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진칼럼] ‘못 가볼 뻔했던’ 길이 더 아름답기를 〈110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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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진칼럼] ‘못 가볼 뻔했던’ 길이 더 아름답기를 〈1107호〉
  • 이영아 방목기초교육대학 교수
  • 승인 2022.10.11 00: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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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아 방목기초교육대학 교수
이영아 방목기초교육대학 교수

“대학 입학식은 6월 초에 있었다. 대학로도 눈부신 6월이었다. 그러나 1950년 6월이었다. 하필이면 왜 5월 졸업식이었을까는 굉장한 행운이었지만 하필이면 왜 50년 6월이었을까는 무서운 재난이었다. 입학식 치르고 며칠 다니지도 않아 6.25가 났다. (...) 내가 당초에 되고 싶었던 건 소설가가 아니었다. 다만 대학에 가서 학문을 하고 싶은 꿈에 부풀어 있었다. 무엇이 되는 건 그다음 문제였다. (...) 막 대학 문턱에 들어선 초년생에게 대학은 진리와 자유의 공간이었고, 만 권의 책이었고, 그 안에 숨은 아름다운 문장이었고, 지적 갈증을 축여줄 명강의였고, 사랑과 진리 등 온갖 좋은 것들이었다. 나는 그런 것들로 나만의 아름다운 비단을 짤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막 베틀에 앉아 내가 꿈꾸던 비단은 한 뼘도 짜기 전에 무참히 중턱을 잘리고 말았다.” (박완서,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현대문학, 2010)

소설가 박완서는 1950년 6월 서울대 국문과에 입학했다. 당시는 학제가 바뀌던 과도기여서 4월에 대입 시험을 치르고 6월에 입학했다고 한다. 그런데 1950년은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듯이 한국전쟁, 소위 ‘6.25 전쟁’이 있었던 해이다. 그녀가 입학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전쟁이 발발해 학교도 휴교하게 됐고, 전쟁 중 졸지에 소녀 가장이 됐던 박완서는 끝내 대학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그래서 박완서는 당시를 회고하며 자신을 스스로 “스무 살에 성장을 멈춘 영혼”이라고 규정한다.

박완서는 위 수필뿐 아니라 자신의 많은 작품에서 당시 그녀가 꾸었던, 그러나 끝내 이루지 못했던 대학 생활에의 꿈과 희망들에 대해 자주 회고했다. 대학로를 걸으며 “스무 살에 꿀 수 있는 온갖 황홀한 꿈 때문에 그 길이 그렇게 좋았던지, 그 길의 나무와 꽃과 풀과 훈풍이 그렇게 가슴을 울렁거리게 했는지, 그 길은 단순한 자연의 아름다움이라고만은 볼 수 없는 매혹으로 가득 차 있었다.” (박완서,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세계사, 2008)라던 그녀에게는 ‘못 가본’ 대학생의 길에 대한 미련이 두고두고 회한으로 남아있었다.

팬데믹이라는 재난과 함께 대학생이 된 2020년 이후의 우리 학생들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코로나19의 유행이 시작되던 2020년 3월, 나만 해도 개강이 한두 주 연기될 때는 아주 잠깐이면 해결되겠거니 하는 가벼운 마음이었다. 갑자기 비대면 강의를 해야 했을 때는 조금 당혹스러웠지만, 그것 역시 몇 주만 버티면 끝날 줄 알았다. 그런데 그다음 학기에도, 그다음 해에도 계속 비대면 수업이 이어지자 이러다 영영 대학교라는 물리적 공간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은 아닐까 점점 불안해졌다. 

그러다 가까스로 올해 1학기 중반부터 대면 수업이 재개되었다. 이 년여의 시간 만에 강의실에서 학생들을 처음 만났을 때의 느낌은 쉬이 잊히지 않는다. 그동안 컴퓨터 속의 영상과 텍스트로만 만나왔던 그 학생들이 내가 있는 공간에 실재하고 있다는 것, 순간 울컥하는 마음이 들 정도로 반갑고도 신기했다.

2학기 전면적인 대면 수업이 시작되니 학교 전체가 와글와글한 느낌이다. 수업 중에 알게 된 친구들과 인사 나누는 모습, 복도에서 깔깔대는 웃음소리, 식당에서 옹기종기 모여 밥 먹는 모습, 엘리베이터에서부터 현관 앞까지 늘어선 기다란 줄, 학교 안 벤치에 앉아 하소연과 위로를 주고받는 소리…. 이 모든 것들이 다 너무 예쁘고 대견하기까지 하다. 더구나 체전과 축제로 이어진 최근의 이벤트들 덕분에 학교에는 흥이 흘러넘친다. 경기장과 무대를 향해 환호를 보내는 학생들의 모습에서 길거리에 있던 풀 하나, 꽃 한 송이, 바람 한 자락에도 가슴이 울렁거리던 스무 살 박완서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대학 생활에의 ‘로망’들을 실현해볼 시간이 드디어 온 것이다. 

그런 모습들에서 대학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 학생들이 강의실 안과 밖에서 사람들과 만나고 이야기하고, 도움도 주고받고, 시행착오도 겪으면서 함께 성장하고 연대하는 방법을 배우는 공간. 그 과정이 매우 번거롭고 귀찮더라도 이곳에서만 배울 수 있는 무언가가 분명히 있는 것이다. 학기 초보다 더 빛나는 학생들의 눈빛에서, 더 커진 목소리에서, 더 자연스러워진 스킨십들에서 대학 생활의 그러한 힘이 느껴진다. 학교생활의 모든 것이 만족스럽지는 않겠지만, 어렵게 되찾은 이곳에서 학생들이 좀 더 풍요롭고, 좀 덜 외롭게 지낼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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