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혜탁의 트렌드 관찰기] ‘실패’라는 유의미한 포트폴리오 〈1104호(개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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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혜탁의 트렌드 관찰기] ‘실패’라는 유의미한 포트폴리오 〈1104호(개강호)〉
  • 석혜탁 경영 칼럼니스트
  • 승인 2022.08.29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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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혜탁 경영 칼럼니스트 sbizconomy@daum.net
석혜탁 경영 칼럼니스트 sbizconomy@daum.net

아침에 문을 열어보니, 입과 코로 들어오는 공기의 느낌이 다르다. 시간이 또 이렇게 빨리 흘렀나 보다. 벌써 새로운 학기가 시작됐다. 필자가 『명대신문』과 인연을 맺고 정기적으로 칼럼을 기고한 지도 1년이 지났다. 개인적으로는 그 어떤 기성 언론보다 ‘학보사’에 기고하는 것을 큰 영광이라고 생각한다. 주된 독자가 청춘이기 때문이다.

‘실패’를 이야기하려고 한다. 새로운 마음으로 캠퍼스 정문을 막 통과한 청춘에게 성공이 아닌 실패를 화두로 꺼내다니. 가혹하다고 생각하는 이도 있겠다 싶다. 이제 마음 좀 다시 다잡고 공부든, 교내활동이든, 대외활동이든 열정적으로 해보려고 하는 사람에게 본격적인 시작도 하기 전부터 실패를 운운한다는 것. 설렘 가득한 이 시기에, 그것도 이 신성한 대학신문에 불경하기 짝이 없다.

‘클래시 오브 클랜’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 핀란드의 게임회사 슈퍼셀은 실패를 축하하는 파티를 연다. 그것도 샴페인을 곁들이며 ‘성대하게’ 잔치 분위기를 조성한다. 우리에겐 낯선 문법이다. 실패와 축하의 언어적 결합은 굉장히 어색하게 느껴진다. 슈퍼셀의 공동 창업자이자 대표이사인 일카 파나넨(Ilkka Paananen)은 실패를 불가피하고 필수적인 과정으로 규정한다. 더 나아가서 그는 실패를 안 했다는 것을 설정한 기준이 충분히 높지 않았고, 하고자 하는 일이 어렵지 않기 때문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언뜻 보면 심지어 실패를 권장하는 인상까지 준다.

주지하듯 실패하지 않았다는 것이 곧 성공하였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실패가 성공의 대의어(對義語)라는 것은 지극히 기계적인 의미 연결이다. 슈퍼셀에서는 되레 제대로 된 모험을 감행해보지 않은 소극적이고 태만한 사람으로 평가받기 일쑤다.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으면, 실패의 쓰라림을 비켜갈 수는 있다. 다만 아무것도 얻는 것이 없다. 실패와 마주하지 않으면, 잠깐의 상처와 두려움에서 자유로울지 모르지만 조직에서 도태될 공산이 크다.

다이슨의 혁신적인 진공청소기는 5천 번이 넘는 실패 뒤에 나온 결과물이다. 청소기의 먼지봉투를 100여 년 만에 없앨 수 있었던 원동력은 누적된 실패 경험이었다. 다이슨의 창업주 제임스 다이슨(James Dyson)은 실패를 ‘문제를 살펴보고 극복할 수 있는 계기’로 인식한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획기적인 제품으로 전 세계의 소비자를 사로잡은 다이슨의 성공 신화는 몇몇 엔지니어나 디자이너의 천재성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문제를 살펴보고 극복할 수 있는 계기’가 쌓이고 쌓여 실패가 성공으로 전화하며 이뤄낸 성과이다. 성공은 ‘깜짝 이벤트’가 아니다.

‘서방님’, ‘작별’, ‘닮았잖아’ 등 숱한 명곡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인기 가수이자 미국 노스 웨스턴대학교 로스쿨을 졸업하고 뉴욕에서 변호사로 커리어를 이어가고 있는 이소은. 국제상업회의소 국제중재법원의 뉴욕지부 부의장까지 거치는 등 그가 성격이 전혀 다른 분야에서 모두 괄목할 만한 모습을 보일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그의 부모님이 보여준 교육철학이 특기할 만하다. 딸이 실패했을 때 ‘축하 카드’를 써서 보내줬다는 것. 너의 실패를 축하한다. 이 실패가 몇 년 뒤 네게 가장 큰 기회로 다가올 때가 있을 것이다. 그때의 밑거름이 될 오늘을 축하한다는 말을 들으면 어떨까? 실패는 더 이상 좌절이나 낙담의 유의어가 아닌, 재도약과 기회의 연관어가 될 것이다. 이소은은 최근까지도 이른바 ‘실패 이력서’를 작성한다고 한다. 이는 그에게 열정적으로 시도했던 활동들의 모음집이 된다. 결과에 상관없이.

“만약 1년 동안 한 번의 실패도 없다면 이 사실이 오히려 나를 두렵게 만들 것이다.” 일카 파나넨의 메시지다. 실패가 아닌 실패의 부재를 두려워하자. 서점에 즐비한 ‘성공학 개론’에 손을 대기보다는 자기만의 ‘실패학 개론’의 페이지를 채워 나가자. 특히 대학생 때 겪어본 실패는 굉장히 유의미한 포트폴리오가 될 것이다. 실패의 쓴맛, 아니 단맛을 더욱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는 담대한 여정! 아무것도 안 한 것보다는 분명 진일보한 자신과 마주하게 될 그 순간을 기약하며, 가치있는 실패를 겪어보는 한 학기를 보내시길 바란다. 실패는 아픔이 아니라 자산이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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