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펭귄의 어떤 시선] 벌 죽이면 벌받을 지도 몰라 〈110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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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펭귄의 어떤 시선] 벌 죽이면 벌받을 지도 몰라 〈1106호〉
  • 남주원 뉴스펭귄 기자
  • 승인 2022.09.26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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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원 뉴스펭귄 기자
남주원 뉴스펭귄 기자

‘벌’하면 으레 두 가지 이미지가 떠오른다. 첫 번째는 꿀벌, 말벌, 호박벌 등 벌목의 곤충이다. 두 번째는 잘못하거나 죄를 지은 사람에게 주는 고통이다. 어쩌면 이 두 벌은 서로 맞닿아 있을지도 모르겠다. 기후 위기라는 연결고리를 사이에 두고서 말이다.

어렸을 적 나는 벌이 나와 전혀 상관없는 존재인 줄 알았다. 나에게 벌은 그저 벌집을 만들어 달콤한 꿀을 제공하는 곤충, 가까이 날아오면 쏘일까 무서운 곤충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당연히 벌이 생태계에 끼치는 영향은 알지 못했다. 벌이 처한 현실을 궁금해한 적도 없다.

벌에 대한 지극히 안이한 태도, 비단 나 혼자만 저지른 잘못 같지는 않다. 평소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은 사람일지라도 벌에 관해서는 별다른 경각심이 없는 경우를 자주 봤다. 원래 어떤 것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부분은 그것의 부재가 드러나기 전까진 얼마나 중요하고 소중한지 깨닫기 쉽지 않은 법이니까.

그렇게 꿀벌은 사라지고 있다. 꿀벌 실종과 함께 세계 종말설에 사이렌이 울리자 이제서야 사람들은 심각성을 실감한다. “꿀벌이 사라지면 4년 안에 인류도 멸종할 것.” 항간에 떠도는 검증되지 않은 이야기지만, 아인슈타인이 이 같은 예언을 남겼다는 소문이 진실처럼 퍼진데도 다 이유가 있다.

그만큼 꿀벌이 우리 생태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전 세계 사람이 먹는 작물 중 75% 이상이 꿀벌을 비롯한 곤충의 수분에 의존하고 있다. 꿀벌은 작물, 과일, 채소, 식물 등 수분 작용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즉, 꿀벌 개체수가 감소하면 생태계는 물론 인류 식량안보에도 심각한 문제가 생긴다는 얘기다.

꿀벌이 사라지는 원인으로는 기후, 바이러스, 농약, 도시화, 빛 공해, 태양광, 전자파 등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나 그 중심에는 ‘기후 위기’가 있다. 인간 활동에 의한 지구가열화(지구온난화)가 꿀벌 대량 실종 사태를 야기했다는 주장에 국내외 전문가들은 모두 동의하는 추세다. 이상기후로 인해 개화 시기와 꿀벌의 활동 시기가 엇갈리는 생태 교란이 발생할 뿐만 아니라 온도 변화에 민감한 꿀벌은 면역 체계가 약해진다. 결국 면역력이 떨어진 벌에게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발현되거나, 바이러스를 막기 위한 살충제 과다 사용 등으로 죽음에 이른다.

꿀벌만이 아니다. 호박벌 역시 기후 위기로 멸종 대위기에 직면했다. 크고 뚱뚱한 몸집과 복슬복슬한 털을 가진 호박벌은 꿀벌보다도 훨씬 강력한 꽃가루 매개 곤충이다. 이들은 다양한 야생식물과 농작물의 주요 수분자 역할을 한다. 호박벌이 사라지면 생물다양성이 줄고 인류를 포함한 수많은 종이 위협에 처할 수 밖에 없다.

우리는 공룡시대 종식 이후 세계에서 가장 크고, 가장 빠른 ‘여섯 번째 대멸종’ 사건에 들어섰다. 전문가들은 호박벌이 현재 대멸종과 일치하는 속도로 사라지고 있으며 몇십 년 안에 절멸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이상고온 현상에 호박벌이 대량절멸의 길로 내몰리자, 할리우드 스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호박벌 관련 기사들을 SNS에 공유하며 발 벗고 나서기도 했다. 유럽과 미국 등지에서는 벌 전용 호텔과 정류장을 설치하고 꿀벌에게 시민권을 부여하는 등 파격적인 조치를 취하고 있다.

꿀벌이나 호박벌에 비해 다소 공포의 대상으로 여겨지는 말벌에 대해서도 공존의 목소리가 퍼지는 모양새다. 최근 말벌을 죽이지 않고 잡는 다양한 ‘꿀팁’이 온라인상에서 공유되고 있다. 실내에 들어온 말벌을 성냥갑이나 유리컵으로 잡아 바깥에 풀어주는 등 공생을 실천하는 것이다.

말벌은 종종 사람이나 꿀벌을 공격해 많은 이들에게 부정적으로 인식돼 있지만 이들 역시 생태계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주요 꽃가루 매개자인데다가 최상위 포식자인 말벌 덕분에 곤충 생태계의 균형이 유지되기 때문이다. 또 거의 모든 종류의 해충을 잡아먹는다고도 알려져 있다.

“벌을 구하는 것은 곧 지구를 구하는 일.” 이탈리아 비질리 델 푸오우코우 소방대가 벌집을 구조하면서 남긴 메시지다. 지구가 인류에게 무시무시한 벌(罰)을 주기 전에 벌을 지켜내야만 한다. 벌들이 사라진 지구에 미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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