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걸음을 뗄 무렵에 들려온 비보와 눈덩이 굴러가듯 커진 불안에 명지의 등불이라 불리는 학우들 면면에 깊은 수심이 더해지고 있는 요즘이다. 비대면으로만 대학을 만난 20, 21 학번이 선배가 되어 새로움을 꿈꾸기 전 두려움을 맛본 22 학번을 이끌어가고, 비대면으로 졸업을 맞이하는 학번이 점점 늘어나고 있지 않은가. 거기에 학원 파산에 대한 비보가 무게를 더하니 명지의 인재들이 믿음을 잃어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필자도 그 무게에 몸서리치던 이들 중 하나였고, 침체된 기분으로 ‘어쩔 수 없음’에 초점을 맞춰 학기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 생각 없이 읽은 명대신문 <1097호>는 필자에게 조금 다른 시선을 제공했다. 분명히 똑같이 절망하고, 분명히 똑같이 이번 학기를 걱정으로 맞이했을 터인데, 그들의 기사는 여전한 열정으로 성심껏 작성되어 있었다. 특히, 1면의 기사가 그러하였다. 명지학원 파산신청의 경위와 회생 신청 과정, 회생절차가 폐지된 이유와 그 여파를 설명하고, 그 상황에 대한 주요 입장을 전달하고 있는 이 기사는 암울하여 외면하고 싶었던 우리 대학의 현주소를 아주 명확하고, 간략하게 짚어내고 있었다. 2면에 위치한 양 캠 총학생회의 공동행동 진행에 대한 내용을 다룬 기사도, 10면 상단에 위치한 기자수첩도, 모두 우리가 직면한 이 상황을 바로 마주함으로써 ‘다음’을 생각하게 하는 ‘절망’의 한가운데를 설명함으로써 나아가야 할 ‘희망’을 고려하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명대신문은 이에 그치지 않았다. 2면과 3면에 걸쳐 학교가 진행하고 있는 사업이나 행사, 특이점들을 설명하고 6면의 ‘알(아두면) 쓸(데 있는) 신(입생) 명(대사전)’을 통해 우리 대학의 정보들을 전달하며, 여전히 명지대학교가 숨 쉬고 있음을 발로 뛰어 우리에게 전달하고 있었다. 알 권리라는 미명 하에 불행을 노출시키고 그것을 활용하는, 그들의 보도와 이야기보다 훨씬 가치 있는 방향으로 학우들의 알 권리를 고려하고 있었고, 더 성숙한 저널리즘의 태도로서 우리의 곁에 남아있었다.
“당신의 오늘은 희망과 노력에 충실한가?” 좌절스럽지 않은 상황이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절망하지 말라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필자 또한 그러했고, 이제야 겨우 꿈틀거림을 시작했을 뿐이다. 다만, 절망의 순간에 멈추지 말고, 그다음을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고려하는 것. 당신을 위해서라도 다음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는 것. 그리하여 오늘에 충실하고 일상을 살아내는 노력을 기울여 기울어진 대학을 살아냄으로써 일으키는 것. 필자는 명대신문<1097호>가 그러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실현해야 할 오늘의 과제가 바로 이와 같다고 감히 첨언한다.