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진칼럼] 말, 글 그리고 생각..아니 훈장질 추가 〈1104호(개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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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진칼럼] 말, 글 그리고 생각..아니 훈장질 추가 〈1104호(개강호)〉
  • 이지수 정치외교학과 교수
  • 승인 2022.08.29 23: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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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수 정치외교학과 교수
이지수 정치외교학과 교수

아무래도 “LATTE는 말이지”로 시작해야겠다.

1. “생각을 말로 다 담을 수 없고, 그 말을 다시 글로 다 옮기는 것 또한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라고들 한다. 우리 땐 당연한 소리였다. 하지만, 어쨌든 생각을 전하려면 어쩔 수 없이 말을 할 수 밖에 없다. 혹은 글로 쓰기도 한다. 누구는 손짓, 혹은 표정으로 자기 생각을 전하기도 한다.

2. 따지고 보니, 예수님도 말씀만 하셨지, 글을 따로 남기시지는 않았다. (물론 이적을 남기시기도 했다) 석가모니나 마호멧, 소크라테스, 공자 등등의 이른바 성현들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들이 남긴 말을 우리는 그 제자(들)가 옮겨 적은 강의록을 통해 들을 수 있을 따름이다. 하지만 말은 단순히 음성뿐 아니라 당시의 상황, 상대, 어조, 억양과 제스처, 표정 등으로 구성되는 복합 콘텐츠이므로 문자로만 옮기기엔 한계가 있다. 그러나 어쨌든 우리는 글을 통해 말을 듣고, 그 생각을 미루어 짐작할 따름이다. 말을 옮겨 적은 것에 불과한 글을 통해 생각을 더듬다니 인간은 정말 위대한! 존재가 아닐 수 없다.

3. 독서를 통해 우리는 무수히 많은 체험을 한다. 저자와도 만나고, 저자의 생각을 접하기도 한 다. 책 속에 등장하는 풍경과 사람들과 혹은 색깔, 기분까지 체험한다. 전개되는 흥미진진한 스토리에 매혹되기도 하고, 격분하고, 또 각성한다. 독서를 통한 체험의 가치에 대해서는 이루 말로 형용하기 어렵다. 저자의 생각을 우리 생각으로 단순히 copy-paste 하는 게 아니라, 각자 나름대로 읽기 때문이다. 아닌 게 아니라 가령 복음서의 내용이 똑같지 않은 것도 이해할만하다. 학생들의 강의노트도 다 제각각 아닌가?

4. 독서도 물론 체험의 일종이지만, 체험이야말로 다양하기 끝이 없다. 독서가 생각의 체험이 라면, 말 그대로 몸으로 하는 경험 역시 소중하다. ‘많이 읽고 많이 다녀보라’고 할 때, 다니는 것도 몸으로 하는 체험일 것이다. 운동, 연주, 운전 등등은 그야말로 몸으로 익히고 몸으로 느끼는 쪽에 가까운 편이다. ‘살인 빼고는 다 해보라’라는 위험천만한 얘기도 있지만 아무튼 다양한 경험이 중요하다는 점에 있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5. 우리는 평소 말하고, 글 쓰고, 생각한다. 동시에 남의 말을 듣고, 남의 글을 읽고, 또 남의 생각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한다. 거기에 더해 우리 의 일상은 몸을 통한 부단한 경험의 연속이기도 하다.

6. 굳이 생각과 경험을 나누어서 얘기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전자를 관념, 후자를 경험이라 고 대비시키기도 한다. 경험은 똑 떨어지게, 명쾌하게 글이나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한 번 해봐”라는 말로 충분할지 모른다. 반면에 생각은 글이나 말로 설명하는 도리밖에 없다. 그래서인지 관념론자들은 정합성을 강조한다. 대신 경험론자들은 다양성에 착안하기도 한다.

7. 한창 혈기가 왕성한 젊은 시절엔 논리적 정연함이나 이론의 정합성이 강조되는 관념론에 빠지기 쉽다. 도대체 세계에 대해서 합목적적인 거대 담론으로 설명하는 대신에 그저 ‘LATTE’는 말이지~로 시작하는 훈장질이 귀에 들려오기 만무하다. 젊은이들이 관념론에 빠진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기도 하다. 관념론이 경험론에 비하면 더 이상주의에 근접해 있음을 따져보면 그렇다는 얘기다. 적어도 “LATTE”는 그랬다.

8. 그런데 요즘 젊은이에겐 관념론이나, 경험론, 이상주의 혹은 현실주의 따위 얘기들은 일체 다 훈장질에 지나지 않을 공산이 크다. 요즘의 말은 자유의 상징이라, 수시로 바뀌는 것이 미덕이 되었다. 글은 언제든 고쳐 쓸 수 있는 디지털 공간에 등장하는 비주얼이 되었다. 그리고 생각이야말로 뱉어 놓은 말과 글을 주워 담기에 바쁘다.

9. 지금의 젊은이들이 훗날, “LATTE는 말이지~”를 어떻게 이어 갈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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