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진칼럼] 외롭히다 〈110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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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진칼럼] 외롭히다 〈1105호〉
  • 오사랑 교목
  • 승인 2022.09.05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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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랑 교목
오사랑 교목

어느 순간 우리 사회에 들어와 지금까지 통용되고 있는 신조어들이 있다. 그중 수명이 꽤 긴 것들이 있는데 인싸와 아싸가 그렇다. 인싸, 영어 Insider의 줄임말로 어떠한 무리에서 다른 이들과 잘 어울려 지내고, 주변인들의 주목을 받는 사람을 일컬을 때 사용된다. 반대로 아싸는 영어 Outsider의 줄임말로 무리에 끼지 못하고 밖에서 겉도는, 인간관계가 좁고 자신을 드러내는 데 소극적인 사람을 일컬을 때 사용된다. 어느 순간 자리를 잡은 개념이기에 둘을 구분하는 정확한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 모호함 속에 우리는 자신, 또는 누군가를 인싸 혹은 아싸로 규정한다. 나는 과연 인싸인가, 아싸인가.

김범수 씨의 ‘진심’이라는 제목의 노래는 잔잔한 멜로디의 음악인데, 이 노래의 가사 중 집중하게 되는 단어가 등장한다. 외롭히다. 표준어에 없고 신조어가 끊임없이 생성되는 시기를 살아내면서도 아직 들어본 적 없던 단어이기에 유독 더 잘 들리면서도, 들으면 들을수록 매력적인 단어라 생각된다. 외롭히다. “외롭다”와 “괴롭히다”가 잘 융화된 단어로 외로움과 괴로움이 가지는 이미지가 공유하고 있는 것을 잘 엮어낸 표현이다. 그런데 이 단어를 들으면 한편으로 이런 생각이 든다. “오늘을 살아내는 사람들에게 ‘외롭히다’라는 단어는 얼마나 공감을 이룰 수 있을까?”

사람들은 인싸와 아싸 중 자신을 어느 쪽으로 생각할까? 아마 많은 사람은 스스로 아싸라 생각할 것 같다. 우리 사회가 인싸에 과도한 이미지를 부여해서 그에 대한 거부반응이 나타나는 것인지, 겸손의 미덕 때문인지, 또는 외로움을 즐기는 것 때문인지,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 그러한 우리에게 “외롭히다”라는 단어는 얼마나 공감을 이룰 수 있을 것인가 의문이 든다. 외로움이라는 것이 누군가를 괴롭게 하는 것이 아닌, 편하게 만드는 것 같은 이 시대에 “외롭히다”라는 단어는 마치 시대착오적인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생각에는 함정이 있다. “외롭힘을 당하다”가 아니라 “외롭히다”였기 때문이다. 즉, 당하는 입장과 행하는 입장의 생각이 뒤섞인 것이다. 외로움은 누구에게나 괴로운 것이다. 우리는 귀찮아질 상황에 한정하여 외로움을 즐기고 있었지, 여전히 외로움에 괴로워하는 존재들이었던 것이다. 여전히 SNS라는 공간에서 자신을 과시하거나,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소통을 시도하고 있고, 오프라인에서 충족시킬 수 없는 외로움을 온라인 공간에서 해결하려 하고 있다.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외로움으로 인해 고통받는 자들이 있고, 심하게는 그들을 죽음으로 내몰기까지 했다. 해결방안을 계속해서 도모하고 있지만 근절되고 있지 않은 여러 형태의 폭력, 분노, 큰 충격을 주는 자살 사건, 이 모든 것이 외롭힘의 결과였던 것이다.

우리는 과연 외로움을 즐기는 사람들인가? 외로움을 즐긴다는 말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아니면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주고 싶지 않은 자기 모습을 포장하기 위한, 그런 말은 아닐지 점검해봐야 한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관심 가지지 않는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사랑하지 않는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외로움을 즐긴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우리는 사실 누군가를 외롭히고 있는 것은 아닐지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하겠다. 

대학 공동체는 관계 형성에 있어 많은 약점을 가질 수 있는 공동체이다. ‘명지’라는 이름으로, 동시에 각자의 학업 성취라는 목적을 두고 모이는 공동체이지만, 목적성과 학교 이름이라는 큰 타이틀 안에 반복되는 상황이 익숙함을 만들고, 그 안에서 같은 수업을 듣는 학우들에게 별다른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마저도 익숙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대학에 속해있는 우리는 매일 누군가를 외롭히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우리의 모습 괜찮을까? 시대가 주는 익숙함에 우리를 맞추면서 여전히 괴로워하는 자들을 그대로 두어야 할까? 앞으로 우리는 “어쩔 수 없어. 거기에 너도 익숙해져야지”라며 위로해야 할까? 과연 그것이 위로이기는 할까?

그동안의 코로나의 아픔을 극복하고자 시도하는 이번 학기, 본격적인 회복으로 나아가기 위해 대면 수업으로 전환하는 이번 학기가, 우리 안에 굳어진 ‘외롭힘’의 특징이 깨지는 기회가 되길 소망한다. 각자가 가지고 있는 모습을 뒤돌아보는 시간이 됨과 동시에 그것을 작게나마 실천적으로 깨보는 학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가 상황적으로 마주할 수밖에 없는 약점들을 보완하며 성장하는 명지인이 되길 응원한다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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