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반의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거리두기의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 다만 아쉬운 점은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지 끝이 났다는 것은 아니다. 아직도 밀폐된 공간에서는 마스크를 착용해야 하고 개인 방역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지만, 대면 수업이 확정되고 행사들이 늘어나기 시작하는 것을 보면 이미 많은 변화가 생겼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상황이 변함에 따라 학교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모두가 학교 정상화라는 공동의 목표를 위해 함께 노를 저어가고 있음을 확인했다. 이번 탑을 취재하며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말이 생각났다. 학교에 버스를 타고 가서 수업을 듣고 밥을 먹고다시 수업을 듣는 이 간단한 일상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모두의 도움이 필요하다. 관련 관계자들의 협의와 심의, 예산, 상황 등 모든 이해관계가 성립돼야 비로소 일이 진행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국가적 위기 상황이 불러온 뜻밖의 순간들이 다시금 과정의 중요성을 일깨워준 것이다.
학교의 내부적 노력뿐만 아니라 더 중요한 주체는 바로 ‘학생’이다. 소식을 전하는 신문이 존재할 수 있는 유일한 이유가 우리 대학 학우들이라고 생각한다. 아직은 신입 기자에 불과하지만, 문득문득 명대신문 기자로서 책임감과 의무감을 느끼곤 한다. 다양한 사람들과 인터뷰하는 취재 과정에서 뜻밖의 말들을 들을 때가 있었다. 인터뷰에 참여해줘서 감사하다는 나의 인사에 취재원이 오히려 취재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답변을 받을 때였다. 매 호 기자로서 주어진 분량을 채워나가기 위해서 고군분투하다가도 그때의 말이 떠올라 정신이 바짝 든다. 내가 쓴 기사를 누군가가 궁금해하고 읽을 것을 생각하니 매 순간 최선을 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매 순간 최선을 다했노라 내 입으로 말하기에는 지난날의 자잘한 실수들이 눈에 밟혀 부끄러워지지만, 적어도 기사를 쓸 때의 나는 온 마음을 담아 쓰려고 노력한다. 누군가 나의 기사를 읽고 아주 미약할지라도 얻어가는 바가 있다면 취재, 마감, 조판 과정이 그리 힘들지는 않다.
이번 탑을 작성하면서 혹시 나의 기획 의도가 학우들의 생각과 다르지는 않을지 걱정돼 인스타그램을 통해 DM으로 의견을 받는다는 카드 뉴스를 올렸다. 많은 사람이 보내리라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한 사람도 묻는 이가 없어서 아쉬웠다. 모두가 각자의 사정으로 바빴을 수 있고 우리 신문사의 홍보가 부족해 많은 학우가 신문사 자체의 존재를 알지 못해서 보내주지 못했을 수 있다고 다독이며 다시 기사에 집중하는 것이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좋아하는 상대에게 혼자 끙끙대며 고백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투정을 부릴 수도 없는 짝사랑처럼 이 신문을 기자들만의 것으로서 기억되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