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역자치단체장 선거에 출사표를 낸 한 후보가 ‘필환경’을 핵심 의제로 내세웠다. 국회의원과 당 대표를 역임한 적이 있는 그는 ‘친환경’을 넘어 ‘필환경’ 녹색도시를 만들겠다는 청사진을 밝혔다. 소비 트렌드 키워드 중 하나였던 ‘필환경’이 선출직 공무원이 되고자 하는 정치인의 출마 선언문에서까지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다.
주지하듯 ‘필환경’의 필은 ‘반드시 필(必)’이다. 환경 보호에 대한 적극적인 노력이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조건이 됐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기존에 많이 쓰던 표현인 ‘친(親)환경’이 권장 혹은 선호의 개념이었다면, 필환경은 의무이자 우리 모두의 핵심 과제로 격상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필환경의 메시지를 가장 능동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소비층이 있다. 바로 ‘세컨슈머 (Second+Consumer)’이다. 지속가능한 삶을 위한 대안을 찾고, 그 과정을 즐기는 소비자를 가리킨다. 이들은 제품이나 서비스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즉각적인 ‘효용’보다 사회적으로 가치있는 것들을 중시하며, 이런 맥락 아래 소비를 한다. 중고 거래를 즐기고, 환경친화적인 제품의 사용을 선호한다.
세컨슈머는 일회용품의 사용을 줄이기 위해 음식을 다회용기에 포장하는 운동인 ‘용기내 챌린지’의 흥행을 이끄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Green Peace)에서 시작된 이 캠페인은 해시태그 인증과 함께 SNS를 통해 MZ세대 사이에서 빠르게 확산했다. 필환경의 기치 아래 당장의 불편을 기꺼이 감수하면서도 유쾌하게 감수한 것이다. 혼자가 아니라 같이! (참고로 한국의 1인당 연간 플라스틱 소비량이 세계 최상위 수준이다.)
고체 비누의 인기도 세컨슈머의 소비 정향 (定向)과 관련이 있다. 지난해 신세계인터내셔날의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자주(JAJU)는 사회적 기업과 협업해 고체 비누 6종을 출시한 적이 있다. 결과는 어땠을까? 5개월 치 물량이 한 달 만에 소진되었다. 구매자의 팔할이 20~30대 세컨슈머였다. 액체 비누와 달리 고체 비누는 플라스틱 용기가 필요 없다. ‘예쁜 쓰레기’의 발생을 최소화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방부제, 보존제 등 화학성분이 상대적으로 적게 함유되어 있다. 피부 건강에 좋은 것뿐 아니라, 수질 오염도 최대한 줄일 수 있다는 점이 특기할 만하다.
코로나19 이후로 모바일 주문이 많아지면서 포장과 배송 방식에서도 ‘필환경적 전환’이 이뤄지고 있다. 롯데푸드는 배달 이유식의 포장재를 스티로폼 재질에서 종이로 변경했고, 불필요한 아이스팩도 줄였다. 쿠팡은 아예 사내에 친환경적인 배송 방안을 통합적으로 연구하는 전담 부서를 운영하고 있다. 더 나아가서 수소 화물차와 전기이륜차도 시범적으로 배송 과정에 투입하고 있으며, 재사용이 가능한 보냉백 프레시백의 관리를 강화하는 등 배송 생태계 자체를 친환경적으로 조성하는 데 다각도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현대홈쇼핑은 배송 상자 겉면에 부착된 운송장의 크기를 줄였다. 화학물질로 코팅이 된 특수용지가 기반이 되는 운송장은 폐기 과정에서 재활용이 여의치 않다. 이 운송장의 크기를 20% 줄이는 결정을 한 것이다. 또, 비닐 테이프가 필요 없는 배송 상자를 선보이기도 했다. “테이프 안 쓰는 게 무슨 대수냐”라고 반문할 수도 있는데, 그렇지가 않다. 비닐 테이프의 주성분은 폴리염화비닐인데, 이 소재를 자연적으로 분해하는 데 무려 100년이 넘게 걸린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소비자 입장에서 상자를 받고 버릴 때 더 간편해졌다는 이점도 있다. 기존에는 비닐 테이프를 뜯어서 분리 배출 해야 했는데, 이런 친환경 상자는 종이류로 간편하게 버리면 되는 것이다.
정부의 친환경 정책에 대한 드라이브와 맞물려 그린테일(Green+Retail)이 부상하고 있다. 세컨슈머의 영향력도 점점 커지는 모양새다. 이런 분위기에서 기업들은 단기적인 비용 절감보다는 보다 먼 미래를 내다보고 필환경 아이템 개발과 세컨슈머에 대한 이해도 제고에 진력해야 할 것이다. 광고 모델 선정도 필환경 흐름과 조응되어야 하며, 환경 관련 규제의 도입이나 제도의 변화 또한 늘 세심하게 모니터링해야 할 것이다. 장기적인 시각으로 필환경 행보를 묵묵히 걷는 기업이 더욱 많아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