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혜탁의 트렌드 관찰기] 석촌호수와 러버덕 〈110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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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혜탁의 트렌드 관찰기] 석촌호수와 러버덕 〈1107호〉
  • 석혜탁 경영 칼럼니스트
  • 승인 2022.10.11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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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혜탁 경영 칼럼니스트
석혜탁 경영 칼럼니스트

“도시에서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해요. 지금의 도시에는 사람을 만나고 앉아서 이야기하려면 돈을 내고 들어가야 하는 공간밖에 없어요. 서로 다른 경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같은 현장 속에 있을 가능성이 점점 없어지는 거죠. 이런 점들이 밀레니얼이 맞이할 더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해요.” 홍익대 건축학부 유현준 교수의 메시지다. ‘건축으로 세상을 조망하고 사유하는 인문 건축가’라는 수식이 아깝지 않은 통찰이다.

유 교수는 한 일간지에 기고한 칼럼에서 같은 도시에서 수십 년을 살아도 시민들 간에 ‘공통의 추억’을 향유하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씁쓸한 진단이다. 부자와 그렇지 않은 사람이 한 공간에 있을 가능성이 희박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그는 이런 결론에 다다른다. 도시에는 공짜로 머물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탁견이다.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도서관은 누구에게나 평등하지만, 이른바 ‘카공(카페에서 공부하기)’만 해도 일정 비용이 소요된다. 매일같이 노트북을 들고 과제를 준비하고, 각종 대외활동 업무를 수행해야 하는 대학생에게는 카페에 가는 것도 분명 진입장벽이 있는 것이다. 커피 가격도 천차만별이다. 독서실과 같은 느낌의 스터디 전문 카페도 증가하고 있다. 쾌적함과 편리함을 갖춘 만큼, 만만찮은 이용료가 책정된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회색 도시에는 도서관, 공원, 벤치와 같이 누구나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이 부족하다. 이런 점이 ‘닫힌 사회’를 만든다. 최근 남녀노소 많은 사람이 모여 분주하게 스마트폰 카메라를 꺼내 드는 곳이 있다. 바로 서울 송파구 잠실동에 위치한 석촌호수다. 석촌호수는 산책하기도 좋고, 근처에 쇼핑과 식사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즐비해 원래 사람들이 늘 붐비는 곳이라지만, 지금의 석촌호수 방문 ‘열풍’은 평소 때와 규모와 위세가 남다르다. 사흘간 7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곳에 운집했다. 8년 만에 ‘러버덕(Rubber Duck)’이 귀환했기 때문이다. 

대형 벌룬의 원조 격이자 국내에서 공공미술의 바람을 본격적으로 불게 한 러버덕. 2014년 러버덕을 보러 500만 명이 잠실을 찾았다. 이번엔 높이 18m, 가로 19m, 세로 23m로 이전보다 몸집이 더 커졌다. 

유통 대기업과 기초자치단체가 함께 주관하는 ‘러버덕 프로젝트 서울 2022’가 연일 화제를 모으고 있다.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를 건네고 있는 이 귀여운 대형 오리를 보는 데 그 어떤 비용도 부과되지 않는다. 일종의 미술 전시인데도 말이다. 잠실 석촌호수는 위에서 말한 대로 그야말로 ‘공짜로 머물 수 있는 공간’이다. 

그래도 SNS에 해시태그를 달아 ‘인증샷’을 올리기도 하는데, 근처 쇼핑몰에서 커피라도 한 잔 마셔야 하지 않겠냐고? 그런 얄팍한 부가조건 따위는 일절 존재하지 않는다. 쇼핑은 선택사항이지 의무사항이 아니다. 볼거리도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다. 무료로 즐길 수 있는 이벤트도 많다.

물론 석촌호수와 롯데월드몰은 도보로 쉽게 이동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깝게 연결되어 있다. 자연스럽게 고객의 점포 방문을 유도할 수 있는 것이다. 잠실에는 롯데가 운영하는 쇼핑몰뿐 아니라 영화관, 아쿠아리움, 호텔, 면세점, 마트, 가전 양판점, 편의점, 놀이공원 등 다양한 유형의 공간이 자리 잡고 있다. 고객은 이 거대한 복합단지에서 어느 곳으로 발걸음을 향할지 편하게 선택만 하면 된다. 

그렇다고 러버덕 프로젝트가 롯데그룹에게만 이로운 이벤트는 결단코 아니다. 석촌호수 인근에는 방이동 먹자골목과 송리단길, 카페거리가 있다. 실지로 8년 전 러버덕 전시는 주변 지역 상권의 월평균 방문객과 매출을 각각 20%, 15%씩 끌어올렸다는 분석이 있다. 이 통통한 오리가 유통 대기업의 매출 증대뿐 아니라 지역 경제 활성화도 견인하는 것이다. 지역 상생이 호숫가에서 출발했다는 점이 적이 이채롭다.

‘공통의 추억’이 부재한 살풍경한 잿빛 도시의 모습. 그러나 호수 수면 위로 동동 떠 있는 러버덕은 우리에게 ‘공통의 추억’을 선사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의 슬로건은 ‘즐거움을 세계에 퍼트리다(Spreading joy around the world)’이다. 그 즐거움을 함께 느끼는 데 자격 조건을 설정해 놓지 않은 것이 이 공공미술 프로젝트가 크게 성공한 원동력이지 않았을까? 석촌호수에는 입장료가 없다. 아무런 차별이 없는 공간이다. 이번 주말, 석촌호수에 가봐야겠다. 8년 만에 러버덕을 만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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