않고 자신의 캐릭터로 소화하길 바라는 마음에서였죠. 그래서 충분히 연습하며 각자 배역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다 같이 방목학술정보관에 있는 소극장에 가서 관람했습니다.
"조명과 박수 … 그것만큼 중독적이고 달콤한 건 없어요" - 인해극단을 놓을 수 없는 이유
민석 : 개인 시간을 할애하면서까지 준비하면서 많이 힘들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해극단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용욱 : 솔직히 대학생 신분으로 학업도 병행하고 그 외에 개인 시간이 있어서 마냥 쉽지만은 않죠. 그런데 무대 위에 올라가서 극을 올리며 조명을 받고 객석에 있는 사람들의 눈빛을 바라보고 박수를 받으면 그것만큼 중독적이고 달콤한 게 없는 것 같아요. 좀 과장하자면 그거 하나만 바라보고 한다고 할 수도 있겠네요.
경규 : 저 같은 경우는 인해극단에서 6년째 활동을 하고 있는데, 항상 준비하면서 연습에 연습을 거듭해야 하므로 힘든 것은 사실이에요. 그럼에도 극을 준비하는 이유는, 정말 다른 사람들이 내 연기를 보고 내가 나를 보면서 울고 웃고 하는 모습들을 보면 그 3개월 동안 힘든 것들이 단번에 날아가요.
수현 : 연습을 마치고 나면 자신이 맡은 배역에 푹 빠졌다가 나오는 쾌감이 있거든요. 그게 제일 큰 것 같아요.
영선 : 한마디로 말하자면, 재밌어서요. 그리고 솔직히 안 힘들고 재미없이 연습하려면 3개월의 시간을 쏟을 이유는 없잖아요. 매일같이 연습하면서 단원들 간에 '정'이 생기는 것도 무시 못 할 이유기도 하고요. (웃음) 또 앞서 다른 분들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연극이 딱 끝나고 나서의 허망함과 뿌듯함이 공존하는 거 같아요.
"단원 간에 유대감이 있었기에 공연도 잘할 수 있었어요" - 선후배 간 끈끈한 정을 만들다
민석 : 35년의 전통을 지닌 인해극단만의 특징이 있을까요?
경규 : 1기부터 지난해 뽑은 34기까지 교류가 매우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데요. 실제로 매 학기 한두 차례 '선배님과의 만남'이라는 행사를 여는데, 최근 행사에서는 6기와 17기 선배님들께서 오셔서 좋은 조언도 남겨주시고 가까운 친구처럼 친근하게 대해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용욱 : 저희 극단은 활동 중에서 1번으로 여기는 게 역설적으로 연극은 아니에요. 연극이라는 공연을 올리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연극을 올리기 위해서는 단원들 간 교류가 활발하고 유대감이 형성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밑바탕 속에서 연습을 하고 공연을 했기에 오래 지속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영선 : 아 참, 올해부터 지도 교수님을 새로 모시게 됐습니다. 문예창작학과의 양근애 교수님이신데요. 양 교수님도 과거 연극을 만드셨던 분이기 때문에 단순히 행정적인 도움을 넘어, 연극 선배로서 연극에 대한 조언을 되게 많이 해주세요. 이번 공연에서도 아이디어를 많이 얻었고요.
"아직은 취미이지만,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 동아리 너머로, 새로운 꿈을 품다
민석 : 인해극단에서의 활동이 졸업 후 진로에 영향을 끼쳤나요?
용욱 : 졸업 후는 모르겠지만, 일단 저는 지금 자연캠에서 영화 전공도 같이하고 있고, 인해극단 선배들과 같이 모여서 단편 영화를 제작하기도 한답니다.
경규 : 저는 인해극단을 하면서 연기에 더 관심이 커진 것 같아요. 부끄럽지만, 저도 연기하는 배우 쪽으로 준비를 하고 있답니다.
영선 : 1학년 때 들어오고서 군 복무를 마치고 오랜만에 정기공연 무대를 섰는데요. 아직은 취미로 하고 있지만, 앞으로 또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어요. (웃음)
수현 : 이번 공연이 저에게는 처음이라 설레기도 하고 긴장도 되는데, 일단 첫 공연을 잘 마치는 게 가장 중요한 거 같아요.
연극으로 풀어나가는 인간관계, 앞으로가 기대되는 인해극단
인터뷰 말미, 인해극단의 '인해'가 무슨 뜻인지 물어보았다. 사람 인(人)자에 풀 해(解)자라고 한다. 직역하면 '인간 해방'이고, 요즘 대학생들이 이해하기 쉽게 표현하자면 '사람 간의 관계를 풀어내다'라고 해석할 수 있다. 사람과 사람 간에 복잡미묘한 감정을 풀어내는 과정을 '연극'이라는 도구를 통해 조금씩 알아가는 건 분명 의미있는 일이다. 연극을 하는 사람이든, 연극을 보는 사람이든 말이다.
안용욱 학우와 어영선 학우의 말을 빌리자면, 여러 개의 쇼트로 나뉘는 영화와 달리 연극은 한 공간에서 동시에 보이기 때문에 대사 한 구절, 행동과 몸짓 하나하나에 관객의 반응이 바로 보이는 재미가 있다고 한다.
이제 막 개강한 이번 학기. 석 달이 지나 6월이 오면 캠퍼스 곳곳에 또다시 정기 공연을 알리는 포스터가 붙여질 것이다.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앞으로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