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혜탁의 트렌드 관찰기] 패션의 멋과 지속가능성 〈110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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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혜탁의 트렌드 관찰기] 패션의 멋과 지속가능성 〈1106호〉
  • 석혜탁 경영 칼럼니스트
  • 승인 2022.09.26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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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혜탁 경영 칼럼니스트
석혜탁 경영 칼럼니스트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이 화두이다. 소비의 최전선에서 고객의 이목을 끌기 위해 다각도로 노력하고 있는 패션업계도 이 개념에 주목하고 있다. 매출 진작, 점포 확장이라는 것도 소비자가 발을 딛고 있는 사회와 지구가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고 있어야 가능할 터이다. 할인행사, 경품 추첨 등 온갖 프로모션이 수를 놓던 쇼핑 공간에서도 ‘지속가능성’을 지향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마주하게 된다. 놀라운 변화다.

SPA(제조 · 유통 일괄) 브랜드 매장에 들어섰더니 하얀색 상자가 눈에 들어온다. “더 이상 입지 않는 옷을 넣어주세요. 새로운 주인을 찾아드립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패스트 패션 브랜드가 헌 옷 수거 캠페인을 전개하다니! 약간 모순이 아닌가 싶기도 하면서도, 동시에 이채롭고 의미 있는 기획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옷을 일회용품처럼 여긴다며 환경단체와 심지어 유럽연합(EU)에도 강력한 경고를 받은 브랜드가 의류 재활용을 통해 국내외 소외계층을 돕고, 더 나아가서 의류 재순환에 방점을 찍음으로써 환경문제 해결을 목표로 삼고 있는 비영리단체와 손을 잡게 된 것. 지금 오프라인 유통 현장에서 목격되는 거센 움직임이다. 이 브랜드는 탄소포집 기술을 활용한 드레스까지 선보이기도 했다.

화려하고 도회적인 이미지의 패션업계에서까지 왜 지속가능성에 눈을 돌리는 것일까? 유엔환경계획(UNEP)의 조사에 따르면, 패션업계는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에 적게는 2% 많게는 8%가량의 책임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온실가스 배출의 ‘주범’은 아닐지 몰라도, 공범 중 한 무리는 되는 것이다.

우리가 평소에 편하게 입는 청바지 한 벌을 제작하는 데 어느 정도의 물이 필요할 것 같은 가? 4인 가족이 일주일 정도 쓸 수 있는 양인 7천여 리터의 물이 사용된다. 청바지 특유의 색감을 표현하기 위해 쓰인 물이 재활용될 리 만무하다. 또한 미세 플라스틱의 온상인 합성섬유는 쉽게 썩지 않을 뿐 아니라, 제조과정에서 온실가스를 적잖이 배출한다. 재고품의 폐기도 환경에 큰 부담을 주는 골칫거리이며, 열악한 근로환경에 대한 비판도 끊이지 않는다.

이제 SPA 매장에 난데없이 헌 옷 수거함이 설치된 맥락이 이해될 것이다. 단순히 기업의 이미지 홍보 차원의 반짝 이벤트가 아니다. 기업 경영이 지속되려면, 사업 방향과 체질 또한 지속가능성에 무게중심을 실어야 한다. 이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영역이다. 재활용 섬유 비율 상향, 미세 플라스틱 배출 억제 등 각국 정부의 관련 규제 또한 가속화하고 있는 실정이다.

국내의 한 패션기업은 윤리적 패션을 추구하는 소셜벤처를 인수하기도 했다. 이 기업의 남다른 경영철학인 ‘리버스’와 잘 어울리는 조합이다. 자연적으로 채취한 양털로 상품을 만들고, 아시아 지역 수공예 마을과 협력하는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는 곳이다. 참고로 리버스 (Re;birth)는 재고를 다시 활용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리버스를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운 이 회사는 옷을 더 오래 입도록 하는데 힘을 쏟고 있다. 옷을 자주 구매하게 해야 살아남는 구래의 의류 유통 문법에 반기를 든 것이다. 이미 10년 전에 폐기 직전 재고를 활용한 업사이클링(upcycling) 브랜드를 출시했고, 자사 제품 전용 중고 거래 플랫폼도 개발했다. 중고로 옷을 사고팔면, 의류 상품의 사용주기가 연장될 공산이 큰 것을 알면서도 감행한 용기 있는 시도다. 아울러 복합쇼핑몰에서 수선과 리폼 서비스를 전개하기도 한다. 고쳐서라도 오래 입자는 것이다. 제주도에는 해양 폐기물로 소품을 만들어 디자인한 친환경 매장이 문을 열었다.

이 외에도 탄소발자국 라벨을 부착한 스니커즈가 인기를 끌고 있고, 폐플라스틱을 활용한 재생 원단으로 만든 친환경 넥타이는 대통령이 기후정상회의 때 착용하며 큰 주목을 받았다. 세계 4대 패션위크 중 하나인 뉴욕 패션 위크에서도 자투리 원단을 활용하여 낭비를 줄이는 방식의 ‘착한 패션’이 호평을 받았다. 짜깁기가 예술이 됐다.

이쯤 되면 ‘멋진 패션’이 무엇인지 새로 규정해야 할 것만 같다. 친환경의 가치를 내세웠다고 해서 멋을 포기해야 할 이유는 없다. 의복의 ‘멋’을 유지하면서 지속가능성에 힘을 싣는 태도가 긴요하다. 둘은 양립 가능하다. 패션업계에서 지속가능성을 주제로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고 있다. 이 대결이 건강하게 지속되길 바란다. 경쟁을 통한 편익은 우리 모두가 향유하게 될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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